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 강
저 한탄강 위에 만들어 놓은 물윗길을 봄이면 접는다고 2월말에 부지런히 서두는 정보통 친구들을 따라 나섰다. 눈이 많이 와 늘어난 수량 때문에 8키로 중 1.5키로만 개방했다는데 걷기에는 딱 좋았다.
직탕폭포에서 태봉대교를 지나면서 물윗길로 접어들어 송대소까지 출렁이며 걷고 저 하얀 은하수교를 지나 산책길로 빙돌아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옛 신혼 때 살던 동네를 수십 년 만에 지나서 그때 와 봤던 직탕폭포의 어렴풋한 기억만으로 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라고 실망할 거라 장담을 했는데 늘어난 수량 덕분인지 제법 웅장한 맛이 있어 급사과하고 요리조리 사진을 찍어댔다. 용암이 흘러간 주상절리가 양쪽으로 절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물윗길의 감동도 기대 이상이었다. 건너편에서 바라본 송대소의 멋스러움과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탄강의 모습은 특히 더 좋았다.
오랜만에 꺼내 본 황인숙의 강은 단독자로서 홀로 살아낼 것을 주문하며, 토로하지 말라는 형식을 빌어 고독감을 절절히 토로하던 시다. 그때는 구구절절 강의 깊이만큼 위로 받았었는데 지금은 '저미는 애간장'이나 '빠개질 것 같은 머리' 없이 무덤덤하게 살고 있구나 싶은 거리가 느껴졌다.
'붉은 마음으로 살면 몸이 고단하고
붉은 마음을 버리면 삶이 권태롭다
그것이 딜레마다'
'가슴속 붉어도 붉은 거 들키지 않고
슬픔이 깊어도 눈물을 드러내지 않고
기름기 쏘옥 뺀 단아한 흰 그늘로
저기 저 잎 진 겨울나무 같아지는 꿈
오로지 문장의 창 하나 비껴들고
먼 길 붉고 깊게 걸어가는 꿈'
박범신 '순례'를 읽고 여운이 강해 단숨에 읽은 그의 에세이집 '힐링'에 나오는 문장이다.
'단아한 흰 그늘' '잎 진 겨울나무'같은, 이제는 이런 온도와 결이 맞는다.
그래도 숨길지언정 '붉은 마음' 아주 말라버릴세라 때놓치지 않고 슬금하게 물길을 따라 걸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