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놓치고 있는것들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이
오늘 막을 내린다.
마지막 날,
두 개의 장면이 겹쳐 떠오른다.
하나는 기사 한 줄.
“스피드스케이팅 24년 만에 노메달.”
그리고 또 하나는
최가온의 마지막 점프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기에서는
기대만큼의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3차 시기,
최가온은 최고 난도의 기술을
완벽하게 성공시켰고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분명 스포츠가 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드라마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회가 끝나갈수록
내 머릿속에 남는 건
금빛 장면만은 아니었다.
과거의 우리는
증명해야 하는 나라였다.
국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집단의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1등에 집착했다.
금메달은 기억되고
그 외의 순위는 빠르게 잊혀졌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사실에 가까웠다.
이번 대회에서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수년의 준비 끝에 빙판 위에 섰다.
하지만 기사에는
그 모든 시간이 담기지 않는다.
“노메달.”
짧고 단정적인 단어 하나가
과정을 덮는다.
우리는 묻는다.
왜 메달을 못 땄냐고.
그러나 거의 묻지 않는다.
그들이 얼마나 버텼는지를.
최가온이 금메달을 따낸 순간,
많은 시청자들은 그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지 못했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결승이 열리던 시간,
한 방송사는 쇼트트랙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다.
물론 쇼트트랙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메달 가능성이 높은 종목이다.
시청률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시선을 한쪽으로 모았다.
이번 대회는 특정 방송사의
중계 독점 구조 속에서 진행됐다.
경기 선택권은 시청자에게 있지 않았고,
편성의 판단에 따라 관심이 집중됐다.
그 결과,
비인기 종목의 금메달은
국민적 환호 대신
하이라이트 영상과 기사로 소비됐다.
우리는 늘 결과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결과조차 선택적으로 바라본다.
메달 가능성이 높은 종목에는
카메라가 집중되고,
비인기 종목은 조용히 지나간다.
관심은 분산되지 않고,
익숙한 곳에 머문다.
그렇게 우리는
보고 싶은 장면만 크게 보고
나머지는 작게 만든다.
이건 특정 종목의 문제가 아니다.
선수의 문제가 더더욱 아니다.
시청률과 광고,
편성 전략이라는
미디어 구조의 문제다.
하지만 그 구조 속에서
어떤 금메달은 더 크게 기억되고
어떤 금메달은 조용히 소비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최가온의 금메달이 확정된 뒤
한 아파트 단지에 축하 플랜카드가 걸렸고
일부에서는 또 다른 질문이 따라붙었다.
“환경이 좋았던 것 아니냐.”
“금수저 아니냐.”
우리는 이제
메달을 따지 못해도 평가하고,
메달을 따도 조건을 단다.
가난을 딛고 일어나야 감동이고,
부유한 환경이면 덜 감동적인가.
좋은 지원을 받으면
그 노력은 덜 값진 것인가.
스노보드는 많은 비용이 드는 종목이다.
해외 전지훈련, 장비, 국제 대회 경험.
이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출발선이 다르다고 해서
결승선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부상 이후의 두려움,
압박 속 마지막 점프,
수천 번 반복한 기술의 완성도.
그 순간을 수행하는 건
결국 선수 자신이다.
경쟁은 구조적으로
소수만을 남긴다.
누군가는 금메달을 따고
누군가는 4등이 된다.
그리고 대부분은
메달을 따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시간은 무의미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꽃은 빨리 피고
어떤 꽃은 늦게 핀다.
늦게 핀다고 해서
덜 아름다운 건 아니다.
이번에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해서
그 노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번에 금메달을 땄다고 해서
그 배경이 성취를 대신한 것도 아니다.
이번 올림픽은
어쩌면 예전만큼
뜨겁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버티느라
경기 하나하나를 챙길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금메달이건
노메달이건
엘리트건
보통 사람이건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시간을 견디며 살아가기에
이 세상은 유지된다는 것.
나는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축하를 보내고,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같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보통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1등이 아니어도 괜찮다.
이번이 아니어도 괜찮다.
꽃은 각자의 계절에 핀다.
올림픽은 끝났지만
당신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