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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건 아들 키우기인가 뱃살 빼기인가

아들 처음 키워 본 사람이 하는 말

by 글임자
2025. 6. 26.

< 사진 임자 = 글임자 >


"진짜 아들 키우기 힘들다."

그 양반이 탈진해서 집에 도착한 후 내뱉은 첫마디였다.

"그렇게 힘들어?"

"응, 진짜 힘들어."


얼굴만 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뒤따라 들어온 아드님의 얼굴은 정반대였다.

뭐랄까, 뭔가 만족한 듯 보였고, 의욕 넘쳐 보였고,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 보였으며 무엇보다도 제 아빠의 말에 전혀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처럼 보였다.


"주말에 집에만 있으면 안 돼. 자꾸 활동을 해야 돼. 얼른 나가자. 축구해야지."

발단은 거기서부터였다.

아이들이 주말에는 좀처럼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 너희도 그렇지만 아빠도 주말에는 좀 움직여야 돼. 아빠랑 같이 나가서 놀다 와. 또 알아, 아빠가 맛있는 것도 사 줄 지?"

옆에서 나도 바람을 잔뜩 넣었고 잘만 하면 세 멤버가 다 집에서 나갈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유치하지만 최대한 아이들의 환심을 살만한 말로 정성을 다해 공을 들이기까지 했다.

제발 좀 나가라. 어린이와 청소년과 운동부족인 직장인은 주말에라도 나가야지.

"엄마는 어떻게든지 우리를 내보내려고 하네? 우리가 나갔으면 좋겠어? 난 집에 있고 싶은데, 엄마랑"

아들이 한번 튕겨주셨다.

"청소를 하더라도 사람이 없어야 하기 편해. 아빠가 가자고 할 때 가. 나중엔 가자고 사정해도 안 갈 거야. 조금 있으면 더워서도 못 나가."

혼청(혼자 청소하기)을 사랑해 마지않는 나는 가족들이 집에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가면 최대한 늦게 들어오면 좋겠다.(그러나 물론 내 바람과는 달리 집안일을 다 끝내고 쉴 만하면 여지없이 귀가하시는 멤버들 덕에 한탄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축구화도 신고 하면 축구도 더 잘하겠다. 얼른 가서 해 봐."

최근에 장만한 축구화들 들먹이며 나는 무조건 그들을 집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의무감마저 느꼈다.

"아, 맞다! 축구화 신고 축구 해야지. 아빠, 빨리 나가자."

꿈쩍도 안 하던 아들이 축구화 얘기에 돌변했다.

진작에 도시락도 싸고 물도 챙기고 과자도 골고루 챙겨 둔 것을 다짜고짜 현관 앞에 진열하며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축구는 딸도 좋아하는 거라 가뿐하게 세 멤버를 내보내는 데 성공했다.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김치 담그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다림질하고 밥하고 반찬도 만드느라 몇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해가 졌고 세 멤버가 들이닥쳤다.

그리고 오자마자 한다는 말이 '아들 키우기 힘들다'는 거였다.

"우리 아들이 너무 열심히 하니까 내가 힘들다. 축구하다가 농구하고 안 쉬고 계속 같이 하니까 너무 힘들어."

아들은 한 번 무언가에 빠지면 거의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그 당시에는 축구와 농구에 빠져서 제 아빠를 가만 두지 않았다.

(요즘은 탁구에 빠져 오늘도 탁구장에 가서 돌아올 줄을 모르신다.)

혼자는 하기 힘든 거라 주말에 그 양반이 매번 같이 동행해 준다. 그럴 때면 얼마나 눈물나게 고마운지... 나보고 날마다 같이 축구하고 농구하자고 하면 나는 생각만으로도 지친다.

"아들들은 같이 몸으로 좀 놀아줘야 한다잖아. 같이 운동도 되고 좋지."

나도 들은 소리는 있어서 한마디 했다.

게다가 평소에 운동이라곤 전혀 하지 않는 그 양반도 아들 덕에 몸 좀 움직이면 좋은 거라고 우기면서 말이다.

"신생아도 아닌데 평소엔 맨날 누워만 있잖아.(신생아는 귀엽기라도 하지.) 나가면 바람도 쐬고 애들하고 같이 시간도 보내고 운동도 하고 좋지. 진짜 운동해야 돼. 다 건강을 위해서 그러는 거지."


여전히 탈진해서 넋이 나가있는 그 양반에게 몇 마디 했더니 느닷없는 황당한 소리를 다 하셨다.

"오늘 하도 축구를 열심히 했더니 뱃살이 좀 빠진 것 같다. 배 좀 들어갔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였다.

"그거 조금 했다고 뱃살이 빠지겠어? 몇 시간이 아니라 몇 백 년은 해야 할 것 같은데? 뱃살 빼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잘 봐봐. 배가 들어간 것 같다니까."

"들어간 것 같은 게 아니라 안 들어갔어. 잘 안 봐도 안 들어갔어."


그러니까 그 양반의 주장과는 다르게 축구를 열심히 하지는 않은 걸로...

아들 키우는 것보다는 뱃살 빼기가 백만 배쯤은 더 어려운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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