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널 인정하려 해.
그동안은 내 오해였어.
2023. 6. 4. 허브는 아닌 것 같다, 이제 보니< 사진 임자 = 글임자 >
처음엔 너희가 허브인 줄로만 알았지.
레몬밤이거나 페퍼민트 거나.
막 한 두 잎이 나왔을 때는 정말 저 둘 중의 하나일 거라고만 생각했지 이렇게까지 네가 변할 줄을 몰랐어.
내가 산 허브 3종 세트 모종 겉봉에서 본 모습과도 너무나 흡사했거든.
지금도 얼핏 보면 꼭 허브처럼도 보여.
알아,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거.
내가 부푼 기대를 안고 레몬밤과 페퍼민트와 라벤더를 처음 심던 날, 얼마나 마음이 설렜는지 몰라.
먼지 같은 작은 그 씨앗들을 하나라도 더 싹 틔워 보겠다고 하나씩 집어 땅에 심으면서 나는 금방이라도 허브 정원이 내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았지.
물론 사방에서 불어오는 종잡을 수 없는 봄바람에 내가 가진 그 몇 안 되는 씨앗조차 다 간수하지 못하고 반 이상도 넘게 바람에 흩날려 버렸을 때는 허망하기까지 했지만 말이야.
그런데 우연히 담벼락 밑에 파릇파릇 돋아난 그 두 개를 보고 나는 그래도 아직 정체 모를 허브가 뿌리를 내리고 드디어 싹을 틔워 준 것이라며 감격했지 뭐야.
마침 그것들이 돋아난 자리는 내가 처음에 씨앗을 심었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거든.
아마도 바람에 날려 운 좋게 그곳에 정착했나 보다, 하고 기특해하기도 했었지.
사실 이제와 고백하는 거지만 내가 허브를 심은 자리는 갈 때마다 물을 꼬박꼬박 주긴 했지만 그 담벼락 밑은 내 안중에도 없었어.
그런데 눈길도 손길도 닿지 않은 남의 자식 보듯 내버려 뒀어도 그 둘은 그렇게 조용히 커가고 있었지 뭐야.
하루는 연하디 연한 그 이파리를 엄지와 검지로 살짝 문지르고는 킁킁 코로 냄새까지 맡아보기도 했었어.
그러면 정말 상큼한 허브향이 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도 있었단다.
물론 상상 임신에 버금가는 상상 향기였을 뿐이었지만 말이야.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실망도 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로했어.
아직 어려서 너무 작아서 향이 나지 않을 뿐이라고.
저 두 개를 발견하기 전에 사실 깻잎이 돋아난 걸 보고는 그게 또 허브인줄로 알고 호들갑도 떨었던 기억이 나. 깻잎도 막 돋아나면 정말 여느 허브들 못지않게 그 생김새가 오해하기 딱 좋았거든.
그래, 이것 또한 나만의 착각이고 잘못된 믿음이었는지도 몰라.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 대한 서글픈 자기 합리화, 그래, 아마 그런 것일 거야.
그런데 이제 난 인정할 수밖에 없어.
저건,
저건,
레몬밤이 아니야,
페퍼민트도 아니야.
라벤더는 더더욱 아니지.
내가 아무리 허브에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라벤더가 저런 식으로 자라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그러니까 말이지.
저건,
그저,
텃밭에 흔해 빠진 곰보배추 씨앗이 멀리까지 날아와 돋아난 곰보배추 2세일뿐이야.
허브도 좋긴 하겠지만, 곰보배추도 어디에 좋다고는 하더라.
꿩대신 닭이라잖니?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이미 생명을 가진 것들이니까, 모두 소중한 목숨들이니까.
허브 대신 일단은, 곰보배추를 받아들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