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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31. 2023

인사발령, 화분과 쿠폰 사이에서

직장인 최대의 갈등


< 사진 임자 = 글임자 >

2023. 12. 30.


"화분을 보내는 게 나을까, 쿠폰을 보내는 게 나을까?"

"내가 화분 배달해 줄게, 그것도 아주 싸게!"

 

전혀 먹혀들 것 같지 않아 보였지만 일단은 말하고 보는 거다.


"직원들 다 가는데 뭐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뭐 하려고?"

"화분이라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요즘도 인사 나면 화분 보내고 그래?"

"쿠폰을 보낼까?"

"그것도 괜찮네. 애들 있는 집은 애들 좋아할 만한 걸로."

"화분 하나에 10만 원에서 15만 원은 할 텐데."

"무슨 화분이 그렇게 비싸?"

너무 멀리 가시네.

이 양반이 이제 내가 직장생활 안 한다고 너무 과장해서 말하는 거 아니야?

한 오백 년 전에 내가 승진했을 때 새 발령지로 그 양반이 내게 보내 준 허술하기 짝이 없(어보이)는 화분도 5만 원씩이나 했다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던 과거는 이제 다 잊었다.

"팀장님은 그래도 아무 거나 할 수 없잖아."

"적당한 걸로 하면 되지. 누가 뭘 보낸 지도 모를 텐데. 그리고 솔직히 화분은 관리 안되면 죽고 버려지고 그러는데 너무 아깝더라. 처음 며칠만 그럴듯하고 나중에 보면 다 밖에 나와서 죽어가더라."

"그래도 그냥 넘어가긴 그렇잖아."

그 양반은 과연 화분을 보내려는 것인가,

금분을 보내려는 것인가?


항상 그렇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뭔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 같이 일한 정이 있는데, 함께 한 시간이 있는데, 모른 척하고 넘어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눈 한번 질끈 감아버리는 게 가장 어렵다.

사람이, 또 그게 그게 아니잖은가?

그냥 안 주고 안 받기, 그게 최고 같은데 정작 당사자들은 그게 말처럼 쉬울 수가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마음이 더 가는 직원이 있으면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니까.

"팀장이든 그냥 직원이든 할 거면 비슷한 걸로 해야 하지 않을까? 그냥 형편에 맞게 하면 되는 거지. 우리 외벌이인 거 다 아는데(이럴 땐 외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기 좋다.) 거창한 거 바라지도 않을 거야. 마음이 중요한 거지, 겉치레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런 의미에서 집에 화분도 많은데 내가 싸게 해 준다니까? 내가 직접 배달도 해 줄 수 있어. 다 이고 지고 갈게. 시중 반값으로 말이야. 가뜩이나 집에 화분도 넘쳐나는데, 산세베리아 저것도 꽃집에서 사려면 10만 원은 줘야 할걸, 저렇게 크고 많잖아. 금전수는 어때? 금전수가 있으면 재물운이 있다잖아."

집에 이렇게나 화분이 많은데, 사 왔다고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만큼(이라고 나 혼자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지만) 치장해서 보내 줄 의향도 있는데 그 양반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다른 건 못해도 '화테크',  화분으로 어떻게 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고 얼토당토않은 자신감이 스멀스멀 생겨난다고 착각하는 중이다.)

어쩔 수 없다, 그 직장인이 몇 년 후 승진하면 그 사무실에나 잔뜩 보내든지 해야겠다.(고 나 혼자만 또 굳게 다짐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 일급비밀이 그 직장인에게 새어 나가는 날에는 새 근무지에 발도 못 들이도록 제지당할 게 불 보듯 뻔하긴 하지만 말이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발령 선물.

승진을 축하하고 발령 난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뭔가 주고는 싶고, 안 주고 넘어가자니 서운하고, 대체 뭘 해줘야 한담? 자칫 전 직원 인기도(?) 자랑 대회 같이도 보이는 그 요망한 것.

이런 것까지 고민하고 살아야 하는 직장인은 참 피곤하겠어.

화분 얘기하니까 갑자기 생각이 난다.

그 양반이 올해 발령받고 사무실로 받은 화분이 하나 있다고 했는데,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잊지 말고 집으로 챙겨 오라고 했는데, 분명히 관리도 안되고 시들어가고 있을 텐데(지난 근무지에서도 발령 선물로 받은 화분이 몇 개 들어왔는데 한 오백 년 전에 다들 요단강을 건너가셨다는 비보를 들은 것이 있다, 어쩌면 지금 사무실에 있는 화분도 이미 기원전 3,000년 경에 요단강을 건넜을지도 모르는데) 진작에 집으로 좀 가져오라니까 하여튼 내 말만 안 듣는 양반이시다.

보내 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잘 키워야지, 순간 기분만 내라고 보내 준 것이 아닌데 말이다.


인사이동 시기마다 고민되는 직장인의 영원한 난제,

무엇으로 축하를 할 것인가.

달랑, 말 한마디로는... 너무 성의 없을까?

받는 사람도 결국 빚이라고 느끼는 그것, 품앗이로 변질해 버린 오랜 문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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