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모자 이야기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검정 모자 소녀가 살고 있었어요. 소녀의 할머니는 소녀의 생일날 빨간 모자를 선물했지만 소녀는 검은색을 사랑했어요. 소녀는 집안에 뒹굴던 먹물을 양동이에 잔뜩 풀어 빨간 모자를 담가 검은색으로 만들어버렸어요. 그날 이후 소녀는 매일같이 검정모자를 쓰고 다녔고 그래서 ‘검정 모자’라 불렸어요.
하루는 소녀의 엄마가 검정 모자를 불러 찾기 시작했어요.
“검정 모자, 여기로 와보렴.”
청개구리 기질이 다분한 검정 모자는 엄마에게 가지 않고 구석에 작은 몸을 숨겼어요. 가뜩이나 검정 모자를 쓴 탓에 소녀의 엄마는 검정 모자를 찾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검정 모자야, 할머니에게 죽을 가져다 드리면 안 되겠니? 할머니가 편찮으시단다.”
알게 모르게 속은 여린 검정 모자가 구석에서 슬그머니 나와 엄마에게 다가갔어요.
“이 죽을 할머니에게 잘 가져다 드리면 된단다. 길은 잘 알고 있을 테니 늘 가던 길로 가면 된단다. 어렵지 않지?”
검정 모자는 엄마에게 말하길,
“길 몰라요. 스마트 폰 사주면 앱 켜고 따라가면 되는데….”
엄마는 어린애가 벌써부터 그런 거 쓰면 안 된다며 검정 모자를 타일렀어요.
“그리고 괜한 길로 새지 말고 곧장 할머니 댁으로 가야 한다. 약속하렴.”
검정 모자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어요. 엄마는 한숨을 쉬고 어련히 잘하겠거니 생각하고는 소녀에게 죽이 든 도시락통을 건넸습니다.
할머니네 댁으로 가는 숲 속 길, 검정 모자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나뭇가지를 한 손에 붙잡고는 마치 자신이 해리포터가 된 양 아브라카다브라 하고 새를 향해 외치기도 하고 바위에 올라 뛰어내리며 하늘을 나는 시늉을 했어요.
숲 속에서 소녀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늑대 한 마리가 검정 모자에게 다가왔어요.
“안녕, 검정 모자!”
검정 모자는 자기가 하던 것들을 늑대가 다 보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너무 창피했어요. 그래서 늑대를 모른척하고 할머니네 집에 가는 길로 빠르게 달려갔어요. 하지만 늑대는 자신을 보고 도망가는 검정 모자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았어요. 늑대는 검정 모자의 상상의 나래 속에서 함께 놀고 싶었을 뿐이었거든요.
늑대는 엉엉 울며 집에 돌아갔어요. 엄마 늑대는 방에 처박혀 울고 있는 아기 늑대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어요. 아기 늑대의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 늑대는 인간들은 이래서 안 된다며 혀를 내둘렀어요. 엄마 늑대는 애들 사이 문제에 부모가 껴서 참견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평소 사냥꾼 같은 인간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었어서 어떻게든 인간들에게 한마디라도 따지고 싶었어요.
그 사이 검정 모자는 할머니에게 죽을 가져다 드렸어요. 딴 길로 새는 바람에 할머니네 집에 늦게 도착한 검정 모자는 하는 수 없이 할머니네 집에서 잠을 자고 가야 했어요. 할머니는 검정 모자에게 자신이 그간 사놓은 꽃핀과 치마를 손녀에게 건넸어요. 검정 모자는 그건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고 할머니에게 말했지만 할머니는 막무가내였어요. 소녀는 한숨을 쉬며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치마는 목도리처럼 두르고 꽃핀은 책갈피로 써버렸어요. 할머니는 뒷목을 잡으며 침대 위에 다시 누워버렸어요.
다음날 아침이 되었어요. 검정 모자는 할머니에게 이제 집에 가보겠다며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검정 모자는 저번처럼 누군가 자신을 볼 까봐 머릿속에서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조용히 길만 걷고 있었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
“네가 검정 모자니?” 하고 엄마 늑대가 불쑥 나타나 검정 모자에게 말을 걸었어요. 검정 모자는 너무 짜증이 났어요. 자신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마다 나타나 방해를 하는 게 너무 싫었거든요. 검정 모자는 아무 대답 없이 엄마 늑대를 똑바로 쳐다보기만 했어요.
약간 당황한 엄마 늑대는 검정 모자에게 말을 버벅거리며,
“너.. 너.... 너 때문에! 우우우리 아아기 늑대가 울었잖니!”
검정 모자는 왜 자기 때문에 아기 늑대가 울었냐고 엄마 늑대에게 차분히 물었어요. 엄마 늑대는 검정 모자가 아기 늑대를 무시하고 지나친 점을 지적하며 인간들은 너무 이기적이고 지들밖에 모른다며 검정 모자에게 울분을 토했어요.
검정 모자는 자신의 상상의 나래에서 함께 놀고 싶어 하는 친구가 생겼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소녀는 아기 늑대가 싫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창피해서 도망간 거였다고, 언제든 아기 늑대랑 놀고 싶다고 초롱 거리는 눈망울로 엄마 늑대에게 말했어요. 그러면서 이건 아기 늑대를 위한 선물이라며 꽃핀과 치마를 건넸어요. 엄마 늑대는 검정 모자의 따뜻한 마음씨에 놀라, 이 세상에는 사냥꾼 같은 나쁜 인간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날 이후 검정 모자와 꽃핀을 단 아기 늑대는 숲 속에서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즐겁게 놀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