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에게 내 전재산을 걸었어요

확실한 일에만 전 재산을 걸자

by 글임자
2024. 8. 23.

< 사진 임자 = 글임자 >


"치킨이 배달되는 시간은 몇 시 몇 분일까요?"

또 다짜고짜 아들이 시작했다.

주말 아침부터, 예고도 없이.

하지만 아들은 거의 항상 그런 식이었으니 또 우리 멤버들은 그러려니 했다.


"모르겠는데? 힌트 없어?"

최대한 나는 일찍 빠지려고 선수를 쳤다.

무조건 모르쇠로 밀고 나가는 거다.

그저 초반에 예선 탈락하는 게 상책이다.

딸은 밥을 먹다가, 나는 설거지를 하다가 아들의 '작전'에 넘어가(아들은 은근슬쩍 우리 집 멤버 그 누구에게라도 사전 예고 없이 갑자기) 본인이 난센스 퀴즈를 내고 우리에게 맞히라고 대놓고 요구한다.

너무 급작스럽기 때문에 느닷없고 황당하고 아무 관심도 없지만 어느 순간 나머지 멤버들은 아들의 퀴즈쇼에 거의 (물론 거짓말을 수미산만큼이나 조금 많이 보태자면)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또 은근슬쩍 아들이 매기는 등수에 예민하게 반응하곤 하는 것이다. 그깟 난센스 퀴즈가 뭐라고.

"잘 생각해 봐, 엄마."

"그래도 모르겠다. 어려워."

"엄마, 설마 답 맞히는 게 귀찮아서 그러는 건 아니시겠죠?"

어마? 얘 좀 보게나.

족집게가 따로 없네 그려.

정확했어!

난 그 난센스 퀴즈 대회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물론 거짓말이다. 생각 같은 건 애초에 해 보지도 않았고 할 마음도 없었고 하지도 않을 계획이었다. = 난 저 문제를 듣자마자 바로 포기했다.= 관심도 없었다.= 맞히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었다. =그냥 빨리 설거지나 끝내고 싶었다.= 나 좀 저런 데에 안 끼워줬으면 좋겠다.) 엄만 모르겠다. 너무 어려운 것 같은데?"

"아, 그럼 포기하는 건가요?"

참 깜찍하기도 하지.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아드님 혼자서 다 하신다.

"정답은 바로바로 '치킨 키신 '입니다!"

딸과 나는 어이가 없었다.

"뭐야? 그런 거였어?"

황당하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 정답에 홀려 딸과 나는 다음 문제를 꽤나 집중하며 듣게 되었다, 어느새.

그리고 아들이 연이어 낸 수많은 문제 중 단 하나도 맞히지 못하는 비극을 맞았다, 물론.

"도대체 저런 문제는 누가 만드는 걸까? 희한하게 생각도 참 잘한다. 그치?"

"그러게. 말도 안 되게 잘 만들어 놨네."


우리 세 멤버가 난센스 퀴즈에 푹 빠져 있을 무렵 뒤늦게 거실로 입성하신 한 성인 남성이 있었으니.

"아빠, 내가 문제 내 볼게. 한 번 맞혀 봐."

이제 바통 터치다.

나는 이제 아들의 난센스 퀴즈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음 차례는 그 양반이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이럴 때만 나는 그 양반이 반가운 건 어쩔 수 없다.

아들은 다음 목표물을 발견하자마자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그 양반에게 냅다 요상한 그 문제를 또 냈다.

"치킨이 배달되는 시간은 몇 시 몇 분일까요?"

아들이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잽싸게 끼어들었다.

"우리 아들, 아빠는 절대 이 문제 못 맞혀. 맞힐 수가 없어."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알지. 아무튼 아빤 절대 못 맞혀."

"에이, 그래도 맞힐 수 있잖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어?"

"아니라니까. 엄마가 장담해. 엄마는 아빠가 절대 못 맞힌다에 한 표 건다. 만약에 (절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빠가 맞히면 엄마 전 재산을 걸겠어!"

아들과 딸을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 엄마가 아빠가 이 문제 맞히면 엄마 전 재산을 다 준대!"

그러나 그 양반은 시큰둥했다.

"어차피 엄만 재산도 없어, 얘들아."

나도 믿는 구석이란 게 있다.

수입이 없으니 재산 같은 건 없다.

"엄마, 재산도 없으면서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아드님은 또 곧이곧대로 내 말만 듣고 따지려 들었다, 역시나.

"그러니까 그만큼 아빠는 절대 맞힐 리가 없다 이 말이잖아. 우리 아들이 또 말 안 통하려고 하네?"


예상대로, 아니 내가 확신했던 대로(물론 나의 예상이 틀릴 리는 절대 없을 테니까, 적어도 그 문제에 한해서는) 그 양반은 정답을 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있지도 않은 내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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