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고, 봄이 왔다.
아가야, 세상이 하얘. 예뻐.
분홍 세상에서 선하게 살아라.
사랑하며 살아라.
웃고 나누며 살아라.
부재중 전화가 떴다.
우리 할머니였다.
'할머니, 왜요?'
'아가야.'
'응, 할머니?'
'나 외롭다.'
대뜸 외롭다고 하시는 할머니.
그 한마디가 마음 깊이 들어찼다.
다음 날, 금요일. 퇴근하고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오후 10시 쯤. 늦은 밤에 난데없는 도어락 소리에 깜짝 놀라신 할머니.
고생했다, 고생했어.
거듭 말씀하시며 내 손에 쥐어진 가방을 들어주시고
당신이 계셨던 큰방에서 당신의 흔적을 치우셨다.
대신 손녀딸이 누울 침대 위로 큰 전기장판을 까셨고,
침구를 정리하셨다.
그리고 당신은 작은 방으로 향하셨다.
오는 길 고단했지. 멀고, 멀다.
내 등을 토닥거려 주시던 할머니.
눈이 끔벅끔벅하는데도
손녀딸과 한 마디 더 나누고 싶어
잠 안 온다, 안 온다 하시던 할머니.
늦은 밤에 밥 짓는 소리가 가득찼다.
언제 손녀가 또 올까 미리 만들어둔 보신탕을 급히 데우고,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개운하게 샤워하고 나오자
밥상 위에 김이 폴폴 나는 국과 밥이 차려져 있었다.
반찬이 없어서 어쩌냐.
혼자 있으면 안 먹게 되니까 반찬이 없다며
할머니는 연신 미안한 표정을 지으신다.
괜찮아요. 국이 보신탕인데 뭐가 필요해요.
난 자리에 앉아 콩밥 한 숟가락 크게 떠먹었다.
뜨끈한 보신탕.
우리 할머니가 해주시는 집밥을 먹으니
고되었던 일주일의 피로가 물 씻기듯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등 따숩게 눕자 그곳이 천국이었다.
할머니가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셨다.
5만원 여섯 장이었다.
당신의 손녀딸, 어엿한 월급받는 직장인이라고 말하여도
조그마한 공무원 월급을 논하시며
기어이 내 손에 지폐를 쥐어주셨다.
나도 서둘러 준비한 용돈을 드렸다.
어쩔 줄 몰라하시는 우리 할머니.
당신은 어쩜 그러실까.
주시는 법만 알고 받는 법은 모르실까.
어찌하여 그리 나를 사랑하실까.
내가 뭐길래.
당신의 옆에만 있으면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대단한 존재가 된 것만 같다.
나는 할머니를 안아드렸다.
사랑해요, 사랑해.
노심초사 늘 걱정하신다.
밥 잘 먹나, 잠 잘 자나.
애들이 속은 안 썩이나.
연락처를 열어보았다.
내역은 대부분 할머니로부터 오는 통화였다.
세월이 우리 할머니를 앗아가지 않기를 바라고 바란다.
조금이라도 할머니의 온기를 더 느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