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서는, ‘꾸란’과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를 기준으로 하여 정치와 경제보다 사회생활에서 엄격한 율법을 강조하는데, 이 율법이 바로 ‘샤리아 율법’이다. ‘샤리아’란 ‘큰길’을 의미하며, 이것은 ‘진리’또는 ‘알라(신)께 다가가는 길’이란 뜻이다. 사실, 율법은 속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율법대로 하고 있는지 감독을 하게 되고, 지키지 않으면 정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즉, 원래의 계시를 놓고, 이를 따지고, 감시하는 기능이 강화되다 보면, 어느덧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이처럼 지키고 따르는 것이 지나치면 율법은 자칫 종교적 위선으로 다가올 수 있고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슬람의 '샤리아' 율법은, 알라(신)께서 인간의 행위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관점을 기준으로, 알라(신)께서 보시기에, ‘옳은 행동’은 반드시 하여야 하고, ‘그렇지 않은 행동’은 금하도록 제정한 법으로서 이슬람교도들에게만 적용된다. 샤리아의 규정이 도출되는 법적인 근거로는 먼저, ‘꾸란’과 ‘하디스’이며, 이를 종합한 것이 ‘이즈마’(무함마드 이후 무슬림들 간에 일치 점을 본 법적 판단)이다. 즉, 계시의 본문과 해석의 적용은 이즈마에 따르며, 이즈마가 판단 기준이 된다. 그리고, 거기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샤리아 위원들의 유추해석과 합의하에 새로운 샤리아를 선포한다. 마지막 근거로 ‘키야스’가 있는데, 이는 새로운 문제 직면 시 앞의 세 가지를 참고, 판단하는 율법이다.
‘샤리아 율법’은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즉, 의무사항 (‘와집’, wajib)은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하고, 이행하면 칭송한다. 권장사항 (‘만둡’, mandub)은 행하면 칭찬받고 천국에서 보상받는다. 그러나 행하지 않아도 비난 또는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무관심 사항 (‘무바흐’, mubah)은 하나님께서 칭찬하나 보상하지는 않고, 꾸짖으시나 벌하지는 않는다. 다음, 마음에 들지 않는 사항 (‘마크루’, makruh)은 삼가면 보상을 받으나 행해도 벌하지 않는다. 그리고, 금지 사항 (‘하람’, haram)은 무슬림은 이 행위를 결코 해서는 안 되며, 이를 행하는 경우에는 벌을 받게 된다. 이처럼, '샤리아'는 이런 다섯 가지 인간의 행위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이슬람 법 체계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이슬람교도의 최대의 의무인 5행(다섯 가지 실천)을 비롯하여 목욕이나 참회의 방법과 같은 ‘의례적 규범(‘이바다트’)’은 물론, ‘법적 규범(‘무아마라트’)’인 공법적, 사법적인 문제, 도덕적인 문제까지를 다룬다. 예컨대, 결혼, 이혼, 무슬림의 권리와 의무, 상속, 매매, 증언, 소송, 범죄와 형벌, 나아가 전쟁, 국제문제 등에 대해서도 관여한다. 이를 위해 사우디, 이집트 등 국가에는 종교경찰이 별도로 편성되어 있다. 필자는 이 종교경찰과 마주친 일이 있다. 호텔 컨퍼런스 룸에서 국경일날 행사를 준비하려고 비서(여)와 운전수와 같이 호텔로 들어가는데, 어디선가 누군가 득달같이 달려와서는 우리들간의 관계를 확인하였다. 비서가 상황을 설명하자 외교관 신분을 확인한 후에야 현지인 여성과 외국인 남성이 같이 있다는 오해를 피할 수 있었다.
‘샤리아’는 성문화된 법은 아니지만, 꾸란, 하디스, 이즈마, 카야스를 적용하니 서구 사법제인 3심 제도보다 더 세심하게 인간사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구의 성문법보다 훨씬 광범위하며 좁은 의미에서 법 규정, 의례 규정, 정치적 규정을 모두 동등하게 취급하여, 여러 학파의 다양한 해석체계도 병존하여 적용하고 있다. 물론, 사안별로 보는 관점에 따라서 법을 달리 적용할 수도 있지만, 무슬림들은 이슬람을 '가장 최종적이고, 가장 완벽한 종교'로 믿는다. 또한, 이 율법의 특이한 점은, 서구 법 체계가 단순히 인간 상호관계를 다루며 형법적인 유죄 또는 무죄를 판정하는데 비해, 이슬람의 법 체계는 알라(신)와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슬람법은 개념 자체가 삶의 도덕적인 측면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AD 632년 6월 8일, 메디나에서 무함마드가 후계자에 대해 어떤 지침도 없이, 부인 ‘아이샤’의 품에 안겨 갑자기 죽었을 때, 무슬림 사회는 지도력 공백이 생겼다. 하지만, 초기의 무슬림 사회에서는 이슬람교가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하였으므로 종교와 정치 간의 구분이 없었다. 종교 자체가 바로 군사력을 갖춘 국가 권력으로서, 종교적, 정치적 권력을 지닌 후계자 지정이 필수였음에도 무함마드가 이를 정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사실, 무함마드가 마지막 예언자였으므로, 더 이상 '예언자'가 나올 수 없었고, 또, 그가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알라(신)’로부터 새로운 계시가 올 수 없었으니, 무슬림들은 이제부터 ‘꾸란’과 언행록인 ‘하디스’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메카’에 있는 무슬림과 ‘메디나’에 있는 무슬림은 모두 자신들이 진정한 후계자라고 주장하다 보니, 차후 ‘지배자 칼리프’로 이어지는 권력 계승의 과정에 문제가 불거졌다. '칼리프'는 왕도 아니고, 세습제도 아니었지만, 왕권 이상의 실권을 가진 이슬람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였다.
우여곡절 끝에, 무함마드가 성장한 곳인 ‘메카’의 무슬림들은, 59세의 나이로 무함마드와 가장 친하고 ‘헤즈라’ 시 동행하였으며, 가장 신뢰받는 친구이자, 무함마드의 부인인 ‘아이샤’의 부친이었던 ‘아브 바크르’(573-634)를 첫 번째 칼리프로 선택하였다. '아부 바크르'는 제1대 칼리프가 된 지 불과 2년 후인 634년에 사망하였지만, 무함마드의 자손이 아니어도 무함마드와 같은 ‘쿠라이시’ 부족 출신이면 무조건 칼리프가 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그리고, 2대 ‘오마르’, 3대 ‘오스만’을 같은 방식으로 선출하였다.
그러나, 무함마드에게 정치적, 군사적 기반을 갖게 해 준 ‘메디나’의 무슬림들은, 무함마드의 조카로서 무함마드의 딸인 ‘파티마’와 결혼한 사위인 32세의 ‘알리’를 후계자로 생각했기에, ‘알리’와 그의 지지자들은 ‘아부 바크르’의 후계자 선출과 이은 2, 3대의 칼리프 선출에도 강하게 반대하였다. 이 때문에 비록, ‘알리’가 4대 칼리프가 되었지만, 암살로 사망한 3대 칼리프인 ‘오스만’ 가문의 사람들은 ‘오스만’ 암살 사건의 배후로 ‘알리’를 지목하고 나중에 ‘알리’와 그 일족을 살해하게 된다.
이런 아픔을 가진 ‘알리’와 그의 지지자들을 ‘시아파’(시아는 ‘알리’의 추종자라는 뜻)라고 하는데, 이슬람교의 전체 무슬림의 약 15% 정도로 주로 이란, 이라크, 예멘 등에 거주한다. 시아파는 ‘이맘’(이들이 알리와 무함마드에 의해 선정되었다고 믿는다)이라고 부르는 종교지도자를 믿고, 그가 신의 계시를 더 받아 꾸란에 덧붙일 수 있다고 믿는다. 즉, 시아파는, 이슬람교가 인간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신의 계시이므로 지도자가 종교적 권위를 가져야 된다고 주장하여, 사람들은 시아파가 더욱 극단적이라고 생각하였다. 반면에, 수니파는 전체 무슬림의 85% 이상으로서 사우디, 이집트 등 중동과 동남아 무슬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들은 꾸란이 최종적인 계시이고 더 이상 이에 첨부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시아파 보다 더 정통파로 인정되었다.
이처럼, 시아파는 수니파와 비슷한 듯 다르지만, ‘샤리아 율법’의 경우에 대해서는 견해의 차이가 크다. 큰 차이점은, 시아파는 ‘정통 칼리프’ 시대에 만들어진 무함마드의 어록인 ‘하디스’를 배격하는 것이다. 이는, 수니파가 '하디스'를 개개의 사항에 대한 무함마드의 판단과 해설, 언행을 기록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 기록은 무함마드의 부인이자 제1대 칼리프 '아부바크르'의 딸인 ‘아이샤’와, 그리고 2, 3대 칼리프와 그 주변 인물이 기록한 것이기에, 시아파는 이를 불신하고 불인정하는 것이다.
이 이외에도, 양 파의 대립에는 율법적인 차이나, 권력계승 방식은 물론, 더 다른 사정도 있었다. 가장 큰 차이는,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셈’ 족계통의 아랍인, 약간 덜 검은 아랍 황인)’과 ‘이란’ 일대의 ‘페르시안(아리안 계통의 백인 계열)’ 사이에는 민족계통이 다르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이라크는 아랍족으로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란은 아리안계로 '페르시아어'를 사용한다. 이란은 오랜 페르시아 왕조의 전통으로 아랍보다 우월한 문화적 자긍심을 갖고 있지만, 아랍은 종교에 있어서 그들의 인종적 우월성을 내세워 이슬람을 해석하거나 적용하면서, 비 아랍계 개종자들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했다.
무함마드가 죽은 뒤 정통 칼리프 시대로부터 ‘우마이야’ 왕조의 세습 지배체제까지(AD 632-750) 아랍인이 페르시아인 - 오늘날 이란인의 선조를 지배하였다. 이런 정치적 상황에 대하여 피지배층인 페르시아인이 지배 계층인 '수니파' 아랍인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정치적인 대안은 ‘시아파’가 되는 것이었다. 이처럼, ‘우마이야’ 왕조와 아랍인의 권력 독점에 반발하여 생긴 갈등은, ‘압바스’ 왕조(AD 750-1258)의 말기에 극대화되었다.
그런데, 수니파든, 시아파든 무슬림은 꾸란의 근본적인 가치관을 동일하게 믿지만, 지역과 분파에 따라 관습과 의식이 다르다. 시아파와 수니파를 외형적인 모습으로 구별하는 몇 가지 방법은, 시아파 성직자는 앞부분이 툭 튀어나온 터번을 쓰고 다니지만, 수니파는 터번을 쓰지 않는다. 수니파는 예배 도중에 팔짱을 끼고 서 있으나, 시아파는 팔짱을 끼지 않는다. 시아파는 알리와 그의 두 아들의 ‘성화’를 벽에 붙이거나 가지고 다니기도 하지만, 수니파는 우상 숭배를 금지한다. 무엇보다도, 시아파는 ‘마흐디’라는 구원자의 재림을 믿는다.
무슬림은 한 해의 첫 달(음력)을 ‘무하람(거룩한 달)’이라고 부르는데, 시아파는 이달의 7일부터 10일까지를 ‘알리’의 독살과 ‘알리’의 아들이자 무함마드의 손자인 ‘후세인’과 후세인의 아들 ‘카심’의 순교(암살)를 애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AD 680 년, 암살된 제4대 칼리프 '알리'의 아들 '후세인'이 메카에서 바그다드로 피하는 도중 이라크의 ‘카르발라’에서 또 다시 암살당했다. 바로 그 장소에 세워진 이맘 ‘후세인’ 사원은 시아파 최대의 성지로서 해마다, 많은 시아파 추모자는 그 사건을 낭송하며 피가 날 때까지 칼로 자신을 치거나, 채찍으로 등을 때리는 등의 고행을 행하는 의식으로 순교 사건을 되새긴다. 하지만, 수니파는 의식을 추모하지만 칼로 자기 몸을 치는 등의 행위는 하지 않는다.
이란의 시아파는 최고 성직자가 국가수반 위에 있고, '정교 일치'를 시행하여 과격한 '이슬람 원리주의'라는 선입견을 주었다. 더구나, 이란 혁명이후 서구 문화와 대립할 때, 많은 ‘시아파’ 신자들이 비행기 납치나 자살폭탄 테러 등을 감행하여 과격한 테러의 대명사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시아파는 독실하고 선량하다. 필자가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유엔 근무를 수행할 때, 운전수는 시아파 교도였고, 임대한 집도 집 지붕에는 검은 기가 휘날리는 시아파 교도의 집 이층이었다. 그런데, 필자의 선입견과 달리 운전수나 집주인 모두 온화하고, 매우 경건하게 살고 있었다. 파키스탄에서는 시아파와 수니파를 색깔로 각 파를 표시한다. 시아는 검은색 기를 게양하고, 수니는 녹색 기를 게양하는데, 파키스탄의 국기는 이 둘을 결합한 것이다.
1969년 전 세계에서, 이슬람을 국교로 정한 나라들이 모여서 ‘이슬람 협력기구(OIC)’라는 정부 간 기구를 결속하였다. 이들은 아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구대비 2/3 이상이 무슬림인 국가들로 서부 아프리카 세네갈로부터 동쪽으로 아랍 연맹 22개국을 포함하여, 터키, 이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까지, 그리고, 남북으로는 카자흐스탄으로부터 탄자니아까지 3개 대륙에 걸친 57개의 거대한 국가군으로, 대략 19억 정도의 인구로 전 세계 인구의 1/4 정도이다.
이들 중, 아랍권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언어는 서로 다르지만, 아랍어로 쓰인 ‘꾸란’을 경전으로 믿는 이슬람 종교와 문화적 유사성을 공유하므로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부분 산유국인 이들은, 이런 종교적 결속력 위에, 막강한 ‘오일 (Oil)’ 달러로 새로운 금융체제를 구축하여,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도 안보, 경제문제 등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세계 경제권에서도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였다.
물론, 이 기구에 참여한 국가가 이슬람을 ‘국교’로 한다지만 모두가 ‘정교일치’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무슬림 비율이 높은 중동, 아랍에서는 이슬람 종교가 이들 나라의 국민생활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도표에서 연한 하늘색 지역)
이 중, 사우디, 이란은 이슬람 종교가 정치,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우위에 있는 강력한 정교일치형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로, 사우디는 수니파 원리주의이고, 이란은 시아파 원리주의이다. 같은 수니파라도 이집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은 사우디처럼 원리주의라기보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여, 법과 국제 규범을 따르는 ‘세속주의’ 국가들이다.
그런데, 도표에서 보듯이, OIC 이외의 국가인 인디아(약 1.3억)나, 중국(약 0.4억), 러시아 등지에도 수많은 무슬림이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주류세력과 정치, 종교적인 분쟁도 감내하며 자신의 종교를 지켜가려 한다. 예컨대, 전 세계의 분쟁지 중 대표적인 지역은, 러시아(체첸), 중국(신장-위구르 분리주의), 인디아-파키스탄(‘캐시미르’ 분쟁), 서부사하라 등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의 많은 지역에서 소규모 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