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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ver Nov 23. 2022

나는 프리스타일 랩 하듯 글을 쓴다

feat. 글쓰기 팁, 메모 방법, 일필휘지

*긴 글 주의


1


나는 래퍼 래퍼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고 살아왔던 얘기들을 나는 랩으로

너희들에게 얘기하려 해. 이젠 날 지켜주는 건 진정한 힙합의 무대

- 드렁큰타이거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의 DJ샤인 파트



디제이 샤인, 전설의 힙합 듀오 '드렁큰타이거'의 래퍼. 다른 멤버인 타이거JK의 압도적인 플로우와 텐션에 묻힌 안타까운 실력파. 문득 그의 랩이 와닿았다. 저 가사들을 써낼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마 랩으로 세상을 평정하리라와 같은 다짐이 있지 않았을까? 살아온 얘기들을 거짓 없이 담아낸 랩이라면 사람들의 마음을 동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 확신하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지금 내가 브런치를 하는 마음가짐과 같다. 나도 지금까지 살아온 얘기들을 글로 풀어내려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들이 아주 웃기거나 감동을 주면 좋겠지만, 당장은 수양이 부족한지라 그건 바람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감동까진 아니지만 아주 작은 동감이라도 얻을 수 있게 한다면 브런치야말로 내게 진정한 힙합의 무대다.


그렇게 생각하니 디제이 샤인에 감정 이입하게 된다. 그는 동료 타이어JK를 어떻게 대했을까? 마음이 복잡하다. 평가하길 좋아하는 한국의 대중들은 실력으로 타이거JK와 샤인을 갈랐다. 당연히 타이거의 압승. 어느 순간부터 샤인은 타이거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열심히 노력했고, 국내 여타 래퍼들과 비교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을 가졌지만 팀 동료가 너무 뛰어났다. 샤인은 아마 허탈했을 거다. 타이거보다 못한 래퍼로 자리 잡은 캐릭터는 아무리 노력해도 뒤집을 수가 없었을 테고, 그럴수록 점점 자신감은 말라갔을 거다.   


나는 브런치를 하면서 그와 비슷한 걸 느낀다. 브런치에는 고수가 참 많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진 나는 명함도 못 내밀겠다. 얼마 전 그런 마음을 위로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책 편집자도 글 쓰는 게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전적으로 공감했다. 글 쓰는 건 정말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글 '잘' 쓰는 게 어렵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들은 나를 위축되게 한다.


내 글에 자신이 없고, 심적으로 너무 쪼그라드는 것 같아서 굳게 다짐도 해봤다. 어떠한 글빨에도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러고는 집중해 글을 쓴다. 나름 괜찮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정리가 됐다. 그 뒤 다른 사람의 글을 보는데, 내 글이 어찌나 하찮게 느껴지는지! 이내 삭제하거나 작가의 서랍에 짱 박아둔다. 그것들은 언제 꺼낼지 모른 채 여차하면 삭제될 처지에 놓여있다.


래퍼 샤인이 생각난 건 그래서다. 그도 타이거의 압도적인 실력에 놀랐겠지. 팀을 결성할 때만 해도 그런 실력파 동료가 있다는 건 엄청난 혜택이었을 거다. 동료로서 때론 경쟁자로서 배우고 서로 견제하면서 성장할 테니까. 그런 점이 좋아서 팀을 이뤘고 승승장구하기에 이르렀겠지. 하지만 인기가 한쪽으로 기울면서 동료를 시기하게 되고, 끝내 자신을 탓하게 됐을 거다. 결국 팀을 떠날 수밖에 없었겠지.



2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니 나만의 스킬을 알게 됐다. 나는 래퍼로 따지면 프리스타일이다. 프리스타일은 말 그대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뱉는 랩이다. 들려오는 비트에 맞게 즉흥적으로 말을 만들어내고 흐름을 타기 때문에 완성도 면에서 허술할 수는 있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다. 처음부터 어떻게 쓸지 고민해가며 가사를 쓴 뒤, 끊임없이 수정하면서 아주 잘 다듬어간 가사의 짜임새가 훨씬 좋겠지. 하지만 프리스타일은 '라이브'라는 점에서 래퍼들에게도 존경받는다. 즉석에서 생각나는 가사를 흐르는 비트에 찰떡같이 어울리게 만들어내는 게 어디 쉬운가? 아마 래퍼 중에서도 몇 안 되는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을 거다.


추측건대 프리스타일은 순발력의 영역, 아니면 행위 예술의 영역, 그것도 아니면 둘 사이 어느 지점에 재능이 있어야 한다. 즉석에서 노래를 창조하니 진정한 창작자라고도 할 수 있다.


나 역시 프리스타일을 추구한다. 글을 쓸 때 주제를 재고, 이런저런 소재를 모아 조합한 뒤 완성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특별한 꼼수를 쓰는 것도 아니다. 남들 다 하는 메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감이다.


남과 다른 점은 메모 방식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메모 방법은 키워드를 남기는 것이다. 주저리주저리 여러 개의 문장으로 남기는 메모는 시간이 오래 걸려 적다 보면 찰나의 영감을 놓칠 수 있다. 반면 키워드로 적으면 빠르게 현상을 기록할 수 있다. 이후 복기하면서 메모 당시의 감정을 되살리면 된다. 이론적으론 빈틈없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내게 맞지 않았다. 메모를 적을 당시 감정을 나중에 되뇐다고는 하나, 어쨌거나 100% 그때와 같을 수는 없다. 최대한 되뇌어봤자 90~99%이지 않을까? 나는 잃어버린 1~10%도 아까워하는 사람이다. 메모할 당시의 모든 것을 간직하길 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키워드 메모는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감정과 워딩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서 나는 메모할 때 빠르게 글을 쓴다. 그건 오래도록 적는 습관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도 모르는 새 자연스레 속기 근육이 발달한 것이다. 내가 에디터 일을 하면서 적성에 맞다고 생각한 것도 빨리 적는 습관 덕분이다. 수첩에 펜으로 화자의 말을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적어나갈 수 있다. 그건 좀 전에 말한 놓치기 싫어하는 완벽주의 성향으로부터 시작됐다.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때부터 실시간으로 적는 걸 좋아했다. 수업에서 선생님의 강의는 물론 농담까지도 받아 적었다. 그냥 놓치는 게 싫었다. 그것들을 잘 활용해서 학업성취도가 전국 최상위권에 올랐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아쉽게도 슬기롭지 못하고 머리가 둔해서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빠르게 많이, 쓸데없는 잡담까지 모조리 적어내는 건 내 장기였다. 대학 때도 교수들의 강의 내용은 노트에 대본처럼 정리돼 있다. 시험 때만 되면 동기들이 나를 찾아오는 건 그것 때문이었다. 그들은 시험 기간에 내 노트를 빌려 교내 복사기 앞에 줄부터 섰다.


그래서 기자가 됐는데 이거 웬걸. 일 하기가 수월했다. 막말로 인터뷰 때 녹음기도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너무 말이 많고 빠를 때는 예외적으로 나만 아는 문장으로 적어놓았지만, 그 외 웬만한 사람들의 말 속도는 필기로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3


최근까지 몰랐다. 빠르게 적을 줄 아는 것이 프리스타일 글쓰기와 관련된 뇌 영역인 줄은.


브런치를 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장문의 글을 쓰게 됐다. 처음에는 주제를 정하고, 글감을 모으는 데 열중했다. 키워드 메모가 좋다기에 영감이 올 때 핵심 단어를 적어뒀다. 그렇게 모든 게 갖춰진 상황.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지만 쉽게 쓸 수가 없었다. 충격이었다. 십 년간 글을 써온 내가 이리도 막히다니. 쓰고자 하는 얘기가 너무 많은 데다 키워드를 메모할 때 뭘 원했는지 명확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망해서 커리어를 의심했다. 말로만 듣던 물 경력이 바로 나였다니!


자존심은 상하지만, 부족함을 인정하고 재도전했다. 글감 모으기와 키워드 메모하기 등 이전과 같은 방법을 시도했지만 또 실패했다. 글을 쓰긴 썼다만 뭔가 매끄럽지 않았다. 자꾸만 맥이 끊겼고, 억지로 마무리를 지으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작위적인 결과물을 낳고 말았다. 뭐가 문제일까? 답이 없어서 그냥 쉬기로 했다. 어차피 메모도 다 떨어지고 글감도 바닥났다.


뭘 써야 할지 모르고 고민하다가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예를 들어 브런치와 싸이월드가 비슷한 느낌이네? 어라? 그래서 메모를 남기자는 마음으로 브런치를 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적었다. 문법이나 표준어에 안 맞아도 괜찮았다. 일단 그냥 적었다. 하나라도 놓치는 게 싫었다. 머릿속에서 하고픈 말을 재판장의 속기사처럼 적었다. 그렇게 2~3분 이내로 타이핑을 끝내고 화면을 봤다. 장문의 글이 있었다. 그건 메모 수준이 아니었다.(이 메모를 토대로 감정과잉과 초담백 시대를 사는 법을 썼다)


글 잘 쓰는 법을 위시한 어떤 참고서에도 이런 식으로 메모하란 팁은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소질이 없나 보다, 고 여겼다. 그래도 기왕 적은 거 소스로 활용해 글을 완성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글을 다듬으려는데 큰 틀에서 딱히 고칠 것이 없었다. 그냥 평소 내가 말하는 그대로 적혀있었다.


좋은 글은 말하듯이 쓴 글이라던데. 이거 좋은 글 맞지 않나? 심지어 술술 읽히니 쉽게 느껴졌다. 무게감이나 깊이는 없어도 하고픈 말은 다 담겨 있었다.


설마 이게 내 방식인가? 머리가 띵 했다. 남들이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고 한들 내게 안 맞으면 무슨 소용인가. 내 장기는 속기사만큼 빠른 필기이니 이게 나의 메모이지 않을까? 심지어 보통 사람이 메모할 때와 크게 시간 차이 나지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빠른 캐치'라는 메모의 취지에서 벗어나지도 않는다.


찾았다 내 방식!

그 이후로 메모할 때 일필휘지로 글을 쓴다. 프리스타일 랩처럼 즉석으로 뱉어내는 글이다. 메모가 일종의 습작이 되는 셈이다. 해보니 별로 어렵지 않다.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후두두 두들겨 쓰고 나중에 정리하면 된다. 키워드 메모로 잃었던 감정 1~10%는 내 방식으로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



4


혹시 글쓰기보다 말하기를 더 잘한다거나, 카톡 같은 메신저로 얘기할 때 많은 문자를 빠르게 칠 수 있다거나, 자기 글이 작위적이라서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메모 방법 추천한다. 두뇌의 자정작용을 거치지 않은, 말 그대로 애드리브 같은 '생글'이라 작위적인 꾸밈 따위 첨가할 여력도 없을 거다.


물론 그렇게 쓴 글이 깊은 울림을 주고 크나큰 감동을 주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어쩌겠나. 프리스타일 글의 특성인 것을. 즉흥적으로 생각해서 글을 풀어내는 것이 꼭 프리스타일 랩과 같지 않나?


만약 내용상 깊이감을 주려거든 메모에 덧붙일 만한 걸 찾는 별도의 사유를 한다거나, 정교한 다듬기 과정을 추가하면 그만이다. 거기부터는 필력의 영역이다.


어찌 됐건 남과 다른 글쓰기 방식을 찾아내니 다른 사람 글에 위축되던 마음이 다소 가라앉았다. 그들의 잘 쓴 글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적은 거고, 나는 내 방식이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프리스타일로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실력 아닐까? 'ㅎㅎ'


웃음이 왜 나는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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