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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03. 2024

어떤 무한 리필

지극히 엄마 입장

2023. 12. 22.

< 사진 임자  글임자 >


07 : 00

반디를 켜고 Start English로 기상해 새 밥을 짓는다.

07 : 20

과일을 준비하며 Easy English로 넘어간다.

밥상이 다 차려지면 들리는 문장 그대로 메모를 하며 표현을 익힌다.

07 : 40

'i've got the power'라는 외침을 신호탄으로 슬슬 아이들을 깨울 준비를 한다.

아직 오전 7시 40분이지만

"8시 다 됐다."

라는 과장법을  동원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들과 딸에게 말해준다. 하지만 방학이니만큼 굳이 그 이른 시각부터 깨울 의지는 그다지 강하지 않다.

08 : 00

모닝스페셜 헤드라인 뉴스가 흘러나오면 직장인은 출근하고 본격적으로 남매를 깨울 준비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좀 알아줘야 하니까, 거기서 표현 하나라도 건지면 횡재하는 거니까, 만에 하나, 그럴 리도 있으니까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아는 단어, 아는 표현 하나라도 건지면  그날은 운수 좋은 날, 너무 호들갑은 떨지 않되 은근슬쩍 볼륨을 올리며 아이들 가까이에 핸드폰을 갖다 댄다.

때마침 한 명이라도 일어나는 어린이가 있으면 뉴스 기사를 듣고(영어 뉴스이지만 영어로만 하는 방송이 아니다. 한글과 영어가 섞여 있다, 물론.) 남매가 관심을 보이는 주제에 대해 토론을 가장한 아무 말 대잔치를 서슴지 않는다.

가장 친근하게(물론 내가 느끼기에만) 느껴지는 폴 선생님이 나오시는 날에는 남매도 약간 더 흥미를 보이기 때문에 그런 순간들을 잘 포착해야만 한다.

09 : 00

여름에는 새벽 5시부터 거의 본방송을 다 듣지만 쌀쌀한 겨울인 데다가 아이들도 겨울 방학중이므로 굳이 무리는 하지 않으려고 오디오어학당으로 넘어간다.

바야흐로 Easy Writing 시간이다.

특히 딸이 좋아하는(어쩌면 또 엄마 혼자만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유 선생님과 세리나 선생님의 시간이니 9시부터는, 이왕이면 같이 듣고 싶어 아침밥을 미끼로 본격적인 기상 재촉을 한다.

나의 하루도 9시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20분 동안 기록하면서 방송을 듣다가 아이들에게도 새로 나온 표현이나 이미 알고 있는 표현 중에서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만) 관심 있어할 만한 내용을 알려주고, 들려주고, 보여 준다.

노는 귀에 염불 소리 대신 반디를 들려주자.

09 : 20

귀가 트이는 영어는 작년 하반기에 뉴스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그냥 가볍게 흘려듣기로(물론 다 알아들어서는 아니다.) 했으므로 크게 비중을 두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아는 내용이 나오면  또 노트북을 켤 수밖에 없다. 막간을 이용해 설거지와 청소를 간단히 하고 몇 마디 한다.

"얘들아, 혹시 뭐 재미있는 내용 있으면 엄마한테도 알려줘. 설거지하니까 엄만 잘 안 들려. 알았지?"

라며 부탁을 가장한 의무감을 준다.

09 : 40

이젠 입이 트이는 영어 시간,

나도 사연 보내봐야지, 마음먹은 지가 1년이 넘었다.

마음으로는 이미 1년치 사연을 다 보냈다.

정말 언젠가, 기필코, 사연을 보내서 내 사연을 영어로 바꾼 내용이 책에 실릴 날을 기다리며 요긴한 표현들을 건져 본다. 은근히 유용하고 좋은 표현들이 많은 방송이 입트영이다.

10 : 00

진짜미국영어 재방송 시간이다.

새벽 5시 40분, 황금시간대에 하는 본방송을 겨울에 듣기는 쉽지 않아 과감히 재방송 듣기를 선택했다.

진미영 또한 아이들이 흥미 있어하는 방송이다.

방송이 끝날 때 '오키도키 산토끼, 빼빼로니 피자!'에만 관심을 최대한 보이는 것 같지만 그래도 1년 넘게 듣다 보니 아이들도 저 시간이면 으레 진미영을 들을 줄 아는 것 같다. 김교포 선생님이 하는 엉뚱하고도 썰렁하고 느닷없는 농담 덕분에 많이 지루해하지는 않는다.(고 나만 혼자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10 : 20

일본어 시간이다.

일본어는 모르지만 그냥 집안일하면서 듣던 버릇이 있어 그냥 켜 놓고 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따라 한다.

물론 나는 일본어를 모른다.

11 : 00 ~ 12 : 00

그동안 방송됐던 EBS 영어 프로그램들이 돌아가면서 재방송을 하는 시간이다.

12 : 00

전날 했던 Easy Writing 이 재방송하는 시간, 노느니 듣는다, 복습한다.

13 : 00

당일 Easy Writing이 또 나온다.

잠자코 있던 아이들이

"아침에 들었던 거네?"

라며 반응을 보인다.

좋았어, 허투루 듣고 있는 건 아니었군.

이제부턴 이미 했던 방송들이 계속 돌아가며 방송하는 시간이다.

점심도 먹고(물론 언제나 반디와 함께) 그날 배운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에 대해 한 마디씩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대화가 오간다.


오후에는 나 혼자만 반디를 듣다시피 하고 아이들은 책도 보고 할 일도 하고 합기도 학원에 가고 놀기고 하고, 도서관도 가고, 자유시간을 만끽한다.

거의 일주일 내내 비슷한 일정이므로 특별히 대단할 것도 없는 겨울 방학.


그러니까,

이것은,

단지,

어디까지나 엄마 혼자만의 희망사항이다...

마 혼자만 무한 리필해가며 벌컥 들이키는 김칫국이다.

그래,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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