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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가 전하는 마음

편지 써주세요~

by 까만곰


아들의 생일

아침부터 미역국을 끓이느라 분주했다.

"엄마 국은 너무 싱거워요. 할머니처럼 맛있게 끓여주세요."

"알았어~ 고기랑 간장 많이 넣을게. 굴비도 구울까?"

"아니요."


생일날인데 반찬이 딸랑 미역국 하나.

다른 건 안 먹고 싶다니 편하긴 한데...

골고루 먹어야지!라는 잔소리가 자꾸 입 앞에서 맴돈다.


생일 선물도 고민 중이라고 보류.

케이크도 이따가 사자고 보류.


침대에 누워서 이것저것 퇴짜만 놓던 아들이 갑자기 묻는다.

"편지는 쓰셨죠? 생일인데 편지는 받고 싶어요."

아; 맞다. 편지!


가족들 생일날마다 편지를 정성스럽게 써서 주는 아들.

멀리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 때도 편지를 적어서 사진으로 전송한다. 편지가 빠지면 선물은 의미 없다며 용돈만 보내드리고 전화로 축하인사를 건네는 나에게 핀잔을 준다.


자기가 열심히 편지를 쓴 만큼 정성스러운 편지를 받고 싶어 하는 아들. 장난꾸러기 아빠와 동생에게 당부를 한다.

"생일 편지는 진지하게 쓰셔야 해요. 제대로 적어 주세요."


덕분에 주말에 눈뜨자마다 다들 책상에 앉아서 편지를 썼다. 예쁜 카드를 고르고, 편지를 쓰고, 어울리는 스티커를 골랐다.

"오~ 동생이 진짜 예쁘게 꾸몄네."

"아빠가 크룽한 하루 보내라고 쓰셨어요♡"

"엄마 카드는 찢어지지 않게 살살 뜯어볼게요."

케이크보다 선물보다 편지를 받고 행복해하는 아들.


받은 편지는 상자에 넣어서 오래오래 보관한다. 첫 돌을 축하해 준 할아버지의 편지와 함께 우리가 준 편지들도 차곡차곡 쌓이겠지?


어느 순간부터 카톡으로 보내는 교환권과 이모티콘이 더 편해진 시대. 굳이 손글씨를 써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편지를 받고 기뻐하며 보관함에 넣는 모습을 보니 이제 좀 알겠다.


손글씨는 정성이다. 글씨가 예쁘든 밉든 편지지를 고르고 어떤 글을 쓸지 고심하고 손에 힘을 주어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수고로움. 그 과정을 알기에 받아 든 편지에서 마음이 가득 느껴진다.


혹시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할 일이 있다면

서툴지만 손으로 적은 편지를 전해 보면 어떨까?


지치고 울적한 날 언제든 꺼내 읽어볼 수 있는

빛바랜 종이가 더 뜻깊게 여겨지는 편지를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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