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 만난 친절은, 때로 여행의 모든 피로를 덮는다.
시카고에서의 둘째 날 아침,
나는 마음을 달래듯 일찍 눈을 떴다.
Hilton Chicago의 묵직한 커튼 사이로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전날의 실망을 씻어내려는 듯, 이번엔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오늘만큼은 호텔의 시설을 제대로 누리자.”
비싼 숙박비와 ‘데스티네이션 차지’라는 이름의 추가 요금을 생각하니
이왕이면 수영장, 자쿠지, 피트니스룸을 모두 이용해야 한다는 묘한 의무감이 들었다.
그렇게 오전 7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수영을 하고, 자쿠지에서 따뜻한 물결을 느꼈다.
온몸이 천천히 풀리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아마 낯선 도시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체크아웃을 마치니 이미 11시 반.
아침을 거른 탓에 배가 몹시 고팠다.
로컬 마켓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려고 버스 정류장을 찾았지만,
길은 낯설었고, 표지판은 보이지 않았다.
정기권이 필요했는데, 그걸 파는 메인 스테이션은 너무 멀었다.
몇십 여분을 여기 저기 정처없이 헤메길
그때였다.
역 근처라고 생각했던 작은 극장 앞에서
문을 나서는 한 여성을 만났다.
나는 조심스럽게 길을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웃으며 말했다.
“정기권은 큰 역에 가는길인데, 여기서 걷기에는 조금 머네요, 제가 마침 딸을 발레 학원에 데려다주고 집에 가는 길이에요.
멀지 않으니 괜찮다면 역까지 태워드릴게요.”
순간, 망설임이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따뜻한 눈빛을 지닌 평범한 어머니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 올랐다.
그녀는 차를 몰며 말했다.
“레이디니까 괜찮죠.
하지만 절대 남자 차에는 타면 안 돼요.”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여자라서 믿고 탄 거예요.”
짧은 대화 속에 묘한 안도감이 있었다.
그녀는 시카고의 날씨 이야기를 꺼냈다.
“원래는 추운 도시인데, 오늘은 아주 좋은 날씨예요.
럭키네요.”
정말로 그랬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그녀의 말처럼 그날은 조금 ‘럭키’했다.
5분쯤 지나자, 차는 큰 역 앞에 도착했다.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며 문을 닫았다.
손을 흔들며 그녀의 차가 멀어지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는 어쩌면 그림자 속에서, 이렇게 사람을 만나는 곳일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