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93)
미사리재는 정선군 남면 유평리와 화암면 화암리 구슬동 살피에 있는 고개다. ≪정감록≫에 온 나라가 난리로 시끄러워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죽지 않는 곳’이라서 '미사리'란 이름을 얻었다고 하나 썩 믿을 만한 말은 아니다. 또 다른 설로는 ‘미사리’가 살던 곳이라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 이야기는 ≪정선 남면 지명유래≫에서 말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미사리재 동굴에는 온 몸에 털이 나 짐승처럼 보이는 ‘미사리’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다른 말로 ‘금돼지’라고 하는 미사리는 나무껍질과 열매를 먹고 살다가 천둥이 치거나 비바람이 치는 날이면 산속에서 내려와 부녀자를 납치해갔다. 그런 일이 자주 벌어지자 마을에서는 미사리를 잡아야 한다고 유인책을 썼다. 그리고 어렵게 정해 미사리가 데려갈 여자의 치맛자락에 명주실을 감아 놓았다. 미사리가 사는 곳을 찾아 사로잡기 위해서였다. 아침에 일어나자 여자가 사라진 사실을 알고 명주실 풀린 곳으로 따라가 보았더니 산 능선 너머 동굴로 이어졌다. 굴을 따라서 숨을 죽이고 들어가 보니 금돼지가 여자 옆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금돼지가 사슴 가죽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살금살금 다가가 준비해온 사슴 가죽을 덮어 씌웠다. 그러자 금돼지는 아무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곧 죽고 말았다.(남면, 2011, 167쪽)
≪표준국어대사전≫에선 ‘미사리’를 “산속에서 풀뿌리나 나뭇잎·열매 따위를 먹고 사는, 몸에 털이 많이 난 자연의 사람. ≒유원인.”으로 풀어놨다. 그런데 ≪정선 남면 지명유래≫는 미사리를 ‘몸에 털이 많이 난 사람’이 아니라 ‘금돼지’라고 말한다. 이 비슷한 이야기가 우리 땅 곳곳에 전하는데, ‘미사리’가 ‘금돼지’를 가리키는 말인지는 처음 알았다.
내 생각이지만 ‘미사리재’의 ‘미사리’는 이름씨 하나가 아니라 ‘미’와 ‘사리’가 모여 새로 생겨난 말로 보아야 한다. 이때 ‘미’는 산의 옛말이다. 중세국어 ‘뫼ㅎ’는 ‘매, 메, 미, 모’ 따위로 소리바꿈하면서 땅이름 곳곳에 쓰였는데 한자말인 ‘산’에 자리를 빼앗긴다. 뒤엣말 ‘사리’는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사리’를 ‘사이’로 볼 수 있다. ‘뫼사이’가 ‘미사이’를 거쳐 ‘미사리’로 탈바꿈했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미사리재는 산 사이에 있는 재다. 사잇재나 새재쯤으로 볼 수 있다. 미사리재는 남동쪽에 있는 지억산(1116.7m)에서 뻗어나온 산줄기가 1000m봉을 이루고 차츰 낮아서 920.9m봉으로 이어지는 사이다. 다른 하나는 국수, 새끼, 실 따위를 동그랗게 감은 뭉치를 말하는 ‘사리’로도 생각해볼 만하다. ‘사리’는 움직씨 ‘사리다’가 말밑이다. 땅이름에서 ‘사리’는 땅이 몹시 굽은 곳을 말할 때 썼다. 어느 쪽이 더 타당한지는 땅모양을 살펴야 하는데, 사리마냥 둥그렇게 감긴 고갯길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미사리재’는 ‘사잇재’라고 하겠다. 물론 말밑이 이것이라고 누구도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오래된 땅이름은 그곳에 터잡고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본뜻을 알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설 가운데 본디 배달말로 된 땅이름이 있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땅 모양과 특징을 살펴야 한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미사리’가 있다. <디지털가평문화대전>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사리는 지역에 미륵불이 있어서 ‘미사’ 또는 ‘메수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이곳에 미륵불이 있어서 ‘미사’가 되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까닭이라면 ‘미륵리’나 ‘미륵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마을 앉음새를 보면 장락산(629.5m) 줄기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면서 동쪽을 막고, 남쪽은 칼봉산(268.76m)으로 막혔다. 서쪽도 200미터쯤 되는 산들이 막았다. 미사천은 마을 가운데로 내가 북쪽으로 흘러 홍천강으로 흘러든다. 이에, 미사는 산을 뜻하는 옛말 ‘미(뫼, 메)’와 ‘사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면 ‘메수내’가 뭐냐는 물음이 생기는데, 메수내는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내 이름을 마을 이름으로 썼다고 보아야 한다. ‘뫼(메, 미)+사이+내’ 짜임인데, 뒤엣말 ‘내’ 영향으로 ‘물’을 뜻하는 ‘수(水)’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한편, 경기도 하남시에도 ‘미사’라는 땅이름이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강에 있는 섬 같은 마을로 모래를 퍼내던 곳이다. 1980년대 한강 유역 개발과 함께 88올림픽 조정경기장이 들어서면서 크게 달라진다. 이곳은 어떤 까닭으로 ‘미사’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하남시 미사1동 행정복지센터에 나온 지명 유래는 이렇다.
한강 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섬으로 된 이 마을은 오랜 세월 동안 한강의 퇴적물이 쌓여 섬이 형성되었으며 특히 사면이 아름답고 고운 모래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모래가 물결이 치는 것 같이 아름답다하여 미사리(渼紗里)라 부른 것이다.
모래가 물결치듯 아름다운 곳이라서 물놀이 미(渼), 모래 사(沙) 자를 써서 ‘미사’가 되었다고 한다. 정말 아름답다는 마음이 일 수 있다. 하지만 마을을 보면 ‘한강 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섬’이다. 말 그대로 물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미사리는 물을 뜻하는 옛말 ‘미’와 ‘사이’가 합쳐져 생겨난 땅이름으로 볼 때 땅 모양과 땅 이름이 더 잘 맞는다.
배달말 한입 더
메아리 ‘메아리’는 이름씨 ‘뫼’와 움직씨 ‘살다’의 ‘살’과 이름씨 뒷가지인 ‘이’가 모여서 만든 말이다. ‘뫼살이’로 산에서 사는 것이다. ‘뫼살이’에서 ‘ㅅ’이 반치음인 ‘ㅿ’로 바뀌었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면서 ‘뫼살이>뫼알이>뫼아리>메아리’로 된다. 메아리를 ‘산울림’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일본말 ‘야마나라(やまなり, 山鳴)’에서 왔다. <디지털다이지센>을 보면, “1. 지진이 일어나거나 화산이 터지면서 산이 내는 소리. 2. 땅속 깊은 곳에 있는 갱이나 굴이 꺼지면서 둘레 바위에서 나는 소리.”로 풀어놨다. 그러니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메아리’를 “울려 퍼져 가던 소리가 산이나 절벽 같은 데에 부딪쳐 되울리는 소리.”로 뜻매김해놓고 비슷한 말로 “≒산명, 산울림.”으로 적은 것은 잘못이다.
갓, 말림, 말림갓 산을 가리키는 배달말로는 갓, 재, 뫼가 있다. 갓은 일부러 나무를 가꿀 요량으로 함부로 베지 못하게 가꾸는 산을 말한다. 나뭇갓이 있고 풀갓이 있는데, 산에 있는 풀이나 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단속하고 가꾸는 일을 ‘말림’이라고 하며, 이런 산을 달리 ‘말림갓’, ‘멧갓’이라고 한다. 한자말로는 ‘산판(山坂)’이다. ‘발매’는 갓에 있는 나무를 한목 베어내는 일을 말하는데, 갓에서 베어낸 나무를 옮기는 사람은 ‘등거리꾼’이라고 한다. 발매한 나무를 도끼를 써서 대강 다듬은 나무는 ‘도끼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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