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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식가용 Aug 31. 2024

나에게 이런 시련이?

재생불량성빈혈???내가???

2008년까지는 내 인생이 매우 순탄했었다.

초,중,고 개근상을 탈 정도로 몸이 매우 튼튼했고, 1년 재수를 하긴 했지만 경희대학교 산업공학과에 합격하여 무난한 학점/어학점수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자동차 회사에 입사했다. 부모님도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고 이제 효도 할 길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자발적으로 지방공장 파견을 자처하여 인사고과점수도 후하게 받았다. 즐겁게 업무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2009년 여름이었다. 자고 일어나도 피곤하고, 업무에 있어서 집중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혼도 많이 났다. 

내가 신입사원이라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몸 상태가 점점 이상해졌다.

계단을 2층만 올라도 숨이 찼고, 몸에 빨간 반점이 생겨났다. 긁어서 난 상처인가? 라고만 생각했다.

뒤늦게  혈소판 감소로 인한 점상출혈증세라는걸 나중에 알게 된다.

어느날 두통이 심하게 밀려왔다. 하루 월차를 내고 잠을 청했다. 23시간을 잤는데도 피곤이 가시지 않았고 두통증세는 마찬가지였다.

응급실 시설이 있는 소규모 병원에 갔다. 응급실 의사가 피검사를 하고 지켜보자고 했다. 

1시간 쯤이었을까? 의사가 나에게 뛰어오면서 다가왔다.

"혈소판 수치가 3000밖에 안됩니다. 당장 큰 병원으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혈소판 정상수치는 13만~40만이다.)

난 처음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요?" 라고 대답했다.

의사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백혈병이 의심됩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병원인 마산 삼성병원으로 가보세요"

그래서 구급차를 타고 마산 삼성병원으로 이동해서 똑같은 피검사를 받았다. 혈소판 수치가 낮아서 여기로 옮겨왔다 말하자 의사는 무표정으로 피검사 결과를 보자고 하셨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는동안 응급실 의사가 자꾸 내 왼쪽 배를 누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백혈병 주요증상 중 하나가 비장이 비대해지는 것이었다.

피검사 결과는 오류가 아니었다. 여전히 혈소판 수치는 3000 이었다.

응급실 의사는 "당장 골수검사를 하셔야겠습니다. 보호자를 부르셔야 합니다."

출장중인 저는 "저는 여기는 출장지이고 사는곳은 인천입니다. 이곳에서 치료를 받기 어렵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서울삼성병원으로 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제안하였고, 바로 받아드려 부서장님께 전화를 드리고 회사 동기형과 같이 사설응급차를 타고 2시간40분만에 마산에서 서울 일원동에 있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도착한다.

회사 동기형은 자기가 경험한 차중에 가장 스릴있다고 추억담을 알려주었다. 2009년 당시 마산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사설 응급엠뷸런스 비용은 48만원이었다. 차라리 비행기를 탈껄..

삼성서울병원에 도착했다. 거기 응급실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병원 바닥에 침대깔고 주무시는 사람들, 비명지르는 사람들..

접수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엄마.. 나 몸이 좀 이상한가봐. 의사가 골수검사하래서 서울 삼성서울병원으로 왔어.. 보호자가 꼭 필요하대서 전화했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불효의 시작이었다.

피검사 결과를 응급실 의사가 확인하고 격리실로 이동해야 하는데, 자리가 없다고 기다려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스크를 주면서 쓰라고 했다. 면역상태가 최저라고 한다. 우리나라 메이서 4대병원 응급실이 환자를 수용 할 수 없어서 면역 저하자를 밖에 방치하다니..ㅎㅎ 지금은 응급상황이 아닌 환자도 방문하여 그런 상황인 것을 이해하지만 그당시는 멘탈이 나가있는 상태여서 답답했다.

추가 피검사를 하고, 빨간 수혈팩(적혈구)과 노란 수혈팩(혈소판)을 연결하여 주사 받았다. 이제 팔이 자유롭지 않아서 불편했다.(이게 6개월동안 병실에서 이러고 살게 될지는 몰랐다.)

밤11시에 부모님이 오셨다. 병원 응급실 자리가 없어서 근처 의자에 앉아있었다. 근처 사는 친척형에게도 연락이 닿았는지 방문하여 초밥을 포장해 왔다. 맛있게 먹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백혈구(절대호중구)가 낮은 면역 저하자는 생선회를 먹으면 절대 안된다. 세균감염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새벽3시가 되어서야 격리실로 이동했다. 이동하자마자 당직이던 혈액종양내과 레지던트가 와서 골수검사 하자고 한다. 

종이를 주셨는데, 거기엔 골수검사 진행사항과 발생 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감수하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출혈로 인한 사망, 뼈 손상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이 적혀있었다. 레지던트는 웃으면서 이런적 없다며 싸인하라고 한다. 무표정으로 싸인했다. 이미 그때는 피곤하고 정신이 멍하고.. 뭐가 뭔지 몰랐다. 

잠시 뒤, 간호사분꼐서 오셔서 성명과 생년월일을 묻고 마약성 진통제 주사를 먼저 놔주신다. 정신이 몽롱하면서 기분이 좀 더 나아졌다ㅎㅎ 

10분뒤에 인턴선생님께서 오셔서 성명과 생년월일을 묻고 엎드리라고 한다. 골수생검의 시작이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그 고통스러워 하는 골수검사를 내가 받게 되다니.. 

인턴쌤이 능력이 출중했던지 별 느낌은 없었으나 뼈가 뚫리는 뿌득뿌득 소리는 리얼하게 들렸다. 

그리고 다시 똑바로 누어 등에 지혈대를 대고 4시간동안 누워 대기했다. 소변이 마려웠는데 생애 처음으로 누워서 소변통에 볼일을 봤다. 

그렇게 아침8시가 되었다. 2인실에 자리가 하나 나서 거기로 이동하게 되었다. 

거기서 혈액종양내과 교수님을 만났다. 이름표엔 김동환 교수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혈액종양내과 담당의 입니다. 김용민님께선 재생불량성빈혈로 확진되었습니다. 앞으로 해 내가야 할 사항이 많지만 저와 함께 잘 이겨냅시다"하고 웃으면서 주먹을 내미셨다. 주먹을 같이 치면서 내 투병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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