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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Aug 24. 2024

올해 만난 중학교 2학년 학생들




이 학교에서 나는 마치 신규 교사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는 이전 학교의 아이들에게 익숙했다. 신도시의 아파트 숲에 둘러쌓인  학교의 아이들은 모두 '적당하고 무던'했다. 적당히 여유로운 형편에 자녀교육에 관심이 있는 부모님들, 적당히 공부하고 놀면서 스스로도 적당히 행복하다 여기던 아이들. 학기 중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방학에는 가족과 해외 여행을 다녀오며 마라탕과 탕후루를 먹으며 학업 스트레스를 푸는, 대체로 그런 아이들. 덕분에 교사로서는 감사하게 여겼던 환경이기도 했다.


그러다 새 학교에 오니 느낌이 많이 달랐다. 중학교 2학년인 것은 똑같으나 이전 아이들이 마냥 어린애들 같았다면 여기는 좀 더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인상이었다. 또한 이 학교는 다문화 학생의 비율이 높았다. 새터민, 중국, 일본, 몽골, 베트남, 방글라데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여러 나라의 아이들이 있었다. 경제적 형편도 제각기여서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학생들부터 임대 아파트, 다세대 주택, 원룸에 사는 학생들이 한 교실에 앉았다.

처음 접하는 환경의 학교여서 교사로서 새로운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다양한 아이들이 잘 어우러질 수 있을지, 지도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다소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출근한 지 2주쯤 지났을까. 점심 시간 한 선생님이 다급한 표정으로 교무실에 들어섰다.


- 부장님, 밖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2학년 남학생들이 싸웠답니다.


가슴이 철렁했. 좀 전에 순회한답시고 복도와 교실을 한 바퀴 돌았지만 운동장까지는 미처 신경쓰지 못했다. 체육 선생님이 아이들을 교무실에 데려오셨다. 아이들의 얼굴이며 팔다리에 빨갛게 생채기가 났다. 처음에는 서로 장난처럼 툭툭 건드리다가 점차 싸움이 커진 것 같다. 좀 더 자세히 연유를 들어보고자 했더니 그 중 한 아이가 짜증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 저희 화해 다 했는데 그냥 가면 돼요?


일순간 교무실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아이는 다시, 사과했으니까 그냥 끝내시라고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아이는 발로 책상을 걷어차기까지 했다. 우리끼리 끝난 일을 왜 자꾸 지랄이냐고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너 지금 그게 무슨 태도냐고 언성을 높였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물기 어린 그의 눈에 비치는 감정은 불안감, 그리고 두려움이었다. 예상치 못한 눈빛에 주춤한 순간 아이가 학교를 때려치우겠다며 교무실을 뛰쳐 나갔다. 나도 아이의 뒤를 따라 뛰었다. 


- ㅇㅇ아, 잠깐만 멈춰 봐. ㅇㅇ아.


한참을 따라가도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건물을 벗어나 정문 밖으로 나가면서도 아이의 흥분은 쉽게 달래지지 않았다. 그러다 겨우 아이를 멈춰 세웠던 건 부끄럽게도 내 나약하고 불안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러면 안됐는데 자꾸만 울컥해서 목소리가 떨렸다. 어른답지 못하게 눈물을 글썽이며 아이에게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다. 지금껏 내 짧은 교직 경력 중에 이런 경우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었다. 어느새 아이 눈빛이 다시 순해졌다. 좀 전까지 거친 욕설을 내뱉던 아이가 맞나 싶게 묵묵했다. 아이에게 일단 다시 학교로 돌아가자고 했다. 너를 혼내려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고, 학교 가서 남은 수업 받고 하교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터벅터벅 아이와 학교로 돌아가는 길, 비가 한두 방울 떨어졌다.

비를 맞으며 고개 숙여 걷는 아이의 옆 얼굴을 바라봤다. 길게 그어진 빨간 손톱 자국이 자꾸 신경 쓰인다.


ㅇㅇ아,  부모님이 네 얼굴 보면 얼마나 속상하시겠니. 


아이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지더니 퉁명스럽게 내 말을 받아쳤다. 그렇지 않을 걸요. 그러더니 오늘 일과 관련해서 집으로 연락이 안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차피 관심은 없겠지만요, 그래도 몰랐으면 좋겠어요. 전에 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좀 있었거든요. 아... 문득 아이의 말에 짐작이 가는 데가 있었다.  


아이를 교실에 들여보내고 교무실에 돌아왔다. 선생님들이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반겨 주셨다. 알고 보니 우리를 도와주려고 따라나왔는데 그만 놓쳤다고 했다. 선생님들의 말을 들으니 참 든든했다.






그후 알음알음해서 알게된 아이의 집안 사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계속해서 무거운 이야기들을 들으니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지난 십수 년간 자라면서 어른들에게 아주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학교에서 보여준 거친 말과 행동도 나름의 방어기제일 뿐, 아직도 여리고 순수한 면이 많이 보이는 아이인데...


아이는 학교에 다녀야 할 필요성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 학교에 잘 다닐 자신이 없다고 했다. 돈도 벌 수 없고 필요 없는 공부를 해야하며 잘못하면 혼만 나므로 학교는 시간 낭비란다. 차라리 나가서 배달이든 식당 알바를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단다. 아이는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로 가정에서 독립을 하기 위함,이라 말했다.


앞으로 이런 아이들이 얼마나 더 나올까. 학교에서 조금 보고 마는, 고작 국어 교사인 내가 이 아이들에게 뭘 해줄 수는 있을까. 새 학교에 적응을 할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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