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여자 친구를 생각했다.

신부 입장 말고 덩달아 입장

by 글임자
23. 2. 10. 한 때 꽃길 걸었던 남자가 있다.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제 좀 다닐 만하네."

"드디어 나온 거야?"

"응."

"한 달 다 걸렸네?"

"진짜 그동안 얼마나 눈치 보였다고."

"그러게 그런 건 미리미리 확인했어야지."

"나보고 팀장님이 편하게 산다고 하시더라."

"왜?"

"보통은 아랫사람이 문 열어주는데 나는 윗분들이 문 열어 주시니까."

"실컷 즐겼어야지. 언제 그런 대접 또 받아보시겠수?"


앞, 뒤 밑도 끝도 없이 나누는 부부의 대화 내용은, 그러니까 한 달 동안 우리 집에서만 핫했던 '공무원증'에 대해서였다.

새로 발령받자마자 (그제야 공무원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남편은 그것을 새로 발급받기 위해 신청했었다.


"아니 이제 막 발령받은 신규자야? 그게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어 여태?"

"전에 있는 것 같았는데 안보이더라고."

"어차피 올해 발령 날 줄 알았으니까 미리미리 확인하고 신청해 놓든지 했어야지."

"나는 있는 줄 알았지."

참, 나랑은 모든 면에서 많은 게 다른 사람이구나, 또 한 번 느꼈다.

나도 매사에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은 못 되는 사람인지라 저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침마다 남들 들어갈 때 따라 들어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진짜 너무 불편하다."

"모르는 사람 뒤에 무조건 따라가서 같이 들어가는 거야?"

"응."

"그 사람들도 당황스럽겠다. 갑자기 누가 와서 덩달아 들어오면."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싫을 수도 있잖아. 그래도 여직원 뒤에는 바짝 붙어서 가지는 마. 괜히 오해할라."

출입할 때 공무원증이 있어야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달간 그는 넉살 좋게도 처음 보는 사람 뒤를, 철 모르는 어린아이가 낯선 사람의 꾐에 무작정 따라가듯(직원들이 마흔도 넘은 철없는 이를 꾀였을 리는 만무하지마는) 무임승차에 버금가는 '덩달아 입장(?)'을 해 왔다는 것이다.


"보통은 윗분들이 뒤에 계시고 직원이 앞에 먼저 가서 문 열어 드리잖아. 근데 나는 그동안 반대로 했어. 내가 그게 없으니까 문도 못 열고 윗분들이 문 열어 주면 내가 나중에 들어갔다니까."

"볼 만했겠네."

"오죽하면 나보고 편하게 산다고 그랬겠어?"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뭐. 차라리 그냥 계단으로 가지 그랬어?"

"아, 진짜 그런 방법이 있었네."

"꼭 윗분들이랑 같이 다닐 필요는 없잖아. 증도 없으면서 뭐 하러 윗분들 눈치 보면서 같이 다녀?"

"그거 좋은 방법이네. 진짜 계단으로 다닐 걸 그랬네."

그러나,

내가 말하고도 생각해 보니 일단 출입구에서 먼저 통과를 해야 계단으로 가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우리 부부의 실체는 '덤 앤 더머'란 말인가.

이러나저러나 남편은 윗분들로부터 뜻하지 않게 의전을 당하며(?) 살 운명인 것인지도 몰랐다.


"이젠 항상 잘 가지고 다녀야겠어. 어디 출장 갈 때도 나만 없으니까 좀 그렇더라."

"사람들이 가짜인 줄 알고 의심하겠다."

"아무튼 나 출근할 때 꼭 챙겨가라고 말해줘."

"그걸 내가 말해야 돼? 그냥 차에 두고 다니든지 하지. 그럼 절대 안 가져 갈리는 없잖아. 혹시 그냥 가도 다시 차에 가서 가져오면 되고."

"아니야. 이젠 맨날 가지고 다닐 거야."

남편은 뭔가 굳은 결심을 한 것 같았다.


"어디 한 번 봐 볼까?"

따끈따끈한 그것을 얼핏 보고서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또 이사진 썼어?"

"응."

"저번에 조직도에 쓴 그 사진으로 써야 하는 거 아니야? 딴 사람이라고 또 항의 들어온다니까!"

"나중에 또 바꾸라고 연락 올까?"

"당연하지.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

"에이 몰라.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남편은 그 사진이 그렇게도 마음에 드는 것일까.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내가 보기엔 잘 나왔다고도 말하기 뭣하고, 그저 얼굴이 딴판이다.

유난히 그 사진에만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거 공시생 시절에 전 여자 친구도 같이 공부했었다더니, 혹시?

둘이서 같은 사진관에서 수험표에 붙일(기원전 3,000년 경에는 종이 수험표에 사진을 붙였었다.) 사진을 사이좋게 찍고 사랑의 징표로 삼기로 손가락이라도 걸었단 말인가?

그 여인도 과거 같은 것은 다 잊고 결혼해서 아들 낳고 딸도 낳고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아닐 수도 있지만) 혼자서만 저렇게 옛날 사진을 버리지도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 여인이 그 사진을 유난히 좋아했었나?

어느 신분증으로 인해 불거진 의혹,

(내가 알기로는) 남편의 가장 최근 여자 친구이자 현재 배우자인 나 혼자만 삼류소설을 써 나갔다...

이전 17화을지훈련, 민방위복 그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