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나 자신이 가장 원했던 꿈
# 내 1등 취미
나는 취미가 참 많다. 펜싱이나 축구 보기, 글쓰기, 팝송 듣기 등. 모두 중학교에 올라오고 생긴 취미다. 하지만 내 취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코 음악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이라면 항상 깜빡 죽었다.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예술고등학교를 가고 싶은 마음에 열정에 불타며 음악을 사랑했다면, 지금은 나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하나뿐인 친구로서 사랑한다.
# 예고 가려고
나는 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한다. 초등학교 1학년때 아빠가 일본에서 사온 조그만한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했다. 광기에 가까운 재미를 느끼자 시작한 지 9달도 되지 않아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독학해냈다.
그 뒤로 독감에 걸려 심하게 아파도, 아빠가 환기를 시킨다며 열어놓은 커다란 창문으로 살을 에는 추운 바람이 들어와도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바이올린도 비슷한 시기에 학교 방과후에서 시작했는데, 선생님이 별나서 그만두고 개인 레슨을 일찍부터 받았다. 바이올린은 피아노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연주할수록 신기했다. 고작 줄 네 개 위에서 한 손으로는 음을 만들고 한 손으로는 리듬을 만든다는 것이.
바이올린으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고 1년 후 내 음악 사랑은 최고점을 찍었다. 전공을 준비하는 언니, 오빠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고 열심히 연습하여 향상된 실력은 빛을 발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목과 쇄골이 새빨개지고 손가락 살이 뜯어져나갈 정도로 연습한 적도 많다.
중학교 1학년 초반까지 나는 서울예술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다. 매일 서울예고를 가겠다고 떠들어대곤 했다.
어느날 바이올린 연습을 하다 짜증이 났다. 내가 원하는 연주를 오랜 시간 해내지 못해서 답답함이 속을 가득 채웠다. 이런 날은 더는 연습하면 안 된다. 바이올린을 잠시 내려놓고 내 마음을 풀어줄 ‘취미’를 찾아다녔다.
…그런 건 없었다. 음악을 연습하다가 지쳤을 때 내 안식처가 되어줄 작은 숲 같은 건 없었다.
# 잘하는 것 vs 좋아하는 것
신기하게도 중학교 생활을 하다 보니 내 진로는 음악에서 차츰 멀어져 갔다. 그렇게도 원하던 음악 전공 앞에서 더이상은 심장에 불을 붙이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상실감이 든 것도 아니었다. 마침 공부에 재미를 느꼈고 법전을 읽다가 사회과학에 푹 빠져들었다. 자연스럽게 피아노와 바이올린 레슨도 그만두었다.
내가 잘하는 것은 사화과학,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 되었다.
이제 음악은 내가 공부하다가 지치면 에너지를 회복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나에겐 그것이 더 편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이 없어졌으나 이젠 음악에 기대 두팔 벌려 숨을 쉴수 있었다. 또, 학교 예술제 덕분에 1년에 한 두달 씩은 매일 연습해 3년 내내 독주 무대를 했다. 전교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성취감 때문에.
그리고 중학교 3학년, 지금에서야 모든 생각을 정리했다.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남을 필요가 있다고. 좋아하는 것이 생계와 연관이 되면 분명히 힘들 것이고, 때로는 안식처로 더 맞는 ‘좋아하는 일’이 있다고.
그래서 당당히 진로를 바꿨고, 지금 나는 서울예고 말고 서울국제고 예비 신입생이다. 잘하는 일로 직업을 가질 기회를 얻었다.
# 음대 가?
일주일에 한두 번 다목적실에 있는 피아노를 치곤 한다. 내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음대 가?’ 라고 질문하지만 이제는 흔들림이 없어졌다.
공부하다보면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연주 실력이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사실 이제 이것도 두렵지 않다. 음악 없이 못 산다는 그 애정만 있으면 실력이 어찌됐든 상관없는 것 아닌가. 내가 음대를 가려고 남들과 경쟁하려는 것도 아닌데.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면 그게 뭐든 간에 취미로 사랑하게 된다. 남들을 밟고 올라서려고 하다보면 나한테 음악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어지니까 말이다.
꿈의 상실은 맞지만 결말은 아름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