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강화도 침묵의 순례지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과 남종상 기념관

by JF SAGE 정프세이지

우리 주변에 이름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이름이 특이한 곳에서 이름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우리 부부는 강화도 일만 위 순교자 현양(이름, 지위를 세상에 높이 드러냄) 동산을 방문했다. 2002년 고 최기산 보니파시오 인천교구장이 설립한 이곳은 '성지'가 아닌 '순례지'이다.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순교한 이들이 약 만 명, 이 중에 2000명 정도만 이름이 알려져 있다. 나머지는 이름이 남겨지지 않은 무명의 순교자들이다.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공간이다.


KakaoTalk_20250213_005203116_15.jpg
KakaoTalk_20250213_005203116_18.jpg
KakaoTalk_20250213_005203116_17.jpg
KakaoTalk_20250213_005203116_21.jpg

침묵이 들리는 곳

순례의 시작은 침묵입니다.

피정의 집을 지나 일만 위 순교자 현양동산 눈으로 가득 찬 운동장에 도착했다. 성지 순례를 다니며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 '침묵'이라는 단어였다. 여기저기 심지어 화장실까지 '침묵해라, 혼자 기도 하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남편과 나는 말 한마디 없이 각자의 순례를 시작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의 시야 안에서.




KakaoTalk_20250213_005203116_09.jpg
KakaoTalk_20250213_005203116_02.jpg
KakaoTalk_20250213_005012874_24.jpg
KakaoTalk_20250213_005012874_25.jpg
성당 내부와 기도문 1이 있는 남종상 기념관

다섯 개의 기도문을 찾아서

이곳의 독특한 점은 기도문 보물 찾기다. 순례지 곳곳에 다섯 개의 기도문이 숨겨져 있다. 안내도를 들고 첫 번째 기도문을 찾아 2층 남종상 기념관으로 향했다. 먼저 성당으로 가 예수님께 인사를 드렸다. 성수대와 뒤쪽에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작은 예수성심상이 눈길을 끌었다. 충북 제천에 남종삼 성인의 유택지가 있다. 왜 기념관이 그곳이 아니고 여기에 있을까? 남종삼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남종상 기념관에는 기도문 1과 내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내용이 있다.



남종상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관리였다. 22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에 올랐고, 후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1866년 순교했다. 그의 유해 일부가 이 기념관에 안치되어 있다.




KakaoTalk_20250213_005012874_11.jpg 기도문 2가 있는 위로의 주님



기념관이 있는 건물을 나와 <순교자믿음길>로 갔다. 이 길에서는 순교자들의 사연과 위로의 주님을 만났다. 예수성심상은 미소 지으며 두 팔 벌려 "환영한다"라고 말을 한다. 그 앞에서 기도문 2를 침묵 속에서 읽었다. 이곳에서도 "침묵하라, 혼자 기도하라"는 메시지가 우리를 맞이했다.




KakaoTalk_20250213_004854798_14.jpg
KakaoTalk_20250213_004854798_17.jpg
KakaoTalk_20250213_004854798_16.jpg
기도문 3이 있는 무명순교자상


3기 도문은 어디 있을까? <무명의 순교자의 길>을 따라 올라갔다. 무명의 순교자들과 연관이 있는 성지의 상징물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해미의 호야(회화) 나무, 줄무덤, 묵주연못 앞의 물고기와 순교자들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옹기들이 있다. 이곳에서 우회전을 하면 <무명순교자상>이 보인다. 두 손이 묶인 채 무릎 꿇고 단두대에 머리를 얹은 순교자상, 십자가는 이 순교자의 몸을 관통하고 있다. 그 순간 순교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엇이 이름 없는 이들을 목숨까지 내놓게 했을까? 기도문 3을 통해서 무명의 순교자의 마음을 엿보고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KakaoTalk_20250213_004726285_24.jpg
KakaoTalk_20250213_004726285_27.jpg
KakaoTalk_20250213_004854798_02.jpg
KakaoTalk_20250213_004854798_05.jpg
KakaoTalk_20250213_004854798_06.jpg
KakaoTalk_20250213_004854798_07.jpg
십자가의 길



KakaoTalk_20250213_004726285_05.jpg
KakaoTalk_20250213_004726285_06.jpg
기도문 4가 있는 곳 성모당




십자가의 길이 있다. 침묵의 공간인 이곳에서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갈 수도 있다. 지고 온 십자가를 반납하면 순례 도장 찍는 곳과 성모당으로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성모님의 칠고( 마리아가 겪은 7가지 고통)를 지나니, 성모당이 있다. 반쯤 한옥 대문이 열려있고 성모님이 버선발로 반겨주었다. 이곳에 기도문 4가 있다.



KakaoTalk_20250213_004625568_06.jpg
KakaoTalk_20250213_004625568_07.jpg
KakaoTalk_20250213_004625568_08.jpg
KakaoTalk_20250213_004625568_09.jpg
기도문 5가 있는 일만위순교자현양탑

마지막 보물을 만나러 가야지. 안내도를 보니 이 동산 중앙에 있는 <일만 위 순교자현양탑> 앞에 기도문 5가 있다. 현양탑 상단에는 예수님과 순교자들의 모습, 십자가 좌우로 칼을 차고 있는 순교자 그 아래로 승천하는 예수님이 있다. 그 아래의 아치형 문은 우리를 하늘나라로 초대하는 듯하다. 그 문을 지나면 지금까지와 다른 삶을 살지 않을까?


각자의 침묵 속에서

성모당에서 나는 남편을 위해 기도했다. 갱년기 우울증이고 말하는 남편. "예수님, 남편이 편안해지고 자주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작은 자가 되어 묵묵히 지켜봐야 하겠죠? 이젠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돌보고 싶을 텐데... 그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소서."


무명순교자상 앞 두 개의 머릿돌이 있다고 한다. 눈이 쌓여 그 위치만 볼 수 있다. 머릿돌에 새겨진 내용을 직접 볼 수 없었지만 그 의미는 마음에 새겼다. '이 모두를 받아들입니다. 당신의 이름으로'와 '그대의 이름은...'이다. 계속 침묵을 하고 혼자 기도하라는 이유를 알았다. 불편한듯한 침묵이 시간이 갈수록 편안해졌다. 이곳은 예수님과 만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순교자들의 순명과 무의미를 유혹을 이기고 사라져 간 무명의 순교자들.


우리 부부에게 강화도는 항상 밀리는 곳으로 남아있다. 다녀올 때마다 외길이라 나오는 길은 늘 밀렸다. 그걸 피하기 위해 일찍 갔다가 일찍 나오는 곳이다. 강화를 벗어나 점심을 먹자는 말만 하고 차를 타서도 각자의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여행 정보]

위치: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고비고개로 741번 길 107

전화: 032-932-6354

개방시간: 오전 8시 30분 ~ 오후 5시

미사: 주일·토요일 오전 11시

소요시간: 기도문 다섯 개를 찾고 걸으며 묵주기도까지 하고 천천히 둘러보시면 2~3시간 정도





성지와 순례지의 차이점이 뭘까? 성지는 103위 성인, 124 복자, 조선 왕조 박해 하느님의 종 133위, 6.25 순교자 하느님의 종 119위가 순교한 곳이나 무덤이 있는 장소로 전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을 말한다. 순교 사적지는 국내 순교자들과 연관 있는 장소, 순교자들이 잡혀갔던 감영, 생가터나 순교자를 기념하는 성당이나 장소를 가리킨다. 순례지는 순교자들과 관련은 없지만 신앙 선조들의 삶과 영성이 담겨 있는 곳 또는 교구 직권자가 지정한 곳이다.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은 순례지에 해당한다.




화면 캡처 2025-02-12 225533.png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8화보호자가 필요하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