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그리고 기타
혼자 나서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좀 헤매도 괜찮아. 늦을 수도 있지.'
오랜만에 타는 버스도 반갑다.
버스에서 내리니 벌써 해가 져서 공기가 싸늘하다. 하필 눈앞에 펼쳐진 계단과 지하보도. 낯선 공간에 들어설 용기가 필요하다.
"후우~ "
마침 그곳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을 보니 내 발걸음에도 힘이 붙는다. 걸어가보자!
<오늘의 첫 번째 미션. 꽃다발 구입>
북토크를 준비한 꽃밭샘에게 드릴 선물을 한참 고민했었다. 눈물을 자주 흘리니 예쁜 손수건을 드릴까 했지만 역시 좋은 날엔 꽃이지!
버스에서 내려 가까운 꽃집에 들렀다. 어울리는 꽃을 고르고 원하는 스타일을 이야기했다. 항상 뒤편에서 완성된 꽃다발만 봤는데, 여긴 내 앞에서 꽃다발 만드는 과정을 모두 보여준다! 꽃을 가지런히 배치하고, 길이를 맞춰 자르고, 포장지를 고르고, 아름답게 감싸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 편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주황색 꽃 이름이 뭐예요?"
"거베라. 실 거베라 라고 해요."
꽃밭샘에게 드릴 선물인데 왜 내가 선물을 받은 거 같지? 예쁜 건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오늘의 두 번째 미션. 혼자 밥 먹기>
'시간도 애매한데 그냥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때울까? 커피 한잔 먹고 가도 되지 뭐~ '
배가 고프지만 자꾸만 먹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는 나. 오늘을 오롯이 즐기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건강하게 채워줄 맛있는 밥을 먹기로 했다. 어디서 먹을지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깔끔한 외관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저 집이다! 줄 서있는 사람들 뒤에 살포시 섰다. 혼자서도 먹을 수 있겠지?
"몇 분이세요?"
"혼자도 먹을 수 있나요?"
"그럼요~ "
다행이다. 마침 일인석이 있었다.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보는 가림판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그 안에 쏙 들어와 있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눈을 감고 귀를 쫑긋 세워 주방의 소리를 들어본다. 분주한 움직임과 함께 느껴지는 구수한 냄새. 빨리 먹고 싶다♡
인기메뉴라고 적혀 있더니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를 알겠다. 담백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고명들과 어우러진 면발이 쫄깃하다. 혼자서 먹으니 음식도 집중해서 먹을 수 있다! 곁들여진 국물까지 맛있게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속이 든든하니 어둠이 더이상 두렵지 않다.
<오늘의 세 번째 미션. 북토크 즐기기>
그림책과 기타가 함께하는 북토크.
저녁 시간에 나 혼자서 괜찮을까? 어색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편안하다. 따뜻하게 반겨주는 꽃밭샘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책 속 원화도 감상하고 와인도 한잔 마시며 책방의 저녁에 서서히 취해본다. 나 생각보다 혼자 잘 노는데?
그림책을 읽는 목소리, 이야기를 나누며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 서로를 향한 응원의 눈빛, 책장 넘기는 소리가 어우러져 조용한 책방의 공기가 따뜻하게 데워졌다.
마지막은 기타 연주. 기타 현을 누르는 손의 진동과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기타 선율의 움직임이 그림책 속의 선처럼 공간을 채운다. 와인의 힘일까? 금요일 밤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음악에 푹 빠져드는 이 시간이 편안하다.
꽃밭샘을 응원하러 왔는데
짧은 여행을 온 것처럼 즐기는 나를 발견했다.
오늘이 금요일이라 좋다.
그림책과 음악 그리고 사람이 있어서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