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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08. 2023

마지노선 끝난지가 언젠데

크리스마스가 벌써야?

2023. 12. 7.

< 사진 임자 = 글임자 >


"합격이가 대놓고 크리스마스 때 선물 뭘 줄 거냐고 그러더라."

"무슨 소리야?"

"작년에 우리 둘이 짜고 한 거 다 들켰잖아. 그래서 이젠 아예 대놓고 요구하더라니까."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우리 집 누가 산통 다 깼지."


죄인은 말이 없었다.

저렇게나, 본인이 다 저질러놓고도 기억을 못 하다니.

이런!


"작년에 내가 제발 가만히 있으라니까 누가 나서서 애들이 다 알아버렸잖아."

"그랬나?"

"그랬나가 아니라, 그랬어."

"그래."

"아무튼 작년이 마지노선이었어. 그래도 오래 버텼다."

남편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진한 얼굴로 나를 빤히 봤다.

적어도 양심이 있다면 나를 곁눈질로 보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옳다고 나만 생각했다.

내가 작년에 얼마나 공을 들여 아이들을 속이기(?) 위해, 아니지, 두 어린이들의 환상을 지켜주기 위해(어디까지나 내 입장에서만이다.) 애를 썼는데... 하지만 산타 할아버지니 크리스마스니 하는 이런 것들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모르면서 나름 후하게 인심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있었는데 남편이 그동안 공을 들인 나의 결정체를 작년에 허망하게 무너뜨려버린 것이다.


"엄마, 올해 크리스마스 때도 선물 줄 거지? 어차피 우리한테 다 들켰으니까 괜히 힘들게 숨기고 그러지 말고 그냥 직접 주는 게 어때?"

어마?

얘 좀 보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짜고짜 당당히 요구를 다 하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이참에 단단히 한몫 잡으려고 한다'라고 한다지 아마?

4학년 때까지는 긴가민가 하더니 이젠 다 알아버렸으니 피차 피곤하게 소꿉놀이 같은 건 하지 말자고, 저 혼자서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이라도 준비한 모양이다.

"합격아, 근데 왜 엄마가 크리스마스에 너희한테 선물을 줘야 하지?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인데, 네 생일도 아닌데?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부처님 오신 날도 선물해야겠네?"

라고 입 한 번 뻥끗했다가는

"그럼 그동안 엄마는 왜 우리한테 선물 줬었어? 그것도 몰래 숨겨서 정말 산타 할아버지가 준 것처럼 속이고? 그럼 처음부터 주지 말았어야지. 우리 계속 속이면서 그랬잖아?"

라고 항의할 게 불 보듯 뻔했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안 봐도 비디오'라고 한다지 아마?

아이들이 그런 낙이라도 있어야지, 나는 단지 그런 단순한 의미에서 그래왔을 뿐이다.

그리고, 속였다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그냥 아이들의 동심을 최대한 지켜주고자 노력했던 엄마의 몸부림이라고 하자꾸나 차라리.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그런 어릴 적의 추억조차도 없었다.

정말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는 요즘처럼 검색만 하면 다 들통나는 그런 세상도 아니었다, 적에도 나에게는.


"엄마, 사실 산타 할아버지는 가짜라며? 엄마 아빠가 선물 사놓고 거짓말로 산타 할아버지가 준 거라고 그런다던데? 아니지, 엄마? 내 친구 형이 5학년인데 형이 그랬대, 내 친구한테. 진짜야? 아니지, 엄마? 산타 할아버지는 진짜지? 진짜 있는 거지? 그렇지?"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그랬다.

어리고 순수했다.

마냥 예뻤다.(물론 지금도 예쁘긴 하지만)

그런데

"에이, 엄마. 어차피 나도 다 알아, 이젠. 그러니까 괜히 고생하지 말고 OOO 사줘요. 알겠죠? 라켓 배송으로 할 거지? 지금 주문하면 내일 받을 수 있겠지? 엄마는 오우 회원이라 배송비도 없잖아."

아들은 3학년이 되고 세상을 알아버렸다.

제 누나보다 몇 년 일찍 세상에 눈을 뜨게 된 데에는, 거기에는 2살 연상의 누나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동생은 세상을 누나에게 배운다.

작년에 나의 어설픈 계략(?)과 남편의 어이없는 발설로 말미암아 크리스마스의 두 얼굴을 다 꿰뚫었고, 우리나라 택배 배송 시스템의 현주소를 다 간파했다, 고작 1 년 사이에.

결정적으로 라켓 배송이 산타 할아버지의 낭만을 뻥 멀리멀리 날려 버렸다.


그래도 나름 선방했다.

딸이 4학년 때까지, 아들이 2학년 때까지 산타 할아버지를 믿어왔으니(2학년이면 아직 몇 년은 더 어찌해 볼 수도 있었는데 손위 형제자매가 있는 어린이의 숙명적인 한계다), 그 믿음이 비록 아빠에 의해 산산이 깨져 버렸지만 그 정도면 양호하다.(고 애써 혼자 위로한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나도.

이젠  (아직 실체도 없는) 손주들을 위한 준비를 시작할 때다.

아이들이 결혼을 할지 안 할지, 자식을 낳을지 안 낳을지도 모르는 마당에...세상 가장 무모한 준비다,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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