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잘 쌓았네. 조심해야겠다. 흔들리면 다 쏟아지겠어.(=그러다가 바닥에 다 흘리면 난장판이 될 텐데 너는 도대체 밥을 먹겠다는 거냐, 묘기를 부리겠다는 거냐?) 숟가락이 작으니까 그냥 밥 먹고 찌개 먹으면 안 흘릴 텐데.(=괜히 여기저기 다 흘리고 엄마 일거리만 만들지 말고 제발 그냥 잡수기나 하셔라.)"
아니나 다를까,
흘리고 또 흘리고, 범벅을 만들어 놓고야 말았다.
그날의 점심 메뉴가 김치찌개라는 것을 그 누가 봐도 눈치챌 만큼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그 흔적을 남기셨다.
오랜만에 딸이 그냥 거실에 상을 펴고 셋이 오붓하게 점심을 먹자고 해서 흔쾌히 응한 과보는 거실 바닥 여기저기에 널린 각종 야채와 김치 쪼가리였다.
"엄마, 우리 룰렛 돌려서 당첨되면 먹는 거 해 볼래. 그러면 팽이버섯도 먹을 수밖에 없을 거야."
평소 버섯 종류는 잘 안 먹으려고 하는 동생을 위한 맞춤형 식사 게임이었다.
"우리 딸은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해냈어?"
한 번쯤은 호들갑도 떨어줘야 한다.
"그렇게 하면 밥도 잘 먹고 재미도 있고 그럴 거야. 편식도 안 하고."
"아무튼 우리 딸은 정말 대단해."
과연 딸의 예상대로 아들은 걸리는 대로 아무 불만 없이 넙죽넙죽 제 누나가 주는 반찬을 잘 받아 드셨다.
평소에도 동생 밥을 곧잘 먹여주곤 하는 누나다.
아들이 아기 때 분유를 먹여주던 것을 시작으로 이유식도 떠먹였고, 얼마 못 갈 줄 알았는데 5학년이 되어서도 여전했고, 아들도 누나 말을 제법 잘 따랐다.
덕분에 나는 더 수월하긴 하다.
이제 앞으로 얼마나 저 일이 더 가능할까나?
"엄마, 드디어 다 먹었어."
밥그릇을 싹싹 다 긁어 먹이고 딸이 빈 그릇을 들어 보였다.
점심 먹는 데 거의 한 시간이나 걸렸다.
물론 나는 진작에 밥을 다 먹고 일어난 지 오래였고 아이들은 게임하랴 밥 먹으랴 여유를 부리며 먹었기 때문에(게다가 여기저기 반찬도 흘려 가면서) 평소의 식사 시간보다는 더 길었다. 밥 먹다가 무슨 게임이냐고 느닷없어할지 모를 일이나 방학이니까, 이런 날도 있어야지,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