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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04. 2024

밥까지 떠 먹여 주는 예쁜 누나

또, 별 걸 다 전수하는 누나

2023. 12. 2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자, 잘 봐. 내가 하는 거 그대로 따라 해 봐."

라고 말하는 누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한 남자 어린이가 있었다.

"알았어. 나도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며 제법 야무진 각오로 실습에 임하는 남자 어린이가 있었다.


"먼저 떡을 올려. 그다음에 김치를 올리고, 감자를 올리고 양파, 그다음엔..."

딸은 무슨 대단한 비법이라도 전수하는 인간문화재처럼 진지하게 제 동생에게 일렀다.

"알았어, 알았어. 난 왜 잘 안되지?"

아들은 마음 같지 않은 손놀림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할 줄을 몰랐다.

한다면 하는 어린이, 그 어린이가 바로 내 아들이다.

"이건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나 정도는 돼야 할 수 있지. 넌 초보잖아."

딸은 우쭐대기까지 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저렇게 시간을 끌면서 밥을 먹을 건지.

그저,

엄마표 김치찌개가 메뉴로 나온 점심시간일 뿐이었다.

그래, 사이좋게 밥 먹는 남매야.

별 것도 아닌 밥 먹는 시간에 별 것을 다 시범 보이고 따라 하는 어린이들이야.

"엄마, 봐봐. 이제 다 쌓았어. 먹기만 하면 돼! 잘 봐 봐."

"정말 잘 쌓았네. 조심해야겠다. 흔들리면 다 쏟아지겠어.(=그러다가 바닥에 다 흘리면 난장판이 될 텐데 너는 도대체 밥을 먹겠다는 거냐, 묘기를 부리겠다는 거냐?) 숟가락이 작으니까 그냥 밥 먹고 찌개 먹으면 안 흘릴 텐데.(=괜히 여기저기 다 흘리고 엄마 일거리만 만들지 말고 제발 그냥 잡수기나 하셔라.)"

아니나 다를까,

흘리고 또 흘리고, 범벅을 만들어 놓고야 말았다.

그날의 점심 메뉴가 김치찌개라는 것을 그 누가 봐도 눈치챌 만큼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그 흔적을 남기셨다.

오랜만에 딸이 그냥 거실에 상을 펴고 셋이 오붓하게 점심을 먹자고 해서 흔쾌히 응한 과보는 거실 바닥 여기저기에 널린 각종 야채와 김치 쪼가리였다.

"엄마, 우리 룰렛 돌려서 당첨되면 먹는 거 해 볼래. 그러면 팽이버섯도 먹을 수밖에 없을 거야."

평소 버섯 종류는 잘 안 먹으려고 하는 동생을 위한 맞춤형 식사 게임이었다.

"우리 딸은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해냈어?"

한 번쯤은 호들갑도 떨어줘야 한다.

"그렇게 하면 밥도 잘 먹고 재미도 있고 그럴 거야. 편식도 안 하고."

"아무튼 우리 딸은 정말 대단해."

과연 딸의 예상대로 아들은 걸리는 대로 아무 불만 없이 넙죽넙죽 제 누나가 주는 반찬을 잘 받아 드셨다.

평소에도 동생 밥을 곧잘 먹여주곤 하는 누나다.

아들이 아기 때 분유를 먹여주던 것을 시작으로 이유식도 떠먹였고, 얼마 못 갈 줄 알았는데 5학년이 되어서도 여전했고, 아들도 누나 말을 제법 잘 따랐다.

덕분에 나는 더 수월하긴 하다.

이제 앞으로 얼마나 저 일이 더 가능할까나?

"엄마, 드디어 다 먹었어."

밥그릇을 싹싹 다 긁어 먹이고 딸이 빈 그릇을 들어 보였다.

점심 먹는 데 거의 한 시간이나 걸렸다.

물론 나는 진작에 밥을 다 먹고 일어난 지 오래였고 아이들은 게임하랴 밥 먹으랴 여유를 부리며 먹었기 때문에(게다가 여기저기 반찬도 흘려 가면서) 평소의 식사 시간보다는 더 길었다. 밥 먹다가 무슨 게임이냐고 느닷없어할지 모를 일이나 방학이니까, 이런 날도 있어야지, 아무렴.

"그래도 학교 급식이 더 맛있지?"

또 유치한 질문을 하고야 말았다.

"아니야, 엄마. 엄마 반찬이 훨씬 더 맛있어!"

남매는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래, 이 맛에 내가 밥 차리지.


게임 시간인지 식사 시간인지 경계가 모호한 기나긴 본격적인 방학 첫날의 점심시간,

그래도,

하루씩이나 갔다, 방학이.

어디 보자,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까,

이제 개학이 한 달도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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