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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뮤연뮤 Jul 12. 2024

20. 연극 <일리아드> 리뷰

평화를 염원하며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부르는 분노의 노래

주식회사 네오/라이선스 - 인피니스

주식회사 네오/라이선스 - 인피니스

2024. 06. 18 ~ 2024. 09.08

예스 24 아트원 2관

황석정, 최재웅, 김종구


1. 들어가며

2. 스토리 라인

3. 영웅의 삶

4. 분노와 전쟁, 이해의 노래

5. 연출

6. 어째서 <일리아드>?

7. 나오며

@yeonmyu_0113


1. 들어가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서양권 최초의 서사시로 분량으로나 내용상으로나 뜻깊은, 서양 문학의 기본이 되는 작품이다. 많은 문학 작품의 기본이 되었고, 필수 교양 도서이기도 한 <일리아스>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지고 무대에 올랐는지 서술하고자 한다. 


2. 스토리 라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모두가 익히 잘 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그 중 <일리아스>는 그리스 총연합군 아가멤논과 영웅 아킬레우스의 갈등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크리세이스와 브리세이스라는 여성을 전리품으로 얻는다. 아가멤논은 크리세이스, 아킬레우스는 브리세이스를 취하나 크리세이스의 부친은 아폴론 신의 사제였다. 부친은 보물을 가져와 딸을 돌려줄 것을 애원하나 명예 때문에 아가멤논은 이를 거부, 신의 분노를 사게 된다.


신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크리세이스를 돌려주는 것뿐이었고 아킬레우스가 나서 돌려주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아가멤논은 돌려는 주겠으나 대신, 브리세이스를 취하겠다고 말한다. 아킬레우스가 분노하여 아가멤논과 그의 동생 메넬라오스를 위한 이 전쟁에서 싸우지 않겠다 한다.


아킬레우스가 빠진 그리스 연합군은 해안가까지 몰리게 된다. 수많은 사상자를 내게 되자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대신 나서고자 하며 아킬레우스는 그에게 자신의 무장을 빌려준다. 그리고 “트로이군 성벽에 가까이 가지 말라.”라는 충고까지 남긴다.


파트로클로스는 제우스의 아들 사르페돈을 죽이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하지만 그는 트로이 왕세자 헥토르에게 패배해 사망한다. 아킬레우스는 그의 죽음에 분노한다. 그리고 다시 전장에 나가 싸울 것을 결심한다. 그는 어머니 테티스 여신의 도움을 받아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무장을 입고 전장에 서고 친구를 죽인 원수 헥토르와 마주하게 된다.


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헥토르는 트로이의 왕세자이자 총사령관으로 그는 신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인물이다. 비겁한 파리스와는 다른 인물로 트로이의 운명을 직감하고 있으나 총사령관으로 전장에 서고 아내 안드로마케를 걱정한다. 좋은 남편이기도 한 그는 아내와 아들과 인사하고 전장에서 아킬레우스와 마주한다.


아킬레우스를 마주한 그는 생각이 많았다. 전차를 몰고 몰아 쫓고 쫓기고를 반복하고 전투를 이어가지만, 운명은 아킬레우스의 편이라 결국 헥토르는 패배하고 한다. 아킬레우스는 친구를 죽인 원수의 시체를 전차에 묶어 끌고 다니며 분을 푸는데 열흘 동안 이를 반복한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며 시체라도 돌려받고자 홀로 그리스군 진영으로 향한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그리스군 진영에 들어온 프리아모스는 드디어 아들을 죽인 원수 아킬레우스를 만난다.


늦은 밤, 막사에는 아킬레우스와 프리아모스 두 사람뿐이었다. 아킬레우스는 시체를 돌려달라는 프리아모스에게 화를 낸다. 하지만 프리아모스와 같은 상황에 처한 아버지 펠레우스와 곧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아킬레우스는 무릎을 꿇은 프리아모스를 일으켜 세우며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준다. 그리고 장례에 필요한 기한까지 물으며 그동안은 전투가 일어나지 않게 할 것도 약속한다. 프리아모스는 아들의 시체를 돌려받고 장례를 치른다. 


3. 영웅의 삶

연극 <일리아드>에서는 두 인물이 도드라진다. 바로 그리스의 아킬레우스와 트로이의 헥토르이다. 두 인물 다 영웅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둘의 공통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두 사람은 운명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이미 있다. 트로이 전쟁에 나가면 영광을 얻으나 죽는다는 예언을 듣고 참전했다. 헥토르도 트로이의 운명을 알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알면서도 전투에 임한다. 


어떤 운명이 있을지 알고 있으면서도 피하지 않는 그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는 인간은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닥칠지 알 수 없으나 그럼에도 피하지 말아야 하며 맞서야 함을 알 수 있다. 그 끝에 죽음이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싸웠고 그것이 둘을 명예롭고 영웅으로 만들었다. 


4. 분노와 전쟁, 이해의 노래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가져다 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영혼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의 몸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일리아스>를 진행하게 하는 건 ‘분노’이다. 첫 번째 분노는 브리세이스를 앗아간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 두 번째 분노는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대한 분노이다.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핵심이고 이걸 따라가면 전체를 알 수 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단순히 그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첫 번째에 그가 분노하자 그걸 들은 어머니 테티스가 제우스에게 간청하여 그리스군이 패배하게 된다. 또 두 번째에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많은 이모들이 바다에서 같이 올라왔고, 헤파이스토스의 손길이 닿은 무장을 받는다.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신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는 아가멤논이 자신의 명예를 무시하여 분노하여 전장에서 이탈했고 이 일은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친구의 죽음에 분노하여 그는 다시 전장에 서고 헥토르를 죽이게 된다. 분노로 인해 이야기가 진행되는 그 모양새는 전쟁을 계속 일어나게 하는 게 분노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반드시 거시적인 것이 아니고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대는 진실로 많은 슬픔을 이겨냈군요. 어떻게 혼자서 찾아왔습니까? 당신의 훌륭한 아들들을 모두 죽인 사나이를 어찌 찾아볼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의 심장도 강철로 된 것은 아닐텐데. 잠시 우리의 슬픔은 가슴 속 깊이 묻어둡시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에 비해 인간적인 면모가 부족한 인물로 그려지곤 하는데 프리아모스와 대면하는 장면은 아킬레우스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기까지 한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장면인 동시에 신과 인간 사이에 있던 반신(反神) 아킬레우스 수준이 격상하는 장면이다.      

[아킬레우스는 자기의 늙은 아버지 생각이 나서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노왕의 손을 잡고 가만히 뒤로 밀쳤다. 두 사람은 각기 죽은 사람을 생각하며 울었다. 한 사람은 자기 아들 헥토르를 생각하며 아킬레우스의 발 앞에 엎드려 울었고, 아킬레우스는 부친과 파트로클로스를 생각하며 울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장면은 아킬레우스에게만 의미 있는 장면은 아닐 것이다. 인류 모두에게 가치 있는 장면일 것이다. 작가는 서로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던 전쟁 끝에 이해를 통한 화합을 이야기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가 깊이 새기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5. 연출

무대는 수많은 영웅들이 썼던 투구를 지반으로 삼은 신전을 형상화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셀 수 없다. 중앙으로 둘로 나눌 수 있으며 그것은 곧 트로이와 그리스가 된다. 작품에 제우스가 저울을 들고 나타나는 장면을 연상케도 한다.


작품은 1인극이다. 무대에는 이야기를 들려줄 나레이터와 음악을 연주할 연주자만 자리를 지킨다. <일리아스>가 운율이 있는 시, 서사시라는 특징을 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연극 <일리아드>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의 형식을 차용했음이 드러나는 부분은 바로 나레이터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원문 자체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나레이터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어떨 땐 이제는 잊혀진 신의 사제 같기도 하다.


그리고 무대에는 술도 준비되어 있다. 이야기를 들려줄 나레이터들은 이 술을 마시기도 하는 데 현대적 관점에서 술이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해당 작품이 <일리아드>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렇지만도 않다. 술은 고대 그리스 비극 경연 대회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 경연 대회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래서 비극 경연 대회 중 디오니시아 제전이 큰 권위가 있었고 연극 <일리아드>가 이를 반영한 것으로 보았다. 


6. 어째서 <일리아드>?

<일리아스>의 주제는 이해와 운명의 수용이다.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의 만남이 이해를,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내면은 인간과 운명에 관해 고찰하게 한다            

“우리 인간의 일생은 모두가 슬픔이지만 신들 자신은 아무런 슬픔도 없답니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는 영웅이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 상황은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 없다. 암울한 운명에 희생당할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들을 걱정하는 총사령관이자 왕세자, 친구의 죽음에 슬퍼하고 분노하며 감정에 휘둘리는 명장이자 반신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죽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은연중의 불만도 극복하고 죽음도 받아들인다. 그는 영웅 헤라클레스도 죽었기에 명예를 선택했다.


인간임에도 신들의 전쟁 기간토마키아에 참전한 영웅 헤라클레스도 죽었고, 여신 테티스의 아들 반신 아킬레우스도 죽었다. 영원을 사는 신들과는 달리 인간은 유한한 필멸자다. 무한하지 않고 유한하기에 용감해질 수 있고 모든 걸 걸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을 영웅으로 만들고 명예를 준다. 신과 인간의 차이점이다.            

"난 이 노래가 계속되지 않기를 바래."

그뿐만 아니라 연극 <일리아드>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강조한다. 나레이터는 전쟁이 또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평화를 강조한다.


연극 <일리아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전부는 아니다. 새로운 대사가 추가됐는데 연극 <일리아드>는 중간에 실제로 일어났던 수많은 전쟁을 나레이터가 열거한다. 이제 신화로만 전해지는 트로이 전쟁과는 다르게 엄밀히 사실로 전해지는 전쟁들은 인류는 이때까지 수없이 일으켰던 전쟁들이며 앞으로 또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일리아드>의 뜻은 ‘일리온의 노래’이다. 분노를 노래하지만, 전쟁의 양상도 볼 수 있다. 가족과 이별해야 하고, 일상을 살았던 사람은 죽고 행복했던 사람에게 불행이 들이닥친다. 나레이터가 부르는 노래는 평화를 염원하는 전쟁의 노래다. 그렇기에 나레이터는 이 노래가 계속되는 걸 원치 않는다.


‘전쟁’으로 한정한다면 우리에게 먼 이야기지만, 투쟁, 싸움으로 국한하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우리도 가까운 사람과 다투기도 하지 않는가? 영웅들처럼 창과 방패를 들고 서로를 죽이지 않지만, 고통은 그에 못지않다. 


7. 나오며

<일리아스>의 인물과 이야기는 영웅과 신들의 이야기라 다소 거리감 있을 수 있다. 그들의 삶과 목표는 지금과 너무 달라서 일 것이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근본은 현대와 다르지 않다.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결투 중, 제우스는 헥토르의 편을 들어줄까 고민했으나 운명을 바꾸려 들지 말라는 경고에 운명을 따라 아킬레우스에게 손을 들어줬고 헥토르는 패배한다. 결국 영웅이니 반신이니 해도 신의 손길, 운명의 순리대로다.


인간은 정해진 시간과 운명 속에서 시련과 고난을 겪으며 산다. 우리가 영웅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니 그것은 매우 두렵고 죽을 수도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 영웅들도 죽으니 인간인 우리들도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이다. 덧붙여 연극 <일리아드>는 원작에도 있지만 쉽게 간과할 수 있는 평화를 관객에게 기억시킨다. 


영웅들은 대단했다. 그들은 죽음을 피하지 않고 전쟁에 나가 싸워 명예를 높였다. 그들의 태도를 본받는 게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던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헥토르의 인간적 고뇌, 해설자들이 나열한 전쟁들. 평화,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이다.


기원전 8세기에 쓰인 <일리아스>가 현대에도 통하는 이유일 것이다.

@yeonmyu_0113

* 트로이 전쟁은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에서 시작한다. 테티스 여신이 낳은 아들은 무조건 아버지를 뛰어넘는다는 예언에 제우스가 테티스를 인간 남성과 결혼시키는데 이 결혼식에 불화의 신 에리스가 초대받지 못함에 분노하여 황금 사과를 던져 두고 사라진다.

이 황금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이에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각자 소유권을 주장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실은 트로이의 왕자인 파리스에게 선택을 맡겼고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선물하겠다는 아프로디테에게 황금 사과를 바친다.

아프로디테는 약속대로 스파르타의 왕비이자 메넬라오스의 부인 헬레네를 선물하고 이것이 트로이 전쟁으로 연결된다.

* 아킬레우스는 헬레네의 구혼자가 아니었다. 사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아도 될 인물이었다.

* 감정을 다 토로하는 것도 영웅들의 특징이다.


*해당 글은 https://c-straw.com/posts/913에 게시된 글입니다.  



                

STRAW - 연극 <일리아드> 리뷰

연극 <일리아드> : 평화를 염원하며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부르는 분노의 노래

https://c-straw.com/posts/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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