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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06. 2023

체험활동은 혼수 밑천

체험활동으로 살림 장만

2023. 12. 5. 딸이 만든 캘리그래피 책갈피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엄마가 보면 좋아할 만한 걸 가져왔어."

"우리 아들이 또 어떤 멋진 선물을 가져오셨을까?"

"아마 엄마가 깜짝 놀랄 거야."

"진짜 기대된다. 빨리 보고 싶어."

"짜잔~ 어때? 예쁘지?"


아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업사이클링 한 결과물을 내보였다.

솔직히 깜짝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선생님이 미리 알려주셔서 대충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진작에 짐작했고 내 예상과  맞아떨어지는 것을 아들은 가져왔을 뿐이다.


여기서 잠시 라떼 타령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어릴 때만 해도 그런 건(?) 구경도 못하고 살았다.

아니, 이렇게나 다양한 체험활동을 안 했던 것 같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별 걸 다 만들어 온다.

향수, 무드등, 비누, 저금통, 액자, 한지 바구니, 책갈피 등등 이대로 계속 간다면 혼수 장만도 문제없을 것 같다.

하지만 체험 활동으로 학교에서 냉장고나 세탁기를 만든다는 소문은 아직 못 들어봤다.

초등학교에서 아파트를 장만할 일도 없겠지?

어지간한 살림살이는 다 갖춰졌으니 저것들을 들고나가 독립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요즘 너희는 정말 다양한 걸 많이 만든다. 엄마 학교 다닐 때는 그런 게 전혀 없었던 것 같은데. 자수하고 저고리 만들고 그게 다였던 것 같은데. 신문지 물에 적셔서 뭉쳐가지고 가면 같은 거 만들고. 초 가져와서 교실 바닥 문질러서 닦고 그랬는데."

느닷없이 기원전 5,000년 경의 이야기까지 꺼냈다.

왕년에 했던 오만가지 활동들을 끄집어낼수록 아이들과의 세대 차이를 더욱 실감하게 될 뿐이다..

"초를 왜 바닥에 문질러? 불을 켜야지. 요즘은 엄마 때랑 달라."

딸은 내 라떼 시절을 살아 본 것도 아니면서 아는 체를 다 했다.

도시락과 급식 사건을 잇는 핫한 이슈로 다시금 옛날 사람인 엄마의 과거가 떠오른 것이다..

"그래. 맞아. 아무튼 좋은 세상이야, 요즘은."

"그럼. 요즘같이 살기 좋은 세상이 없지. 옛날에는 이런 것도 없었을 거 아냐."

"너희는 정말 좋은 시대 타고났다."

"아니지, 엄마. 전생에 나도 옛날에 태어났을 수도 있잖아."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땐 내가 엄마였을 수도 있고 엄마가 내 딸이었을 수도 있지."

"맞다, 그랬을지도 모르지."


언제까지 아이들의 장인정신이 깃들 결과물들에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야 하나.

저 많은 것들을 다 어디에 둬야 하나.

야금야금, 티 나지 않게 은근슬쩍 시나브로, 쥐도 새도 모르게,

언젠가 처분해야 할 '짐'이 될 수도 있다.

스리슬쩍 한 두 개씩 요단강으로 보내버린 수도 상당하다.(이 고백장이 그들에게 최대한 늦게 발각되기를...)

나름 요긴하게 여기저기 두며, 종종 느닷없이 새삼스레 칭찬세례를 쏟아내며 남매가 얼마나 대단한 작품들을 만들었는지 야단스럽게 반응하곤 한다.

이제 몇 년 안 남은 거겠지?

설마 중학교 가서도 그런 걸 만들어 오는 건 아니겠지?

그 와중에 딸이 캘리그래피로 완성한 책갈피는 진심으로 마음에 드니 이를 어째.

저런 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종종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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