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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와 단풍의 최고였던 설악산 공룡능선 등반 이야기

소공원 주차장 -> 마등령 삼거리 -> 공룡능선 -> 소공원 주차장

by 글쓰는 스칼렛


원래는 설악 등반을 1박으로 계획했었다. 그래서 힘들게 소청대피소 예약을 잡았는데 등반 전 날, 호우주의보의 기상악화로 국립공원에서 자동 취소시켰다. 사실 계획할 때부터 비 예보가 있긴 했지만 우리는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래서 남편의 허락을 받아 내고, KTX를 타고 차로 환승까지 해가며 먼 거리의 속초까지 왔었다. 하지만 무겁게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자니 호기롭게 출발했던 처음과 달리 마음이 약해졌다.


'아... 세상에는 내가 도전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도 있구나. 하겠다는 의지만으로 세상이 호락호락하게 허락해주지는 않는구나.'


'날씨'와 '부분통제 해제'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괜히 의욕만 앞서 일을 벌인 것은 아닌지 나의 마음은 '도전'과 '무모함'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것 같았다. 한 팀으로 모인 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대안을 내지 못했다. 남는 것은 기나긴 시간이요, 주룩주룩 내리는 차창밖의 비뿐이었다. 포기로 마음이 기울어지며 기차역을 향해 속초에서 광명 쪽으로 차를 돌렸다. 그런데 막상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반전의 마음이 불쑥 솟아났다. 도전은 도전이었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다음날 많은 비가 오지 않는 이상 작은 비는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설악산 통제 해제'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대피소가 아닌 사설 숙소를 잡아야 했기에 잠은 오히려 숙면을 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가방의 짐도 줄일 수 있었다. 비 맞으며 등반한 경험이 이미 있었다. 천둥과 함께 많은 비 속을 걸어갔던 한라산 등반. 거센 소나기를 만났지만 오히려 덕분에 멋진 폭포를 볼 수 있었던 지리산 등반. 여행이, 도전이 어디 모두 계획대로 되던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더 감격스럽고 잊지 못할 기억을 가졌던 것이 나의 도전이었고 삶이었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한번 해 보자고.'


덕분에 생선구이 맛집을 찾아 즐겁게 식사를 하고 차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드디어, 기다리던 '설악산 부분 통제 해제' 안내가 게시판에 공지되었다.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부랴부랴 숙소를 알아보고 이동을 했다.

그렇게 설악 등반은 시작되었고 마침내 다시 찾고 싶었던 공룡 능선을 밟게 되었다.



운무가 깔린 산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곰탕처럼 뿌옇게 가져졌던 시야에서 산 봉우리들이 멋진 자태를 드러낼 때,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너무 멋졌다. 이게 자연의 신비란 말인가?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경치인가? 나의 마음은 들뜨고 흥분되었다. 수많은 등산을 경험했지만 이런 장관을 눈앞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운동 목적, 마음 힐링으로 등산을 다녔지, 한 번도 운무를 위해 새벽 등반을 시도하지 않았었다. 왜 사람들이 깜깜한 새벽에 출발해서 운무와 일출 경치를 보려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마음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고 감격의 뜨거움이 나를 전율시켰다.




이제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되었다. 이번 등반을 제안한 사랑스러운 동생과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도 인스타를 하고 있어서 사진에 진심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원하는 취향을 맞춰가며 왔다 갔다 부산히도 움직였다. 이 순간이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마침 단풍은 곱게 물들어 있었다.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일하는 유명한 인스타 분도 만났다. 그분 말씀에 의하면, 이번 설악 단풍이 10년 만에 예쁘게 물든 해라고 했다. 절정의 설악에 내가 올 수 있었고, 무사히 등산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고 선물이었다.



오색단풍이 가는 길목마다 반겨주니 기분이 좋았다. 비는 그쳤다. 이렇게 고운 선물을 한 아름 안겨주기 위해 어제 그렇게 비를 내렸던 것일까? 시야는 깨끗해져 있었다. 빗물을 머금은 잎들을 보니 신선한 기운이 더 새록느껴지는 것 같았다.


고릴라 같은 바위가 있는 공룡 능선이다. 설악은 대구의 우리 집에서 정말 멀다. 경비와 시간이 많이 들기에 자주 올 수도 없고 큰 맘을 먹고 와야 한다. 그래서 그럴까? 설악이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일까? 어쩌다 보니 삼 년 동안 매해 한 번씩 설악산을 올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올 때마다 잊지 못할 기억과 행복을 안겨준다. 같이 간 사람들이 좋았고 설악의 풍경이 멋졌다. 발이 아프고 물집이 생기는 부작용도 생겼지만 그것이 대수랴. 설악의 우람함, 거대함, 강인함... 그 속에 곁들여진 단풍과 폭포와 아름다운 경치들... 혼자서 꾸준히 쌓아왔던 등산 경험이 여기서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운해가 있는 배경에서 사진을 찍는 맛이 이런 거구나...

처음으로 가져보는 운해의 사진이 그저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설악은 명산답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핫 스팟이 많아서 좋았다. 우리가 등산시간이 오래 걸렸다면 사진 찍기에 시간을 많이 할당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전대를 잡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바위를 타고...

명산답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다.

그만큼 보람도 쌓여갔다.



우뚝 솟은 봉우리와 멀리 보이는 동해바다...

눈으로 담고,

몸으로 느끼고,

마음에 고이 소중하게 담았다.



신선대에서의 마지막 배경 사진...

벌써 아쉽다. 보고 싶다. 다시 가고 싶다.



오는 길에 본 '뽀뽀 바위'

어쩜 표정도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 긴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처음과 다르게 좋은 기억을 가지고 떠날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이제 돌아가 일상을 열심히 살 것이다.

설악의 기운을 기억하고, 다음을 고대할 것이다.

마음 편히, 떳떳이 그곳에 발을 뗄 수 있게,

부지런히 살 것이다.

다시 산봉우리를 마주하며,

온전히 산과, 공기와, 자연과, 여유를 느낄 수 있게

스스로에게 후회없는 삶을 살 것이다.



1. 등반 전 날부터 공룡능선 초입까지

상세 이야기입니다.

https://brunch.co.kr/@55864ebdcffb4f7/128


2. 설악의 풍경과 단풍을 보며 사색했던 글입니다.

https://brunch.co.kr/@55864ebdcffb4f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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