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ditor Note

신카이 마코토 작품은 좌뇌로 봐라

그의 작품세계를 분석만 하려 하는 평론들에 반함

by clever


다소 충격적인 얘길 들었다. 현재 국내 박스오피스 1위 자리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다는 소식이었다. 처음에는 <더퍼스트 슬램덩크>가 롱런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바통은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으로 넘어가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래? 재패니메이션에서 또 다른 재패니메이션으로 1위 자리가 넘어갔다니! 한국 박스오피스 얘기 맞아? 맞다!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뒤늦게 그 이름을 돼 내었다. 신카이 마코토. 1위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라면 충분히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수긍했기 때문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어떻게 대가가 되었나? 아니 어떻게 이만한 팬덤을 갖게 되었나? 신카이 마코토의 티켓파워, 즉 그의 브랜드에 관해 생각해 봤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관점이다.




스토리보다 감성이 우위에 서는 힘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떠오르는 키워드가 몇 있다. 풍부한 감성이 대표적이다. 그의 작품을 보다 보면 감성에 빠지다 못해 흠뻑 젖는다. 눈물이 나고 괜히 짠하다.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나는 아이러니. 그건 추억, 그리움이 극대화되면서 느끼는 흐느낌과 동시에 잊혔던 10대 시절의 풍부한 감성을 실로 오랜만에 꺼내면서 나온 복잡 다난한 감정이다. 어떤 의미에선 기쁘다. 내게도 그런 추억이 있다는 걸 상기하면서 괜한 웃음이 나온다. 깔깔 웃음이 아니라 미소 정도의 옅은 웃음이랄까.


그렇게 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스토리보다 감성이 더 우위에 선다. 그래서 그의 작품 줄거리는 잊어도 감성 짙은 영상만은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을 쓰려고 신카이 마코토를 검색해 봤다. 하나같이 작품의 내러티브와 줄거리를 분석한 평론들뿐이다. 공감가지 않아서 읽다가 말았다. 읽다 지쳤다. 이 사람은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된다. 이성의 뇌를 발동한 평론들은 관객 입장과 동떨어진 글자일 뿐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우리에게 감성으로 다가오기에 어디까지나 좌뇌로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투명 수채화 같다. 펜과 물감으로 기록하는 자연의 싱그러움, 일상을 물들이는 물과 물감의 정감이 애니메이션에 담겼다. 투명 수채화는 우리, 한국 관객들에게 의미가 크다. 사춘기 때 전교생이 사생대회를 위해 공원, 강, 산 할 것 없이 자연의 푸름이 가득한 곳으로 이동했다. 모두가 수채화를 그렸다. 고상한 척 눈앞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았던 기억, 친구들과 깔깔대며 농땡이를 피우던 한 때, 물을 많이 섞어서 농도가 아주 옅은, 연한 파스텔톤을 구현했지만 붓을 너무 세게 문질러 종이가 지우개 똥처럼 일어났던 기억, 그림이고 뭐고 잔디밭에 누워 콧바람 쐬던 작은 반항. 수채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건 10대 시절의 향수이자 추억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그림은 물을 많이 타 농도가 옅어진 투명 수채화 같다. 그 시절 우리가 바라봤던 나무, 하늘, 비, 햇빛을 그렸으며 하나같이 강렬하게 훅 들어오기보다 은은하게 스며드는 느낌이다. 반짝이듯 쨍한 색감은 날씨 좋은 어느 날 잔디 위로 사생대회 나간 기분마저 들게 한다. 이건 많게는 지금 한국의 4050까지 공감할 만한 지점이다. 그 추억을 끌어내는 그림이 신카이 마코토의 첫 번째 힘이다. 그의 작품이 풍기는 감성이라는 건 결국 추억이고 향수다.



어른이라서 극대화되는 그리움, 그리고 힐링

추억, 향수. 이것이야 말로 어른의 콘텐츠다. 우린 어른이 되었지만 그토록 찬란했던 청소년기가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랄까? 그런 감성을 꺼내놓는 게 신카이 마코토의 힘이다. 어찌 보면 그리움과도 맥을 같이 한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10대에 주목했기에 관객의 그리움이 더욱 극대화된 점도 있다.


누구나 인생의 황금기를 꼽자면 어느 한 철이 있을 터. 신카이 마코토는 그걸 10대로 봤다. 그래서 사춘기 소년,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들을 주로 만들었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 인터뷰에서도 말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감정이 많이 무뎌지고 있지만 작품을 만들 때만은 많은 것이 눈부시고 신선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로 돌아가려 한다.” 그런 주관이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관객에게 전달된다.


순수한 10대 시절이야말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때라는 데 공감하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건 스토리가 뛰어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신카이 마코토가 내놓는 그림이 힐링을 주고, 음악이 눈물 나게 한다는 게 핵심이다.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시청각으로 전해지는 풍부한 감성이 10대 시절 더없이 아프고 강렬했던 감정 속으로 성인 관객들을 몰아넣는다. 그것이 신카이 마코토라는 브랜드를 지탱하는 힘이다.



만화다운 판타지를 일상의 아름다움과 버무리다

나도 브런치를 하면서 느낀 거지만 한국인의 감성은 특별하다. 최근 몇 년간은 특히 더 감성적이다. 브런치 하는 이들만 봐도 감성 에세이에 열광하고,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에세이는 붙박이다. 이런 흐름은 현실이 각박해진 것의 방증이다. 우리에게 판타지가 필요한 이유이다. 그걸 감성 에세이 소비로 해소하는 형국이다.


생각해 보면 판타지의 대표 장르는 애니메이션이다. 영화, 드라마에 들이미는 리얼리즘의 잣대를 다소 약하게 가져가는 장르다. 어차피 모든 게 가상이라 판타지에 제한이 없으며,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질수록 열광하기도 한다. 우린 그 속에서 각박한 현실을 잊고 싶었고, 신카이 마코토는 잊게 만들었다. 그게 힐링으로 이어졌다.


그런 점은 얼마 전 화제를 모았던 애니메이션인 <더퍼스트 슬램덩크>와 다른 계열의 인기 요인이다. 리얼한 그림체로 화제가 됐던 <더퍼스트 슬램덩크>와 달리 신카이 마코토는 철저히 애니메이션 공식에 따른다. 일례로 인물들이 하나같이 눈이 크고, 비율이 좋으며, 얼굴도 예쁘고 잘 생겼다. 아무리 더럽고 암울한 가부키초 뒷골목이라 할지라도 깔끔한 환상 속 도시처럼 보인다. 처음부터 애니메이션이란 걸 알고 보는 관객들에게 현실처럼 리얼한 그림을 굳이 제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화는 만화답게 판타지를 구현해 힐링을 주면 그걸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관객이 공감할만한 요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판타지를 구현했어도 현실과 교차되는 요소 하나 정도는 있어야 관객이 극에 빠져드는 명분이 생긴다. 신카이 마코토는 일상 속 감성을 리얼하게 그려냄으로써 공감을 얻었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을 눈에 담는 일상의 감성이 한국 관객들의 공감을 이끄는 포인트로 작용했다. 태반이 도시에 사는 한국 관객들에게 버스 창밖 풍경이야말로 감성을 채우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에 많은 이들이 동조한 것이다.


알고 보니 버스 창밖의 풍경을 담는 감성적인 행위는 신카이 마코토의 실제 경험이었고, 이는 한국 팬과의 공통점이 됐다. 신카이 마코토는 <너의 이름은> 개봉 당시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 나가노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왕복 1시간 반이 걸리는 학교를 늘 기차로 통학했다. 전차에서 책을 읽다가 바깥 풍경을 놓치는 게 아까워 등·하굣길엔 내내 창밖만 바라봤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하늘도 나무도 완전히 다른 색으로 변하는 걸 보는 게 좋았다. 그때 눈과 마음에 담아놓은 풍경과 감성이 지금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자산이 됐다.”




문득 궁금하다. 내 10대 시절은 이토록 찬란했던가? 투명한 수채화처럼 맑고 청량한 나날이었던가? 모든 날이 그렇다고 볼 순 없지만, 적어도 서툴렀기에 후회가 남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든다. 간신히 어린 시절을 회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 점에서 신카이 마코토의 힘은 참 놀랍다.




신카이 마코토 주요 필모그래피


초속 5센티미터(2007)


언어의 정원 (2013)


너의 이름은(2016)


날씨의 아이(2019)


스즈메의 문단속(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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