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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용 Nov 18. 2022

그러나 누구도

수술을 받아야 한댔다. 장기에 연결되는 관에 혹이 생겼다나 뭐라나. 한 달쯤 전부터 몸의 이상을 느끼긴 했으나 별거 아니겠거니 하며 넘겼고, 언제나 그렇듯 불길한 징조는 참 별거였다. 그날은 가을이 들어선 것만 같은 8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이었다.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나기 만나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일찍 일어난 김에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들렀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연남동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바뀐 게 계절뿐만은 아닌지라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음을 온전히 즐기지도 못하고 온갖 잡념에 사로잡혔다. 척추마취는 어떤 걸까, 겁이 날 것을 알면서도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봤다. 아, 꽤나 위험할 수도 있구나. 그리고는 곧바로 부모님께는 무어라 말해야 하나 걱정이 들었다. 답도 없는 물음들만 연거푸 던지다 그냥 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이 너무 좋아서, 그러니까 지금 나의 상황이 감상을 망치는 것 같아서 쓸데없는 우려들은 접어두기로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아픔은 익숙함의 영역이라기보단 무딤의 영역 같았다. 나는 언제고 아픔에는 과하게 무뎠다. 아픔은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일아서였다. 내 아픔에 함께 아파하고, 또 내 아픔보다 훨씬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위해 담담하게 헤쳐 나오는 것이 훨씬 나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런 담담함조차도 그들에게는 괜한 짠함이기도 하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 의식적으로 덜할 필요도, 그렇다고 더할 필요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근심과 두려움을 드러내는 게 가장 좋은 표출이리라 생각하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술? 그래? 큰일은 아니지?’ 결국 의연한 척하며 별 거 아니라는 듯 심드렁한 목소리로 수술 소식을 전했는데, 의외였던 것은 엄마 역시 별 거 아닐 거라 확신한다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것이 척인지 진심이었는지는 나로선 알 길이 없으나, 본인의 자식이 그깟 수술에 스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쯤이었을 거다. 문득 박연준 시인이 쓴 ‘소란’이라는 책에 있는 문장들이 떠올랐다. ‘실컷 아프고 난 당신이 파리해진 새 얼굴과 막 태어난 작은 의욕을 가지고 창밖을 내다볼 때 산다는 것은 의지를 갖고 사는 일임을 깨닫는다. 병은 이겨내야 할 게 아니라 지혜롭게 겪다,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다음 새로워지는 것은 선물 같은 일. 그러나 누구도, 너무 많이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스스로 너무 많은 위로를 얻곤 했는데, 요즘은 아픔이 불쑥 고개를 들 때면 소중한 이들에게 꼭 이 문장들을 읊어주고 싶어진다.


나는 여느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예정되어있던 대학 동기들 모임에도 나가고, 후배와 샴페인도 한 잔 마셨고, 수술을 받는 당일 오전까지 출근해 나에게 주어진 할당량만큼을 누군가에게 떠밀지 않고 오롯이 해냈다. 도리어 나보다도 수술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더 걱정 투성이었달까. 더 큰 병원을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부터 병가를 쓰고 수술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까지. 그냥, 청개구리 심보일지 모르겠지만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달라질 건 뭔가 싶었다. 오후 병가를 쓰고 퇴근하자마자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보호자 없으세요?’ 보호자가 있어야만 하냐는 되물음으로 조금은 싱겁게 입원 절차가 끝이 났다. 아픔은 누군가를 너무나도 초라하게 만들기도 하고, 너무나도 특별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픔이 보호가 필요한 일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안부를 물어주는 이들의 마음이 있으니 당장 혼자여도 충분했다. 다행스럽게도 수술은 잘 끝났다. 꼬박 6시간을 누워있었고, 24시간 만에 끼니를 챙겨 먹었다. 괜찮냐는 지인들의 걱정에 병원 밥이 어쩐 일로 엄청 맛있다는 동문서답만 줄곧 늘어놓고는 진통제를 맞고 잠에 들었다. 이틀 후 아침 일찍 수술실을 나올 수 있었다. 당연히 아픔의 잔재가 아직 채 가시진 않았고, 유난스러울 만큼 몸을 보살펴야 했지만, 나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삶을 살아냈다. 다만 아픔을 겪을 때마다 느는 게 있다면 인생 별 거 없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다. 사소한 것들에 노하고 슬퍼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사소한 것들에 웃고 기뻐할 필요는 절실하다. 나는 자주 해가 지기 직전 저녁의 하늘이 어떤 색인지 살피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인간들이 규정하지 못한 것이 저녁 하늘에는 있다.


얼마쯤 지나고 거의 회복이 되어갈 때쯤 대뜸 메시지 하나가 왔다. 월요일, 엄마가 쉬는 날이었다. 아빠도, 누나들도 모두 일을 하러 나가면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처음도 아닐 테고 그쯤이면 익숙한 일상 같은 것일 터인데, 중요한 건 내 생각이 났단다. ‘엄마가 혼자 있어보니까 많이 심심하고 적적하네. 그러다 문득 네 생각이 났어. 독한 놈이라 잘 지낼 거라 믿으면서도, 우리 아들은 얼마나 외로울까 싶어 조금 눈물이 난다. 아들, 힘든 일 있음 언제든 이야기해.’ 외롭다는 고백도, 괜찮다는 의연함도 그녀에게는 그저 애잔한 아들의 10년을 떠올리게 할 테지만, 그까짓 혼자 거뜬하다는 몇 글자밖에는 달리 할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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