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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Sep 19. 2022

이것은 건축이다.  이것은 건축이 아니다.

디지털 건축

한창 3D 모델링이 상용화되던 시기의 첫 결과물. 디지털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결과물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미디어와 그래픽은 건축의 매스와 볼륨을 증발시켰고, 다양하게 데이터화 된 건축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 세계를 부유할 수 있는 소비재로 발전하였다.


유명 건축물이나 의미 있는 장소를 접하고픈 사람은 많으나, '바람의 딸, 한비야 님'처럼 뚝딱 다녀올 수는 없는 게 많은 이들의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건축 팬을 위한 굿즈 인양 다양한 접근법이 발달하였다. 고품격이자 고품질의 건축잡지와 작품집을 출판하고, 화려한 애니메이션 플래시가 가미된 인터넷 페이지에 이어 능동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꽤 사실적인 VR 서비스까지 등장하였다.


사실 이 시대는 건축 설계부터도 디지털 프로그램과 컴퓨터를 통해 이루어지는 분야가 많고 상상 이상으로 독보적인 성장을 해왔기에, 일상에서 디지털 건축을 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평소 건축사진 찍기를 매우 즐기지만, 그것은 내 감정으로 해석해 낸 건축물의 단편적인 미장센일 뿐이기에 편파적이고 주관적이며 편협한 모습만을 담게 된다. 전체가 아니며, 결론도 아니다. 결국 디지털 데이터에 담긴 건축은 차 떼고 포 뗀 비현실적 감각의 포맷일 뿐, 직접적인 공간감과 아우라를 전하기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꼼꼼하게 후기를 살피고 고심해서 한 인터넷 쇼핑에서 실패하거나, 어차피 같은 2차원의 회화작품을 도록으로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원작의 감성이 오롯이 전달되지 않는 점을 생각하면, 디지털 필터를 거친 건축에서 진정한 공간감을 논한다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이렇듯 데이터로 변환된 건축정보 만으로 전체를 판단하려는 누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항상 유념하였으면 한다. 건축 공간은 사람이 느끼는 영역감이다. 눈으로만 즐기지 말고, 피부에도 양보하고, 후각에도, 청각에도, 촉각에도 양보하여서 오감을 넘어 육감으로 누려보면 좋겠다.


건축 출사를 나갈 때면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에 앉아 시간이 하릴없이 흘러가는 것을 느껴본다. 혹여 상황이 허락한다면 누울 자리를 슬쩍 봐가며 누워 보기도 한다. 스페인의 어느 광장에 홀로 누워서 토마토가 빨갛게 익을 법한 뜨거운 햇살을 쬐며 잠시 눈을 감고 있었던 몇 분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렇게 그 작은 광장은 내 추억에서 최고로 뜨겁고 열정적인 장소 손꼽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음에도 말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너무도 진부한 이야기.


건축의 진국은 직접 체험을 통해 맛을 느끼게 된다. 百聞이 不如 一見(백문이 불여일견).

마음에 드는 곳에 간다면, 기념사진만 남겨 두지 말고, 시간에 쫓기지 말고, 그 공간을 진득하게 느껴 보시기를 권해 드린다.


다시금 스페인 광장의 그 온기와 공기가 그립다.      




출처 : 서산시대(http://www.sstimes.kr)


서산시대 연재 중인 최하나 건축 칼럼 니스트의

 '하나두 건축' 기사 교열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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