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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02. 2022

공무원 그만 안 뒀으면 더 많이 사 줄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원망의 소리를 '백년해로'로~


22. 11. 1. 원망하는 마음 , 잠시 쉬어도 좋아요.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어제 아빠가 너희 수학 문제집 주문했어. 돈은 엄마가 냈어. 이번 문제집은 엄마가 사주는 거야 특별히. 엄마 고맙습니다 해야지."

"엄마 고마워요."

어젯밤 남편이 저녁을 먹은 후에 소파에 느슨하게 누워 나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선동했다.

"그래, 얘들아. 엄마가 이번에는 사줄게. 오면 잘 풀어 봐. 절대 무리는 하지 말고. 어린이들은 노는 거야. 공부하는 거 아니야 절대. 알지?"

무엇인가를 사들일 때 항상 남편이 주문하는 편이었다.

나는 살림살이와 생필품에, 남편은 그 외의 나머지 것에 집중해서 줄기차게 쇼핑을 한다.

그러나 내 영역까지도 그가 침범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그런대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단란하고 평화로운 4인 가족의 저녁 풍경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느닷없이 남편의 간헐적 원망이 시작됐다.

나는 항상 원망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엄마가 계속 공무원 했으면 그깟 수학 문제집 몇 권이 아니라 다른 것도 더 많이 사줄 수 있었을 텐데. 너희 사고 싶은 거 많이 사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용케도 잘 피했다.

"그만 안 뒀어도 사달란 대로 다 사 주진 않을 건데?"

"그건 그렇지."


외벌이 공무원의 빈처(貧妻)의 삶은 이렇다.

매번 이런 식이다.

행여 의원면직을 생각하고 있는 아내(남편)분의 입장에 있다면 나의 경험담들을 허투루 듣지 않기를 바란다.

의원면직에 결사반대한 그 강도만큼 간헐적 원망도 비례한다.

10여 개월 동안 쏟아진 제보에 의하면, 기혼자 중에서도 공무원을 그만두겠다는 배우자를 대하는 태도는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는 흔쾌히,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상대방이 지지해주었다는 반면 나와 막상막하로 배우자가 완강히 반대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도 했고, 그분은 현재 연락두절이다.


보름마다 환하고 쟁반 같은 보름달을 보듯, 나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남편에게서 공무원을 그만둔 일에 대한 미련의 말을 듣는다.

미련에 있어서는 지고지순한 사람이다.

미련을 갖는 것만큼 미련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이미 다 끝나버린 일이고 되돌릴 수도 없을뿐더러 되돌리고 싶지도 않은 일인데 그는 언제까지 미련을 두고 살 것인가.


처음 몇 개월은 적응기간이려니 했다.

그래, 공무원 시보 기간도 6개월인데 반년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치자.

남편 입장에서는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을 커다란 시련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도 잘 안다.

원망의 소리가 비정규직으로 생을 마감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지금 10개월이 넘도록 여태 그러고 있으니 아마 그 소리가 정규직 전환이 되어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지금 이 시점에 우리가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은 지난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라든지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과오라든지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한낱 개인의 직업이있고 없음이 아닐진대 생각하지만, 그는 생각이 나와 다른 듯하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던데.

꽃노래가 아니라서 저리 횟수가 많아지는 것일까?


가뜩이나 불안하고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정규직화 되는 일은 '인간'에게만 해당되었으면 좋겠다.

이러다가 나를 원망하는 그 소리가 정년보장을 넘어 아예 정년이 없는 소리가 되어 버릴까 봐 살짝 염려된다.

물론 내가 남편과 평생을 같이 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어디까지나 둘이 '부부'라는 허울 속에 갇혀 있을 때까지 만이다.


바꿀 수 없는 과거에 자꾸 집착하고 굳이 끄집어내서 말하는 것도 세상 쓸데없는 감정 소비 같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한 두 번 들은 말이 아니므로 의원면직했던 초기처럼 나도 격하게 반응하지도 않는다.

저러다 말겠거니.

하지만 둥근달이 떠오를 때쯤이면 또 스멀스멀 올라오겠지.

보름달 뜨는 날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이상한 동물도 아닌데 희한하게 거의 보름을 주기로 저런 증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름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어쩌면 그가 정체불명의 어떤 생명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 때가 종종 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겪어볼수록 아이러니하고 모순적이며, 분명히 뭔가 있다.

내가 사직서 쓸 때 사유를 '남편 탐구'로 적어 냈었던가?


오늘 저녁 남편은 회식이 있다고 했다.

"일도 안 하는데 회식 끝나면 태우러 와야 하는 거 아냐?"

그에게서 나올 가능성이 아주 높은 저런 말을 미리 예상해야 한다.

대리기사는 싫으시단다.

대리기사 아저씨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잠깐 생각했다.

직장이 없어 수입도 없는 가난한 아내는 언제 호출당할지 모르니 대기를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차라리 회식 있는 날은 편하게 버스 타버리는 게 어때? 그럼 좋잖아."

"안 타 버릇하니까 불편하더라."

"그래도 하루만 참으면 되지."

그러나 나의 기쁨 나의 고통은 버스의 불편함 따위 참지 않기.


오늘 아침, 가난한 아내는 콩나물을 사러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난해도 콩나물 가격을 깎는 행위 따위, 절대 하지 않으리.

한 줌만 더 달라고 떼쓰지도 않으리.

4명이나 되는 식구의 가장인 그를 위해 해장국을 조용히 준비하련다.

아스파라긴산이 그의 숙취해소를 도울 수는 있겠지만, 나의 의원면직으로 말미암아 문드러진 그 속은 어찌할 수 없으리니.


가난해서, 내게는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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