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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22. 2023

거짓말 티 나요,어머님

언제쯤 편해지려나

2023. 9. 21.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어머님, 저녁은 드셨어요? 목은 좀 어떠세요?"

"많이 좋아졌다. 걱정 말아라."

"목소리가 별로 안 좋으신데요?"

"으응... 아니다."


말로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지만 목소리는 영 아니다.

어머님의 뻔한 거짓말은 목소리에서 다 들통나기 마련이다.


"벌써 8시가 다 됐네. 전화한다고 해놓고 깜빡했네."

저녁을 먹고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다.

통화 기록을 보니 어느새 3일 만이었다.

방금 전화한 것 같은데도 눈 한번 깜빡하고 나면 이 삼일은 훌쩍 지나가 있곤 한다.

그날도 어머님이 전화를 받으셨다.

얼마 전에 전화드렸을 때 어머님이 갑자기 목이 안 돌아가고 아프다고 하셨다.

병원도 다녀오시고 지금 약도 드시고 있는 중이라 하셨는데 목소리가 좀 가라앉은 것 같았고 당신은 괜찮아졌다고 하셨지만 며느리 귀에는 괜찮게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님, 목은 좀 어떠세요? 아직도 고개 돌리기가 힘드세요?"

"이젠 나아졌다."

"그런데 왜 갑자기 고개가 그렇게 됐을까요? 주무시고 났는데 느닷없이 그랬어요?"

"일하다 그랬다. 고추 다듬는다고 하다가 자고 나니까 갑자기 고개가 아프더라."

"저희도 멀쩡하다가 가끔씩 그럴 때 있어요. 어머님은 연세도 있으시니까 더 조심하셔야 돼요."

"그러게 말이다. 시골에서 살면서 일을 안 하고 살 수도 없고 하다 보니까 또 그렇게 됐다. 엄마네는 고추 많이 따셨냐?"

"저희 집은 이번에 병이 와서 얼마 못 따셨대요. 그냥 저희 먹을 만큼만 따셨나 봐요."

"아이고, 사돈도 일을 줄이셔야 될 텐데."

"어머님도 당분간은 좀 쉬세요. 아버님 혼자 하게 되셔도 어쩔 수 없잖아요. 잘못하면 더 아프고 고생만 해요."

"그래. 그럴란다. 병원에서도 일을 안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된다냐."

"그래도 괜히 일 한다고 하시다가 나중에 더 아프면 어머님만 고생하시잖아요. 전 엄마한테 맨날 말해요. 농사지어서 버는 게 아니라 나중에 병원비가 더 들어간다고요."

"그래, 네 말이 맞다. 진짜 그런다. 그래도 어떻게 안 할 수가 있냐."

어머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 또한 어쩔 수 없다.


"어머님, 어머님이 그걸 왜 하세요? 애초에 어머님은 무릎이 너무 안 좋아서 올해부터는 아무것도 안 하기로 하셨잖아요? 저희 앞에서는 절대 농사 거들떠도 안 보겠다고 하시고 자꾸 이러시기예요? 고추 농사도 어머님은 절대 손 안 넣어 드릴 거라고, 절대 농사일 안 하실 거라고 아버님께 분명히 말씀하셨잖아요. 아버님이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하셔서, 다들 말렸는데 혼자 다 하시겠다고 고집 피우셔서 200주나 심으신 거잖아요? 아버님도 무릎 안 좋으니까 그냥 두 분 드실 것만 좋은 것으로 사서 드시는 게 남는 거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어요? 편하게 사서 드시면 될 것을 고생해서 농사지으실 게 뭐 있냐고 말씀드렸는데 아버님이 다 할 수 있다고, 어머님이 안 도와주셔도 혼자 다 감당할 수 있다고 저렇게 많이 심으신 거잖아요. 버스 올라타는 것도 힘들어하시는 분이 지금 고추 농사가 웬 말이에요? 어머님, 잘 생각해 보세요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말이에요!"

라고는 그날도 말씀드리지 못했다.

시가에 가서 마른 고추 꼭지 하나 따 준 적도 없으면서 먼지 묻은 고추 하나 닦아주지도 않으면서 입방정만 떨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님 마음을 왜 내가 모르겠는가.

어머님 상황도 이해 안 되는 바 아니다.

이런 똑같은 일들이 친정에서도 일어났는데.


칠순이 넘은 지 벌써 몇 해던가.

최근에는, 진심으로 어머님은 당신 건강을 생각해서 과감히 많은 농사일에서 손을 떼셨다.(고 늘 주장하셨다.)

하지만 아버님은 여전하시다.

하지만 그건 결코 팔순이 지난 아버님이 아주 건강하시고 체력이 좋아서도 아니다.

본디 부지런하신 분이라 어쩔 수 없다고 어머님도 체념하신 지 오래다.

하지만 한 집에 살면서 눈으로 보고만 있을 수가 없는 어머님은 '어쩔 수 없이' 또 두 팔을 걷게 되신 것 같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어머님도 여간 곤란하게 아닐 것이다.

당장 내 몸도 편치 않은데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매워도 너무 맵다.

시어머니의 가을은 맵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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