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Jan 02. 2024

겉 다르고 속 다른 부모

모순의 부부

2023. 12. 31.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제 방학도 하고 했으니까 뭘 해 볼래?"

전부터 방학하기만 손꼽아 기다린(게 분명하다고 내가 확신하는) 남편은 아이들을 상대로 틈틈이 압박하고 있다.(고 나는 요즘 느끼고 있다.)

"방학이니까 놀아야지."

제 아빠의 의욕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관심도 없는 딸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이 양반이 또 슬슬 아이들에게 대놓고 조언을 가장한 압력을 넣고 있는 건가?


"이제 합격이도 올해는 6학년이야. 내일모레 중학교 가는데 그때 가면 공부하는 양도 많아져서 힘들어질 수 있어. 이번 방학 때 미리 준비하자."

그러니까,

그건,

남편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다.

(지금도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많이 노는 편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이왕이면 공부가 아닌 나머지 중에서) 최대한 많이 놀게 하고 싶어 하고, 남편은 이번 기회에(?) 뭐라도 (이왕이면 공부 쪽으로) 최대한 많이 하게 하고 싶어 했다.

"왜 애들한테 그렇게 무책임해?"

라는 소리까지 들은 나는 가끔 남편이 좀 지나친 게 아닌가,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닌가, 아이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본인의 기준에 맞춰 본인의 의지로 아이들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무엇보다도 당사자는 아이들이다. 남편이 옆에서 조언을 하고 약간의 방향을 잡아 줄 수는 있겠지만, 너무 다그치면 오히려 반감만 사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물론 어느 정도 기본은 해야 한다고 하는 남편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일단은 아이들의 의사가 먼저가 아닐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애들이 무조건 그냥 쭉 놀고 싶어만 하네."

라고 말하면서도 은근슬쩍 바람도 넣어 주고, 솔깃한 제안도 해 가며 어르고 달래서 아이들이 현상 유지 정도는 하고 있는 것 같다. 원도 한도 없이 실컷 놀고 나면 노는 일도 지겨워져서 차라리 공부가 하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는 밑도 끝도 없는 막연한 환상 같은 게 내게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원 없이 실컷 놀고도 공부는 안 하고 싶어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마음의 각오는 하고 있긴 하다.

물론 우리 부부는 두 아이가 '무조건' '공부만' 하는 아이로 자라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1등 만을 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공부에 흥미가 없다면 (말로는) 다른 길도 많으니 충분히 지지해 줄 의향이 있다고 둘 다 말은 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일정한 학습량을 매일 할당해 주고 있다.(물론 그 할당량을 채우면 나머지는 완전한 자유시간이 보장된다.)

살아가는 데는 어느 정도 배워야 할 것들이 있고 익혀야 할 것들도 있고,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도 있다. 부모로서 어느 정도까지 지도해 주고 한계를 정해줘야 할지 때로는 혼란스러울 때가 있고 정답이 있는 길이 아니니 나름의 소신대로 밀어붙여야 할 때도 있다.

아이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고 싶지만 너무 방만하지 않게, 너그럽게 대하고는 싶지만 호락호락하지는 않게, 자녀를 키울수록 더 어려워지기만 하는 문제들이 있다.

그래도 두 아이가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밖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아니니까(그렇게 믿고만 싶다.) 최소한의 사람 구실은 할 거라고 확신하며 살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신경 쓰이는 오만가지들이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습량이 늘어나고 자유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아이들은 그저 숙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 대학은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라고 하면서 '그래도 한 학년씩 미리 대비하는 게 좋다'며 슬쩍 한 마디씩 흘리는 건 모순이 아닌가? (물론 그런 말을 흘리는 사람은 단연 남편이다.)

남편이나 나나 그렇게 극성맞은 사람들은 아니라고 서로 우기고 있긴 하지만 어떤 모습들을 보면 이런 게 극성맞은 부모의 얼굴이 아닌가도 싶다, 솔직한 마음은.


그래서,

부모 교과서는 없는가 보다.

단순히 책을 보고 배우고 시험 보고 한다고 해서 해결될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서 말이다.

도대체 왜 부모 자격시험은 없는 것일까 의아해했다가도 내가 그 시험을 치르면 점수가 얼마나 나올까를 생각하면 차라리 없는 게 더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정답도 없고 사람 사는 모습은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아서,
똑같은 아이가 세계에 단 한 명도 없듯이 똑같은 집은 세상 어디에도 없어서, 교과서에 다 실을 수가 없어서... 아마도 그래서, 하고 혼자만 생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1월 1일에도 산으로 출근했어요, 떡국 나르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