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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의 서가 May 10. 2021

동양미술 별건가요#3借物抒情, 감정을이입하라

감정이입(感情移入)


동양의 예술도 서양미술 못지않게 매우 리얼하게 현실을 재현해냈다중국 북송(北宋)의 8대 황제 휘종(徽宗 1082-1135)이 그린 「납매 산금도(蠟梅山禽圖)」이다. 백두조(白頭鳥) 두 마리가 가지에 다정스럽게 앉아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마치 부부(夫婦)인 양 서로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는 이 그림은 고구려 제2대 유리왕(瑠璃王 기원전 18-기원후 19)이 지었다는 「황조가(黃鳥歌)」를 생각나게 한다


휘종, 납매 산금(蠟梅山禽圖), 북송. 한 겨울 매화나무에 백두조(白頭鳥) 두 마리가 다정스럽게 앉아 있는 모습이다.                                   


유리왕은 왕비 송 씨(松氏)가 죽은 후 화희(禾姬)와 치희(雉姬)라는 두 여인을 후실(後室)로 맞았는데, 이들은 늘 서로 다투었다. 어느 날 왕이 사냥을 나가 궁궐을 비운 사이에 화희가 치희를 모욕하고 쫓아 버렸다. 왕이 사냥에서 돌아와 이 사실을 알고 급히 말을 달려 치희의 뒤를 쫓았으나 치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왕이 탄식하며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데, 짝을 지어 날아가는 황조(黃鳥 -꾀꼬리)를 보고 감탄하여 「황조가」를 지었다. 가사에 “펄펄 나는 꾀꼬리는 암수가 정다운데 외로운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까(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2천여 년 전 지은 가사임에도 지금 우리에게도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유리왕의 애절함이 전달되는 듯하다.

이 시가(詩歌)에서 유리왕은 꾀꼬리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였다. 동양에서는 내가 꾀꼬리가 되기도 하고 흐르는 물이 되기도 하고 대나무가 되기도 한다. 동양에서는 이러한 감정이입에 너무나 익숙하다.


조맹부, 작화 추색도(부분), 원나라. 조맹부가 고향인 호주에서 산동 제남의 기억을 되살려 그린 것이다


감정이입은 동양 예술의 가장 큰 특징인데, 감정이입은 다른 말로는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체와 객체의 분리가 없는 곳에서는 객관적 관찰이나 분석, 그리고 객관적 재현이란 생겨날 수가 없고 인상주의·리얼리즘·(기하학적) 추상미술은 생겨날 수가 없다.

차물 서정(借物抒情)

흔히 동양화는 마음을 그리는 그림이라고 불린다. 동양에서는 예술가의 마음과 정신을 사물(物)을 빌어 표현하는데, 이를 차물 서정(借物抒情)이라고 한다. 차물 서정(借物抒情)은 사물(物)을 빌어(借) 마음(情)을 펼치다(抒)라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동양에서는 애초부터 객관적인 재현이 불가능했다. 그것은 관찰력 하고는 관계가 없다. 관찰력은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보는 능력으로 응물상형에서 살펴보았듯이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동양의 화가들이 서양보다도 더 뛰어난 관찰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동서양의 미술은 모두 리얼한 현실의 재현을 꿈꾸었지만 ‘리얼리티(reality)’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서양의 리얼리티는 현실의 객관적인 재현/측량을 말하는 것이었고, 동양의 리얼한 재현은 얼마나 대상에 마음을 담아 성정(性情)을 잘 드러내는가에 있었다.

이정, 풍죽(風竹), 조선 중기. 세찬 바람에 흔들리기는 하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는 대나무에 사대부의 마음을 이입하였다.                                 

전신(傳神)

차물 서정(借物抒情)의 핵심은 전신(傳神) 기법에 있었다. 전신(傳神)은 정신(神)을 전하다(傳)/담다는 뜻으로 과거부터 중국 미술에서 가장 중요시 한 창작 원리이다. 중국 동진(東晋)의 고개지(顧愷之 346-407)는 회화 창작 시 여러 인물의 전형적인 정신과 마음을 파악할 것을 중시하였는데, 그래야만 비로소 형태(形)와 정신(神)이 겸비된다는 것이다.


고개지, 여사 잠도(女史箴圖)(부분), 동진


중국 미술에서는 객관적인 형태의 재현도 중요하지만 형태 속에 담긴 정신을 표현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아주 옛날부터 중국 미술에서는 단순한 외형의 재현은 크게 중요성을 갖지 못했다. 중국 한(漢) 나라의 유안(劉案 기원전 179-기원전 122)은 회남자(淮南子)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서시(西施)의 얼굴을 그렸는데 아름답기는 하나 즐거움을 줄 수 없고, 맹분(孟賁)의 눈을 그렸는데 크기는 하나 두려움을 줄 수 없다면 군형(君形)을 잃은 것이다(중국 회화 이론사, pp.54-55).

서시(西施)는 중국의 춘추시대 월나라의 미인으로 중국 사대 미인의 한 사람이고, 맹분(孟賁)은 전국시대 위나라의 장수로 능히 쇠뿔도 뽑을 수 있는 용맹한 장수였다. 서시(西施)를 그렸는데 아름답기는 하나 미인으로서의 즐거움이 전달되지 못하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장수 맹분(孟賁)을 그렸는데 보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지 못했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그림이 아니라는 말이다.

경형사(輕形似) 중신사(重神似)

이러한 동양미술의 경향은 송대(宋代)에 문인화(文人畵)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형태(形)’보다는 ‘정신(神)’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동양미술은 객관적 재현에서 더욱 멀어져 갔다. 사대부 화가들은 그림의 본질이란 형태의 겉모습을 그대로 옮기는 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태의 내면에 자리 잡은 정신(魂)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경형사(輕形似) 중신사(重神似)라 한다. 형태를 경시하고, 정신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내면의 원리인 이(理)를 중요시하는 성리학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예찬, 용슬 재도, 원나라.


원대(元代)의 대표적 문인 화가인 예찬(倪瓚 1301~1374)의 「용슬 재도(容膝齊圖)」이다. 마른 붓질로 개략적으로 처리한 그의 산수화는 적막하고 처량하다. 예찬은 담백하면서도 천진한 필묵으로 중국 강남지방의 적막하고 공허한 경치를 그렸는데, 그것은 야만족 몽고에게 나라를 잃은 작가의 고독하고 처량한 마음이기도 하다.

작가는 고독한 자신의 마음을 거친 바위, 텅 빈 가옥(家屋)에 담아냈는데, 텅 빈 가옥은 쓸쓸함을 더해 준다. 객관적 현실의 재현에 전력을 다했던 서양의 미술에 반해 동양의 미술은 사물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 사의를 표현해내는데 전력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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