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청널
목에 빨간 띠를 두른 고양이가 의자 위에 누워있다. 마치 사람인양 동그랗게 몸을 말고 한 의자를 다 차지하고 서는 인기척에 눈도 뜨지 않는다. 옆 의자를 끌고 와 들여다보는 이가 연신 정수리며 목을 조물거려도 눈을 감은채 야옹거리지도 않으니 괘씸해지려 한다.
"아이고 이뻐라"
"한 10살은 되겠다"
"통통하네"
"얘 이름이 청널이래, 여기가 청널 카페잖아, 얘 보러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온단다."
시끄러워도 고양이는 꼼짝하지 않았다. 빛이 약간 바랜 듯한 갈색 털에 비하여 목에 감은 빨간 띠는 화려하다. 통통한 몸을 말아서 이름표를 달았다는 빨간 띠는 그 속에 폭 파묻혀 있다. 이름표를 보기엔 글러 보인다. 햇살 드는 창가로 긴 의자가 댓 개 놓였고 둥근 유리 테이블을 앞에 놓았는데 거기보다 고양이가 올라앉은 의자 쪽에 가방을 놓았다.
커다란 통유리는 바짝 마른 겨울 햇살을 그대로 관통시킨다. 짙푸른 코랄빛 바닷물이 쉴 새 없이 하얀빛을 쏘아 올려 번들거린다. 마치 새가 나는 듯도 한 주름이 반짝거리며 울렁울렁 물결을 탄다. 와아! 하고 다가간다. 이른 시간인지 카페 안은 모든 테이블이 비었다. 짙은 햇살을 피해서 간접 햇살이 드는 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고양이도 그랬던 거다.
그동안에도 고양이에게 홀린 이는 여전히 쓰담쓰담 공을 들이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고양이가 앉은 의자를 햇살 쪽으로 살며시 돌려놓았다. 그래도 눈을 뜨지 않는 녀석 좀 보소. 거의 두 시간을 머물렀지만 우린 고양이 눈을 끝내 보지 못했다. 당연히 이름표도 못 봤다. 그럼 다시 한번 더 가야 하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 청널 카페에 사는 청널이라는 고양이 넘을 보기 위해.
청널이와 꼭 같은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다. 갈색 줄무늬를 가진 토종 고양이를 우리는 마리라고 이름을 지었더랬다. 이런저런 사연을 타고 초등생이 많은 집에 분양되어 갔지만 꼭 한 번 사진을 받아본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청널을 보며 마리 생각이 문득 지나갔다.
청널은 우리가 싫어서 안 본 게 아니라 안 봐도 아니까 익히 알 수 있는 표정이라 눈을 안 떴는지도 모른다. 제 인기를 식상해하는 녀석이 괘씸하면서도 귀엽다. 고양이는 야행성 동물이지만 낮밤 없이 거의 하루 종일 자는 동물이란다. 피곤해서가 아니라 수면 중에 성장호르몬이 가장 활발히 분비되기 때문에, 잠이 부족하면 면역력도 떨어지니까 그리 잔단다. 그러니 자고 있어도 이해해줘야 한다
일반 고양이보다 중성화된 고양이와 잡종 고양이가 더 오래 산단다. 암컷이 수컷보다 오래 살지만 몸무게가 클수록 평균 기대 수명은 낮아진다니 몸무게는 건강의 척도 인 게 고양이에게도 적용되는 셈이다. 어쩌면 어젯밤 내내 바닷가로 마실을 다녀와서 청널이는 피곤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랑 바닷가를 쏘다녔는지, 주인이 주지 않는 맛난 물고기를 찾아다녔는지 모를 일이다.
혹시 우리를 기다린 건 아닐까. 후다닥 번개 만남으로 한 겨울 바닷가 언덕 위의 찻집에서 본 녀석이지만 저는 또 다른 사연을 품은 게 분명하다. 물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쓰담쓰담하던 이가 왜 그렇게 처음 보는 고양이를 오래도록 쓰다듬었는지. 쓰다듬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림처럼 남은 그 모습 속에 문득 쓸쓸함이 베여온다. 눈감고 햇살 바라기 하는 청널이도 그랬을 것 같은 생각은 너무 큰 비약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