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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Mar 17. 2023

실리와 체면, 그리고 자존심

사고의 차이 - 실리와 체면 

체면과 자존심


사고의 차이 - 실리와 체면 

필자가 유학시절이나, 구주안보협의체, 유엔 평화유지군 등 '국제 환경'에서 근무할 때, 함께 했던 사람들은 미국, 오스트리아, 덴막, 프랑스 등 서구와, 아프리카, 서남아 및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배경을 가졌다. 그런데,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큰 틀에서 보면 사고와 행동 방식에서 유사성이 많았다. 물론, 몇 군데 다른 환경에서 만난 몇몇 사람으로 그 행태나 특성을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으나, 서로 다른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대인관계를 쌓아가는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되었다. 


이를 대략적으로 요약해 보면, 서구인은 ‘성취’를 존중하고 ‘실리’를 추구하나, 한국인이나 무슬림에게는 ‘명분’, ‘체면’ 등 ‘위상’ 존중이 중요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아래 사례들로 엿볼 수 있다. 


먼저, 서구인은 사물을 볼 때 동양인이나 무슬림에 비해 좀 더 큰 맥락에서 생각하는 듯하다. ‘대관소찰(大觀小察)’이라는 말이 있다. 먼저 ‘큰 그림을 그려보고 세세한 것을 챙겨라’는 뜻인데… 서구인은 돈에 관하여 매우 세심하지만, 나머지 분야는 '사소한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걸지 않는 편이다. 특히, 비교하거나, 남을 비방하거나, 헐뜯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한국인과 무슬림은 매사에 세심하고, 일일이 관여하고, 평가하기를 즐겨하는 듯하였다. 그러니, 잘, 잘못을 따지고, 만약에 누군가가 잘못했을 때, 감싸주기보다는 흉을 보거나, 야단치고, 잔소리를 하는 경향이 있는 편이었다.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대립과 순종’의 구도로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다문화적인 수평적 사회에서 성장한 서구인은 서로의 견해에 대해서는 ‘대립적’이다. 그러므로, 서구인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거나,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누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려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편이다. 


미국 학생들 토론회

미국에서 함께 공부했던 한 미국 학생은, 아무리 저명한 교수가 설명해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면 계속하여 질문을 이어갔다. 교수의 저명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객관적 진실을 추구하며 고집스럽게(?) 반박이나 논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서구인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자세로 논쟁과 지적 토론을 통하여 문제의 핵심과 이치를 따지고 사리분별로 새로운 정보나 아이디어를 찾자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전쟁 당시 미국과 중국이 맞붙은 몇 차례 대형 전투에서 양국은 각자의 방식대로 교훈을 정리하여 자국 학생들에게 교육하였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팩트 자체는 모두가 아는 내용이니 큰 의미가 없다. 초점은, 철저하게 상대의 관점에서 내가 배워온 지식을 뜯어봐야 한다. 그런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토론 매너와 방법과, 실력을 중시한다. 이 때문에 미국은 고교 때부터 ‘화술과 토론 (Speech & Debate)’을 주요 과목으로 선정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학술 토론회'나 '모의 유엔 회의' 등의 형식으로 자신이 부여받은 입장과 역할에 따라 상대와 치열한 토의를 통하여 배울 점을 도출해 내야 좋은 학점을 얻을 수 있다. 대학은 물론, 군사전문학교에서도 학교에서 뭘 가르치기보다는 같은 주제를 놓고 유사한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그런데, 서열화된 사회에서 성장한 동양인이나 무슬림은 공개적인 반박이나 논쟁은 조직의 화합 저해와 ‘관계’의 문화에 부정적이라 생각하며 ‘대립 회피적’ 자세였다. 한국인은 대부분 팩트에 대한 숙지로 만족하기에, 토론회에서 일반적으로 조용히 있는 편이다. 이처럼, 많은 한국인은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때문에, 문제를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질문하기보다 옆 사람을 통하여 조용히 알고자 노력하거나, 설령, 짧은 질문에 나온 답변을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그냥 대충 ‘알겠다’ 며 적당한 선에서 빠져나온다. 체면을 중시하고 주관적 만족을 추구하는 한국인은 ‘교수와 나’와의 관계에 따라 ‘큰 틀’을 조망을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비켜 가려한다. 설혹, 평가라도 받게 되면, 그 교수의 방법과 논리에 초점을 맞추어 준비한다. 짝퉁이 되더라도 학점을 잘 받는 걸 중요한 일로 생각한다. 매우 '순종'적인 모습이다. 


중국인은 약간 다른 듯하다. 비유와 개괄에 능한 이들은 전통적으로 어떤 상황을 고도로 개괄하는 능력과 정곡을 찌르며 한마디로 표현하는 방법을 추앙한다. ‘촌철살인’의 기법이다. 중국인은 한 사람이나, 한 상황에 대한 명과 암을 일시적으로 함께 포용하려 하였다. 다만 명, 암 각각에 비중의 차이는 둔다. 중국인은 처신에 있어 ‘겉과 속이 다른 상대’를 3류로 취급한다. 그들은 비록, 불행했던 과거라도 그대로 간수하고, 재현하며 교훈으로 삼는다. 반면에, 일본인은 거의 속내(혼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오랜 무인정치 탓이었을 것이다. 


무슬림도, 토의 시에 직관적인 은유나 비유를 통하여 상황을 설명하려 하지만, 장황하기도 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토론이 안 된다. 자기주장이 강하다고나 할까? 특히, 학교 밖의 사회적 문제에는 좀 더 조심스럽다. 무슬림은, ‘대립 회피적’이라지만, 이들은 자신의 종교나 관습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무례한 것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의 견해와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에 대해 분노나 원망, 심지어 복수의 열기에 사로 잡힌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체면’이 중요하고 '같은 편'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체면과 자존심

아랍 연맹 회의장

'카이로'에 본부를 둔 ‘아랍연맹’은 매년 회원국의 정상회담을 개최하지만, 회의에서 외교적 성과를 내겠다고 노력하기보다, 거의 '보여주기' 식이다. 매년 정상들은 회의 도중 친미, 반미 발언 등을 반복하다가 서로 간에 다투고, 감정이 상해서 TV 중계 앞에서도 개인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도대체, 지도자에 걸맞은 교양이 없어 보였다. 윗물이 이러니, 아랫사람도 개인 '감정 표현'에 별다른 자제력이 없어 보인다. 굳이, 아프간, 이라크 사태를 언급하지 않아도 무슬림 고위 장교들은 여전히 반미 성향이 강하다. 더구나, 이들이 물질보다 자신들의 체면, 그리고, 신앙적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둔다는 사실에 소홀하였던 미국은 많은 돈을 들이고도 저들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하였다.

 

오래전, 필자가 다닌 미국 국방언어학교는, 유럽, 일본, 한국 등 자국 정부가 주는 생활비로 지내는 장교와 나머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미국 정부의 원조로 생활비를 받는, 군사원조 수혜국 장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원조받는 이들은 매주 화요일마다 생활비를 받으러 가느라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하였다. 그런데, 가끔씩 경리부에서 돈을 받을 때, 일부는 '장교'라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돈을 나누어 주는 미군 병사의 태도가 불손하다며 분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식당에서도 음식이 공짜라며 수북이 가져와서 남기거나, 갖고 나가는 등 좀 점잖지(?) 못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를 말리는 식당 계산대 '아줌마 (Cashier)'의 태도가 거만하다며 반발하며 언쟁을 벌이거나, 반미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대부분 중동, 아프리카 출신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일부 미군 병사나 종업원은 이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였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장교식당 벽면에는 아랍어 등 수많은 외국어로 뭔가를 잔뜩 써 놓은 글들이 많았다. 아랍 장교에게 그 뜻을 물어보니, 대부분 미국을 비난하는 내용이라 해서, “원조받는 처지에 무슨 비난은” 이라며 어줍지 않게 생각했다. 당시, 미군 병사나 식당 아줌마 등 미국인 소득은, 후진국 장교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니, 저들의 눈에 비친 외국 장교는, 작은 돈이나 음식에 집착하는 '무지하고 교양 없는' 인간으로 무시나 경멸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득이나 교양 수준은 상대적이다. 비록, 후진국 장교가 미국인에 비해 소득은 낮았을지 모르나, 나름대로 장교라는 자존심이나 국가에 의해 선택된 자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군 엘리트로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 가졌을 꿈과 설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재단하는 미군 병사나 일반 미국민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경멸을 당했다면...? 참기 어렵고 대립 각을 세우는 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많은 돈으로 미국을 이해시키려는 프로그램이, 몇몇 병사나 일부 직원의 무성의, 무감각으로 외국군의 분노를 사고 역효과를 내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무신경이 안타까웠다. 외국인 장교를 상대하는 곳에 근무하려면 국제적 다양성을 이해하고, 어떤 경우든 존중과 배려로 이들을 대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의 혁명직후, 최후 직전(출처: 동아일보)

더구나, 이들 중동이나 아프리카인들은 보기보다 뒤 끝이 강한 듯하다. 굳이, 미국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다가 몰락한 리비아의 ‘카다피’ 원수를 언급지 않더라도 중동과 아프리카의 많은 군부 지도자들이 이 학교를 거쳐갔다. 나중에, 국제 업무를 하는 동안, 미국에 유학하였던 아랍권 장교를 많이 만났디. 그런데, 이 중 상당수가 공개적으로 반미, 반서구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아마도, 이들은 미국이 자신을 우방국이라고 여기며, 각종 혜택을 ‘주니까 받은 걸’로 생각하거나, 어쩌면 부자들은 빈자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라마단’적인 규율에 따라 ‘받는데’ 익숙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받는 과정에서 느낀 모멸감은 서구로부터 받은 역사적 아픔과 함께, 오랫동안 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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