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나갈 채비를 하고 시계를 보니 일곱 시 삼십 분이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삶아 불려 놓았던 토란대를 헹궈놓고 나설 참에 냄비 뚜껑을 열고 소쿠리에 부었더니 금세 죽처럼 으스러져 버렸다. 너무 과하게 불렸나 보다. 예전 같았으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부터 소요된 시간, 노력이 아쉬웠을 텐데 오늘은 생뚱맞게 토란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는 남은 토란대는 다시 한번 잘 삶아 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집을 나섰다. 스치는 아침 바람을 느끼면서 '목도리를 하고 나올 걸 그랬나.'하고 생각했지만 견딜만하고 느껴볼 만했다.
일요일 아침(대략 8시부터 11시 사이) 카페 분위기는 토요일의 동시간대보다 차분하고,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느낌이나 행위도 비슷하다. 독서를 하거나 노트북을 이용해 나지막이 자판을 치고 있거나 손바닥 만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거나 낮은 소리로 대화하거나.
"우리 이 분위기 지키기로 해요."하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홀로 또는 둘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몰입하고 있다.
커피 한 잔과 즐겨 먹는 단호박 샌드위치를 구입해서 나의 두 번째 지정석이나 다름없는 10인석의 넓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본다. 입구 쪽 자리여서인지 두세 시간 앉아 있어도 여간해서는 사람들이 앉지 않는다. 통창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을 잠시 응시하다가 아직 김이 모락거리는 커피를 두 손으로 감싸 쥐면서 조심스레 한 모금씩 마신다. 입을 크게 벌려 샌드위치로 한입 베어 먹는다. 2주 전인가? 남편과 함께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연인끼리는 샌드위치 먹는 거 좀 그렇겠네요. 입도 쫙쫙 벌려야 하고, 소스도 흐르고."하고 말하면서 웃었는데 그런 나에게 남편은 "우리는 연인이 아니고 부부여서 가능한 거예요? 자기 입 진짜 크네요."하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흘겨보던 나에게 "아니 입이 커서 예쁘다고." 하면서 변명으로 뒤늦은 수습을 했지만.
잔잔한 언어로 채우고 싶어서 '그리스인 조르바' 책을 가지고 왔다. 이 책은 읽을 때마다 명상하는 느낌, 글로 치유되고 있다는 느낌, 폭신한 이불속에서 아늑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는 1800년대 후반부에 출생해서 1900년대 중반까지 생을 했던, 나와는 100살 가까이 나이차가 난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의 작가가 쓴 글을 읽을 수 있고, 그 글이 나는 너무 좋고, 또 반복해서 읽고 싶어 진다는 게 때로는 신기하기도 하고 또 행복하기도 하고 그렇다.
주말의 이른 아침이 호사롭다. 그 호사가 큰 돈을 들이거나 눈에 보이는 물질을 쥐게 되어서가 아니라 담백한 샌드위치와 커피와 따뜻한 언어로 채워진 책, 그리고 기꺼이 즐기고 충만을 느끼려는 내 마음과 잘 맞아떨어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