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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31. 2022

아들이 변했다, 변했어.

자녀는 알고 엄마만 모르는 진실

22. 10. 28. 욕심인 걸 알지만, 순간을 영원히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나 여기 아파. 피도 나와."

9살 인생이 내게 말했다.

"어디? 어디? 우리 아드~~을, 어디가 아파?"

나는 잔뜩 입을 오므려 입김을 불어넣어 주었다.

"어때? 우리 아들. 이젠 안 아프지? 엄마가 이렇게 호~ 불어주니까 다 나았지?"


"엄마. 그런다고 아픈 데가 나아? 병원에 가든지 약을 발라야지. 입으로 바람만 불면 어떡해? 치료를 해야지! 그리고 입으로 자꾸 그렇게 하면 입 안에 있는 세균이 침이랑 같이 밖으로 나와서 감염이 돼서 또 다른 병에 걸릴 수도 있어. 입안에 세균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 줄 알기나 해요?"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엄마가 호~ 해주니까 이젠 다 나았어. 하나도 안 아파."

분명히 저렇게 애교스럽게 반응할 때가 있긴 했다.

그것도 아주 오랜 옛날 옛적의 일이지마는.


"아니 우리 아드을~ 전엔 엄마가 이렇게 해 주면 다 나았잖아. 한 번 더 호~ 해 줄까? 호~"

"엄마! 엄만 아직도 내가 아기인 줄 알아? 나는 이제 초등학생이라고!"

정말 미처 몰랐다.

초등학생이 그렇게 대단한 줄은.

초등학생이라는 신분을 밝히는데 마치

"나는 이제 스무 살이 됐어요!"

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만상에!

아들은 이제 진실을 알아버렸다 비로소.

세상을 알아버렸는지도 모른다.

벌써, 고작 9살 나이에.

아니 내가 그렇게 '고작 9살'이라고만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아들은 더 이상 '호오~호오~' 얕은 엄마의 입김으로 낫지 않는다.

내 입김이 더 이상 효험이 없게 됐다니.


내 흰머리는 늘어가는데 주름은 파이는데 내 아이들은 마냥 어릴 때 모습 그대로 일시 정지되어 있는 줄로만 단단히 착각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후 쉽사리 재생 버튼을 누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 실컷 즐기고 아끼고 사랑한 후에야, 제 풀에 꺾여 넌덜머리가 난 다음에야 놓아주리라.

어리석은 엄마의 오만이요, 현명하지 못한 엄마의 욕심이었다.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아이들은 계속 재생 중이었다. 그것도 내 느낌에는 최대 2배속 같다.


나의 기쁨, 나의 번뇌!

둘 다 철없던 어린아이들이었을 적에, 그땐 마냥 아기 같았고 작은 고통에도, 희부윰하니 가벼운 먼지만 한 상처에도 과장되게 아픔을 호소하곤 했다.

그 과장됨이 부풀려지면 부풀려질수록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것이라고 오해했다.

그에 나는 최선을 다해 호들갑을 떨었다.

기대에 부응하고자 전혀 살갑지 못한 성격의 나였지만 그들의 앓는 소리에 덩달아 무면허 의사 엄마가 되어 최선을 다해 치료에(가깝지도 않겠지만 마음만은 우리나라 최고 명의다.) 임했다.

"엄마 손은 약손, 우리 아들 배 나아라."

"호오~호오~ 이제 다 나았다!"


얼토당토않고 전혀 효과가 있음직하지도 않은 엉터리 처방들을 내리고 나이롱 의사는 감히 '플라세보 효과'까지 노렸다.

아직은 '순수'하다는 표현이 더 깜찍하던 시절이었을 때에는 척하면 척, 엄마와 아이들은 손발이 척척 맞아 곧잘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엄마, 진짜 이젠 다 나았어. 하나도 안 아파. 역시 엄마가 최고야!"

둘 중 하나다.

엄마가 사기꾼이든지, 아이들의 연기가 훌륭했든지.


그, 러, 나,

지금은 2022년이다.

"어머니,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한테 가야지 엄마는 못합니다. 그냥 손으로 만져 준다고 해서 낫는 게 아닙니다.!"

제법 어른 같은 소리를 하는 9살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아! 아이들이 항상 그대로 멈춰 있는 게 아니었구나."

아이들은 항상 자라고 있는데 욕심 많은 엄마는 그저 붙들어 두고 싶은 것이다.

아깝다.

지나가는 순간들이 아깝고, 돌이킬 수 없어 뼈저리게 아깝다.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볼 때면 기쁘고 행복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변해간다.'고까지 느낄 때면  서글픔도 함께 밀려든다.

내일이라도 금방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불안함에 자꾸 뒤척이던 밤들이 있었다.

그만큼 나도 나이를 먹고 있는 중이겠거니.

그나마 뒤로 이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누구나 앞으로만 나이 먹어 간다는 가혹한 현실 앞에 공평함과 인생무상함을 함께 느낀다.


언젠가는 내가 아이들 곁을 떠나겠지만 나는 떠나도 우리의 순간들은 간직되기를 바란다.

지금 그 욕심 하나만 있다.

부귀영화도 불로장생도 감히 꿈꾸지 않는다.

내게는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일, 그 육아라는 것을 하면서 흔적이 보석 같은 유산으로 남겨지길 바라며, 어쩌면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진심이 고스란히 그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오늘도 자판을 꾹꾹 누른다.

새삼 두 생명들이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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