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알바가 아니다, 연말정산 환급금이다.
의심했으나 역시...
23. 2. 27.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내가 좀 보냈어."
"웬 거야?"
"연말 정산 환급금 들어왔어."
"벌써?"
"응."
"하긴 거긴 빨리 들어오더라."
나 혼자 다 쓰라고 송금한 돈은 아니었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현금 입금은 찰나일지라도 기분을 좋게 하기 마련이다.
어떤 종류가 됐든지 환급금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거긴 진짜 빨리 입금해 준다."
"거의 항상 2월에 준 것 같은데?"
"그런 것도 같네. 난 예전에 보면 5월 초에 줬던 거 같은데 말이야."
"빨리 주면 좋지."
"그래도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받으니까 내가 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네."
작년에 남편이 6개월 육아휴직을 한 데다가 수입은 반토막이 났으니 연말 정산을 하고 난 후 조금은 돌려받을 수 있겠거니 했었다.
교육행정직인 남편은 학교에서 일할 때나 교육청에서 일할 때나 일관되게 2월에 연말정산 환급금을 받았다,(고 기억한다.)
그에 비해 과거 지방직(일반행정)으로 근무할 때 나는 대개 5월 초에 받았었다.(고 어렴풋이 떠오른다.)
직렬이 서로 다르니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이 있었다.
"근데 왜 받고도 아무 말도 안 했어?"
"뭘?"
"연말정산 환급금 말이야. 나한테 말도 안 해줬잖아."
"그런 걸 일일이 다 말해 줘야 돼?"
"얘기는 해 줄 수 있지."
"내가 받아서 엉뚱한 데 쓰는 건 아니잖아."
"월급 받아봐야 나갈 데 다 나가고 수입은 항상 한정돼 있는데 갑자기 입금해 줘서 그렇지."
나는 남편의 월급날은 정확히 알지만 나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정근 수당을 받는 달이 1년에 두 번 있는 것과 명절 휴가비를 받고 성과급을 받고, 연말쯤 다 쓰지 못한 연가에 대해 보상비를 받는다는 것, 그 정도만 대강 기억한다.
남편의 직렬은 (처음부터 그랬는지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대개는 일관성을 보여봤다, 많은 부분에서.
월급날 내게 보내는 현금 외에 가끔 선물을 주듯 추가로 송금을 해 줄 때면 나는 그런 생각까지도 드는 것이다.
'혹시 나 몰래 밤바다 알바라도 하나?'
가끔 새벽까지 방에 불이 환히 켜져 있으면 '서 말의 구슬'이라도 비밀리에 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인형 눈을 붙이느라 그의 눈알이 빠져버리는 것은 아닌가, (결코 그럴 분이 아니란 걸 세상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알면서도)방정맞은 생각까지 말이다.
우리 집 가장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차마 아내에게는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생활고까지는 아니지만, 남들이 하도 어렵겠다 어렵겠다 하니까 정말 힘들게 살아야 할 것만 같다.) 밤마다 재택 알바라도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나의 안쓰러운 마음이 고개를 높이 쳐들기도 전에 이는 사실이 전혀 아님이 드러났다.
단지, 우리 집 가장은 밤늦도록 어떤 영상들을 시청하시다가 불을 끄는 것도 잊은 채 그만 잠들어 버리고 만 것이었음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리고 택배 상자가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그렇게 잠든 채 발을 잘못 디뎌 그만 안경을 밟아 버렸다.
일요일 아침 자랑스럽게 내게 그것을 내밀었다.
"이거 봐봐."
"뭐야?"
"내가 밟아버렸어."
"그거 AS 해 온지 일주일도 안 됐잖아?"
"거의 일주일은 썼어."
"얼씨구! 자~알 하셨네.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서 어떡해? 벌써 몇 번째야? 자기 전에 안경 좀 안전한 데다 놓고 자는 게 그렇게 어려워? 폰 들여보다가 안경 쓴 채로 잠들기 전에 적당히 좀 보고 안경 치워놓고 잘 순 없어? 날마다 출근하는 사람이 피곤하지도 않아? 나보고 저번에 뭐랬어? 내가 실수로 안경 밟았을 때 그렇게도 나한테 조심성이 없네 어쩌네 하면서 타박하고 뭐라고 하더니 말이야. 조심성 있는 양반이 왜 안경을 이렇게 박살 내버리셨을까? 마이너스 마이너스! 이 마이너스 발아!!!"
라고는 나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요즘 다시 날씨가 쌀쌀해져 몸이 춥다.
그런 아내를 위해 체온을 높여주려고 그는 그렇게 무던히도 애를 쓰나 보다.
모르긴 해도 내 몸 안에서부터 열이 들끓기 시작했을 것이다.
고마운 사람,
이렇게나 고마운 사람이다.
그를 생각만 해도 체온이 올라가는 느낌이다.
따뜻하기도 하셔라.
이미 밟아 버린 걸 탓하면 무엇하랴.
다시 또 맡기면 되지, 그래야 경제가 돌아가지.
참으로 그이는 거시적인 안목을 지닌 사람이야.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정말 그가 내 추측대로 밤마다 새벽까지 아르바이트하느라 깨어있지 않았으니.
그는 그저, 밤바다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