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1 할머니, 나의 할머니.

by 빛날 Yun

꽃이 피고, 봄이 왔다.


아가야, 세상이 하얘. 예뻐.

분홍 세상에서 선하게 살아라.

사랑하며 살아라.

웃고 나누며 살아라.





부재중 전화가 떴다.

우리 할머니였다.


'할머니, 왜요?'

'아가야.'

'응, 할머니?'

'나 외롭다.'


대뜸 외롭다고 하시는 할머니.

그 한마디가 마음 깊이 들어찼다.


다음 날, 금요일. 퇴근하고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오후 10시 쯤. 늦은 밤에 난데없는 도어락 소리에 깜짝 놀라신 할머니.


고생했다, 고생했어.

거듭 말씀하시며 내 손에 쥐어진 가방을 들어주시고

당신이 계셨던 큰방에서 당신의 흔적을 치우셨다.

대신 손녀딸이 누울 침대 위로 큰 전기장판을 까셨고,

침구를 정리하셨다.

그리고 당신은 작은 방으로 향하셨다.


오는 길 고단했지. 멀고, 멀다.


내 등을 토닥거려 주시던 할머니.

눈이 끔벅끔벅하는데도

손녀딸과 한 마디 더 나누고 싶어

잠 안 온다, 안 온다 하시던 할머니.


늦은 밤에 밥 짓는 소리가 가득찼다.

언제 손녀가 또 올까 미리 만들어둔 보신탕을 급히 데우고,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개운하게 샤워하고 나오자

밥상 위에 김이 폴폴 나는 국과 밥이 차려져 있었다.


반찬이 없어서 어쩌냐.

혼자 있으면 안 먹게 되니까 반찬이 없다며

할머니는 연신 미안한 표정을 지으신다.


괜찮아요. 국이 보신탕인데 뭐가 필요해요.

난 자리에 앉아 콩밥 한 숟가락 크게 떠먹었다.

뜨끈한 보신탕.

우리 할머니가 해주시는 집밥을 먹으니

고되었던 일주일의 피로가 물 씻기듯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등 따숩게 눕자 그곳이 천국이었다.

할머니가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셨다.

5만원 여섯 장이었다.


당신의 손녀딸, 어엿한 월급받는 직장인이라고 말하여도

조그마한 공무원 월급을 논하시며

기어이 내 손에 지폐를 쥐어주셨다.


나도 서둘러 준비한 용돈을 드렸다.

어쩔 줄 몰라하시는 우리 할머니.


당신은 어쩜 그러실까.

주시는 법만 알고 받는 법은 모르실까.

어찌하여 그리 나를 사랑하실까.

내가 뭐길래.

당신의 옆에만 있으면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대단한 존재가 된 것만 같다.


나는 할머니를 안아드렸다.

사랑해요, 사랑해.


노심초사 늘 걱정하신다.

밥 잘 먹나, 잠 잘 자나.

애들이 속은 안 썩이나.


연락처를 열어보았다.

내역은 대부분 할머니로부터 오는 통화였다.


세월이 우리 할머니를 앗아가지 않기를 바라고 바란다.

조금이라도 할머니의 온기를 더 느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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