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픽 아나돌_푸투라 서울
보통 전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전시정보를 알고 갈까? 나의 경우를 말해보자면 요즘은 보통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보를 접하고 그중 끌리는 것을 선택해서 간다. 요즘처럼 SNS가 일상화되기 전엔 또 그 나름의 방식이 있었다. 가장 흔한 것이 ‘서울아트가이드’라는 무료 전시정보지와 ‘네오룩’이라는 사이트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었다. 이 두 매체는 이제 그동안 축적한 정보를 바탕으로 일종의 전시 아카이브가 되어 현재도 전시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을 땐 유용하게 쓰인다.
푸투라 서울은 지난 9월 초 문을 연 따끈따끈한 전시공간이다. 문을 열기 몇 달 전부터 나의 인스타그램에 푸투라 서울 개관 홍보 피드가 올라왔다. 레픽 아나돌이란 작가의 미디어 아트 전시였는데 알고 있던 작가가 아닌지라 눈여겨보지 않다가 어느 날 이런 대규모 미디어 전시를 실제로 보면 어떨지 문득 궁금해졌다. 덜컥 예매를 하고 작가에 대해 찾아보니 튀르키예 출신의 꽤 주목받는 작가였다. 요즘 미술계에서도 미디어, AI가 주요한 관심사인데, 이와 관련한 작업으로 이미 미국 MOMA와 영국 사치, 서펜타임 등의 관심을 받은 작가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러닝타임 동안 작품을 지켜보아야 하는 영상 작품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홍보 피드에 올라온 그의 작품은 러닝타임이 있는 영상작품이라기보다는 직관적인 회화작품처럼 보여서 나의 취향과도 맞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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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투라 서울은 북촌길을 따라 한참 올라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개량 한옥집이 즐비한 이 거리에 매우 현대적으로 디자인되어 있으면서도 튀지 않게 잘 스며들어 있어 동네와 이질감이 없는 모습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며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반층 가량 올라가 자리한 건물 뒤 뜰이 바라다 보이는 휴식공간이었다. 곡선으로 마무리된 천장 아래 편평한 반석 같은 돌마루를 놓아 뒤뜰의 작은 정원의 돌벽과 어울리게 하였다. 또 뒤뜰 정원이 주변을 차단하고 깔끔하게 조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한 돌벽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공간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니 ‘차경’의 개념을 활용했다고 한다. 동네와 어우러지도록 건축하고자 했던 건축가의 철학이 엿보이는 구성이었다.
첫 번째 전시공간에 들어갔다. 계단에 앉아 거대한 화면을 바라보게 되어 있었는데, 프로그래머들이 볼 법한 데이터 모델링 작업 화면이 상영되고 있었다. 일부러 전시 정보를 미리 보지 않고 들어갔는데 이를 보니 무슨 내용의 전시가 펼쳐질지 더욱 궁금해졌다.
궁금증을 안고 다음 공간으로 들어갔다. 디지털 세계 안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주는 거대한 실감형 영상 공간이었다. 사실 박물관에서 일을 하며 실감형 영상체험 공간은 수도 없이 다녀봤다. 나름대로 괜찮은 공간들도 있었지만 사실 ‘실감형’이란 말을 붙이기엔 부족한 공간이 많았던 지라 푸투라 전시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기대하면서도 그리 기대하지 않는 양가적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 공간은 그런 의심을 싹 씻어주는 ‘제대로 실감형’인 공간이었다. 거울을 통해 사방으로 펼쳐지는 영상은 나를 작가의 작업 안으로, 즉 디지털 공간 안으로 데려다주었으며, 이를 통해 작가가 실행했던 작업의 과정을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레픽 아나돌의 작업은 수많은 자연 이미지들을 모아 그것을 AI에게 학습시켜 AI가 또 하나의 자연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전시 제목인 지구의 메아리를 AI가 울리는 것이다. 이 전시실에서는 AI가 학습한 수많은 이미지들이 조각조각 펼쳐지다가 그것이 합성되어 웅장한 인공의 자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상영되는데 감각적으로 압권이면서도 이것이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에 묘한 공포감이 드는 공간이었다.
세 번째 공간에서는 천장에서 화려한 색채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울바람>과 <인공현실:태평양>이라고 하는 이 작품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에 관한 정보( 바람에 관한 정보란 풍속, 방향, 돌풍 패턴, 온도 등의 데이터이다)를 수집하여 그것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나는 왜 ‘바람’이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바람’이란 공기의 움직임이다. 그것은 자연적인 어떤 원인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고, 인공적인 원인을 주어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언어적으로 살펴보면 바람은 어떤 분위기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레픽 아나돌의 작업에 관해 생각해 보자. 그의 작업은 자연적 현상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바람이 가지고 있는 속성과 유사점이 보인다. 자연적으로도 일어날 수 있고, 인공적으로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과거에는 인간의 삶이 전적으로 자연적인 생산물에 의존했다면, 이제 인공적인 생산물이 자연적 생산물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작품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인간이 생존하는 방식이 시대의 흐름 속에 ‘변화’하게 된 것이다. 미래가 어떠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인간의 생존 방식 변화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극대화되어 있다. 이제는 AI라고 하는 새로운 방식이 인류의 삶을 또 한 번 뒤집어 놓을 바람이 될 예정이다. 레픽 아나돌이 바람을 선택한 의도가 실제로 거기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존이란 측면에서 여기 서 있는 고정된 인간과 이 인간을 둘러싼 변화하는 환경이란 개념을 표현하기 위한 자연물 소재로서 ‘바람’을 선택한 것은 탁월해 보인다. 또한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방식 또한 압도적이다. 아나돌이 구성한 화면은 구체적인 형상이 없이 오직 움직임만이 보이는데 그 움직임은 색채로 표현된다. 이 색채는 자세히 보면 아주 작은 알갱이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한편으론 자연적인 환경요소일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론 개별적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일 것이다. 즉 바람을 만드는 원인물이다.
마지막 네 번째 공간에 전시된 작품은 <기계환각>이란 제목의 시리즈로 식물, 동물, 풍경, 산호의 총 4가지 소재로 만든 4개의 작품이 상영된다. 영상이 생성되는 메커니즘은 앞선 전시실에서 본 작품들과 같다. 자연의 유전자로 인공적 시각물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다만 AI가 학습한 이미지와 결과물이 동시에 상영되므로 어떤 이미지가 어떤 결과물로 나오는지의 과정이 좀 더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온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각 작품 안에는 후각적 요소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자연의 향기를 재현해 공간에 구현했다고 하는데 사실 전시를 보면서 알아채지는 못했다. 어떻게 보면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향기란 것이 인공향처럼 코를 찌르는 강렬한 향이 아니니까.
전시를 보고 나온 전반적인 소감은 만족스러웠다. 레픽 아나돌의 작품과 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을 전시하기에 새로 만들어진 푸투라 서울 공간이 매우 최적화되어 있다 느꼈고, 그만큼 예술가가 관람객에게 주고자 했던 실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주제적 측면에서는 자연과 인공을 넘나드는 작품을 통해 환경과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분명 있다. 하지만 리플릿에 적힌 것처럼 ‘자연 세계를 보호해야 하는 우리 인간이 책임감을 일깨우며, 강력한 메시지와 행동을 촉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게는 오히려 현재 예술과 과학기술의 융합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인공물 혹은 AI가 어떻게 자연을, 예술을 대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현재의 답을 봤다고나 할까? 또 실무적 측면에서 요즘 박물관 등에서 많이 적용하고 있는 실감형 전시가 어느 지점까지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