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또, 거짓말하시네

거짓말도 잘하셔

by 글임자
2023. 8. 30. 깨꽃 피고 지고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어머님, 아침에 전화드렸더니 안 받으시던데 어디 다녀오셨어요?"

"응, 요새 깨 턴다."

"네??? 깨 하셨어요? 올해는 아무것도 안 하신다면서요?"

"그래도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하냐. 땅이 있으니까 뭐라도 해야지. 그냥 놀리면 풀만 돋고 못쓴다."

"그래도 아버님 어머님 두 분 다 무릎도 안 좋으신데, 날이 이렇게 더운데 일하고 오셨어요?"

"어쩌겠냐, 시골에서는 할 수 없다. "

"아이고 어머님, 날마다 폭염인데 이 더위에 나가신 거예요? 그러다 큰일 나요, 어머님."


어머님의 거짓말이 점점 늘고 있다.

무릎이 안 좋아서 정말 올해는 아~~~~~무 것도 하나도 안 하실 거라더니, 올해도 또 하셨다.


"깨는 가물어야 잘 된다던데 올해는 장마도 길고 비가 많이 와서 잘 안 됐겠네요?"

"응, 그냥 우리 먹을 것은 나왔다. 조금만 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확실히 배당받게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그 참기름 냄새를 어느새 나는 킁킁거리며 맡고 있었다.

친정 부모님도 농사를 지으시기 때문에 시가에서는 결혼 초반에 농산물을 좀 받아먹었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아예 안 받겠다고 선언했다. 우리가 뭘 많이 먹는 집도 아니고 친정에서 야금야금 받아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쩔 땐 그것도 다 못 먹고 처치 곤란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없으면 조금 사다 먹으면 될 일이다. 그러면서도 당장 양념이 떨어지면 엄마에게 전화부터 하는 약은 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도 노동력을 자주 제공해 주기 때문에 공짜는 아니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곤 한다.


"어머님, 제가 그렇게 조심하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말을 안 들으세요? 어머님은 계속 농사 지으시면서 저희 부모님 보고 자꾸 일 줄이시라고 그렇게 말하실 건가요? 어머님부터 결단을 내리세요. 아프다 아프다 하시면서 자꾸 뭘 그렇게 하세요? 그거 사 먹으면 그만이지 얼마나 한다고, 두 분이서 뭘 얼마나 드신다고 그렇게 힘들게 이 땡볕에 나가시는 거예요? 정말 합리적인 게 뭔지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그러다 병원비가 더 들어요. 두 분만 드실 거면 고추, 깨, 그런 거 제일 좋은 걸로 실컷 사 드실 수도 있잖아요. 자식들 줄 생각하지 마시고, 알아서 사 먹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마시고 우선 두 분 건강을 잘 돌보셔야죠. 물론 소일거리 삼아 조금씩 하신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그게 말처럼 쉽나요? 잘 안되니까 문제지요. 그냥 눈 한 번 질끈 감으세요. 밭에 풀이 돋든지 말든지 그냥 내버려 두세요. 요즘 날마다 폭염이라고 특히 어르신들 밭에 나가지 마시라고 안내 문자가 그렇게 오는데 도대체 어쩌자고 자꾸 그러시는 거예요? 자식들이 넷이나 있으면 뭐 합니까? 같이 살지도 않는데 부모님 두 분이 서로 신경 쓰고 조심하고 사셔야죠."

라고는 말도 못 꺼냈다.

친정 부모님께는 10년 넘게 저렇게 똑같이 자주 하는 말이었지만 차마 내 친부모님도 아닌데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나서지 못했던 것이다.

며느리는 엄연히 남이다.

나는 그분들의 며느리이지 딸이 아니다.

내 부모님에게는 저렇게 말할 수 있지만 남편의 부모님에게까지는 대놓고 말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그분의 아드님께서 자신의 집 일에 '나서지 말라'라고 나를 단속했다.

그리고 자꾸 같은 말을 하면 그분들도 듣기 싫으실 테고.

하지만 친정 부모님께는 끈질기게 잔소리하고 있는 중이다.


칠순, 팔순이 넘으신 어른들이 며느리에게 이런저런 소리 들어가며 며느리가 하란 대로 하실 분들도 아니지마는, 나는 진심으로 염려스러운 마음을 담아 한 번씩 넌지시 말씀드릴 뿐이다.

"얘기하지 마. 그런다고 일 안 하실 분들도 아니고."

남편은 내게 그렇게 말하지만 하시더라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물론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긴 하다.)하셨으면, 나는 그뿐이다.

날씨도 선선하고 좋을 때만 골라서 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농사일이란 게 다 때가 있는 법이라 한여름에도 소매를 걷어붙여야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고 제때를 놓치면 일 년 농사를 망치는 건 순식간이라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하긴, 우리 부모님도 내 말을 그렇게 안 들으시는데...

그저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는 종종 안부 전화를 드리면서 동향을 살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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