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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07. 2023

그 선 넘으면 안되지

남편 일에 나서는 거 아니니까요

2023. 12. 5.

< 사진 임자 = 글임자 >


"진짜 하기 싫다. 내 대신 좀 할래?"

"아니."

"그래도 나보다 당신이 더 많이 해 봤잖아."

"안 할 거야."

"새벽부터 가서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데, 주말에 말이야."

"다른 건 해 줄 의향이 있지만 그건 정말 싫어. 절대 안 해"


그 양반의 또 '하기 싫어 병'이 도졌다.

나는 '절대 안해 병'이 도졌고 말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나는 그것을 대신할 자격이 없다.

둘이 또 쓸데없는 소리만 했다.


지난 주말이었던가.

그 양반은 임용시험 감독을 하러 가야 하는데 진심으로 안 하고 싶다고 내게 대신해 달라고 아무 영양가 없는 소리를 했다.

"내 대신 좀 해 줘."

무턱대고 아무 말이나 해보는 양반이다.

얼마나 스트레스였으면 저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걸까.

하지만 나도 진심으로 다른 건 몰라도(아니, 어쩌면 솔직히 그때그때 달라지겠지만) 시험 감독만은 안 하고 싶다.

공무원이 된 후 처음에는 그냥 시키는 대로 다 했다.

갑자기 공무원 시험장에 감독으로 동원되던 첫 해에 나는 얼마나 들뜨기까지 했었던가.

꼬질꼬질한 공시생 신분으로 시험만 보러 다니다가 이젠 시험 감독이라니.

거의 전 직원이 동원되다시피 하는 시험이라 공무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하라고 하니까 했다.

내가 정말 해도 되는 건가? 하는 미심쩍은 마음마저 잠깐 들었다.

직접 시험장에 투입되기 전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다.

살짝 설레기까지 했다, 난생처음 해 보는 일에.

물론 공시생 시절에도 다른 시험 감독을 좀 해 보긴 했다.

그런데 공무원 시험 감독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라고 나만 느꼈다.)

처음 감독을 해 보고 나는 굳게 다짐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그때 일당으로 5만 원을 받았던가?(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가장 최근에 공무원 시험 감독을 갔던 건 2017년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일당이 6~8만 원이었던 것 같다.

일당을 받긴 받았으나 순식간에 탕진을 해버렸으니 가물가물할 뿐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는 저 정도 일당이면 꽤 괜찮은 게 아닌가도 싶었다.

물론 시험장에 투입되기 전날까지는 말이다.

5만 원도 많다고, 그 정도면 거저라고 단단히 착각을 했던 9급 시절이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말이다.

누구는 하고 누구는 빼고 그런 것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공무원 사회는, 다른 직장도 비슷하겠지만, '무조건'인 게 좀 있었다.(고 돌이켜 보게 된다.)

공무원의 8할은 일단 동원하고, 착출 하고, 따지지 않고 투입시키는 것이다.(고 혼자만 회상한다.)

중대한 시험이니(세상에 어느 것 하나 중대하지 않은 시험이 있겠냐마는) 주의사항을 교육받고 나니 기분이 묘해지기까지 했다, 물론 처음 감독으로 일하게 됐을 때만이다.

그다음부터는 은근히, 안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시험 감독이라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많은 게 아니다.

물론 시험 보는 내내 가장 긴장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수험생들이겠지만 감독하는 사람도 수험생 못지않게 스트레스까지 받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행동 하나하나 조심해야 하고 행여라도 수험생들을 거슬리게(?) 해서는 절대 아니 된다.

그런데 그런 무지막지한 일을 내게 하청을 주시겠다고, 그 양반이?

솔직히, 우리 그런 사이 아니잖수?

그런 일까지 내가 떠안을 정도로 우리가 가까운 건 아니잖아.


아무리 부부라도 떠넘길 일이 있고 대신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계산은 정확히 해야겠지?

애초에 자격미달인 나는 그저 그 양반의 하소연의 대상으로 족하다.

부부는 그런 사이니까,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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