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건 정말 어렵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도무지 알 수 없다.
무엇 하나 붙잡고 해보아도, 어린아이처럼 금세 실증이 날 뿐이다.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한때 MBTI에 푹 빠졌던 적이 있다.
그걸 내 정체성처럼 받아들이며, 유형에 나를 맞추려 애썼다.
그게 내 옷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정해진 틀대로 살면 덜 불안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론 두려웠다.
결과가 그 틀을 벗어나면 어쩌지?
나는 그저 그렇게, 번데기처럼 고치 속에서 멈춰 있을까 봐.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은 내가 정하자."
그래서 내 MBTI 유형도 내가 정했다.
"이제 나는 XXXX다."
그 순간 가능성이 열렸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자유는 곧 또 다른 함정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현실이 무게를 더했다.
꿈을 품고 살던 과거는 어느새 죄처럼 느껴졌다.
준비된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다.
그때 내 눈에 보인 건 단 하나, 돈.
왜 하필 그 시기에,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을까.
긍정은 있었지만, 능력 없는 긍정은 공허했다.
나는 허공에 손짓만 하며 살았다.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시간들.
자책과 좌절이 그 자리를 채웠다.
어릴 적 나는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있었다.
꿈도 있었다.
하지만 공부가 길어졌고, 서른이 넘어서도 계속 공부했다.
부모님의 지원, 투자된 시간이 아까워 포기하지 못했다.
그렇게 내 시간 위에 불을 지피며,
남의 기대와 책임 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 꿈은 점점 내 것이 아니게 되었고,
현실의 벽 앞에서 결국 내려놓았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원했던 삶은 다리가 없는 삶이었다.
땅을 딛지 못한 채 허공에 떠 있는.
바람이 불면 흔적 없이 사라질 것 같은 삶.
왜 그랬을까.
왜 나는 그렇게 살았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내면의 나보다, 거울 속 ‘그럴듯한 나’에게 의지했다.
내가 아닌, 내가 꾸며낸 나에게 기대어 살았다.
허상에 기대어 사는 삶은,
의지할 곳이 없다.
나는 왜 허상을 택했을까.
나는 왜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려 했을까.
이제는 돌아가고 싶다.
내가 나로.
내가 나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