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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용 Nov 18. 2022

어느 보통 날

일요일의 명동은 복작거리는 사람들 틈새로 잘 스며들지 못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몇 해가 흘렀음에도 어디 하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한 낯익은 구도였으나 풍경만은 생경했다. 문을 연 곳보다 닫은 곳이 더 많았고, 더러는 임대문의라고 적힌 종이가 출입문 한쪽에 외로이 붙어있었다. 체념한 듯 지긋이 눈을 감은 가게들을 지나며 바이러스가 앗아간 보통들의 고통과 시선을 부딪혔다. 일상의 온기들로 채색되지 못하고 스러져가는 것들이 제 활기를 되찾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는지. 다행히 하늘만 흐리지 않았다. 예보는 잠시의 소나기가 있을 거라 경고했지만, 약속된 시간이 지나서도 어떠한 기미는 없었다. 비가 오면 세상이 숨죽인다. 마치 정말 죽기라도 한 것처럼 빗소리만이 적막을 가득 채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창밖의 모든 것들이 젖어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그래서 비가 오면 울적하다는 이들이 그리도 많은 걸까. 비는 아무 잘못이 없으나, 그가 범인으로 몰리는 현장을 자주 목격한다. 개인적으로 비를 좋아라 하면서도 차라리 오지를 말아라 빌기도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도 어느새 비에게 책임을 전가할지도 모르겠다는 노파심이 들어서다. 


우산을 챙길까 고민했으나 결론적으로는 그냥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저녁을 먹으러 고깃집에 갔다. 그리고 식사를 마쳐 갈 때쯤 거짓말처럼 강한 비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했다. “요즘 여름 날씨가 꼭 동남아 같아.” 스콜 비슷한 소나기가 빈번히 쏟아지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5월에는 뒤늦은 봄비가 하루를 온통 채우는 날이 잦았고, 6월에는 이른 여름 비가 아주 잠시 들렀다 떠나는 날이 잦았다. 세게 밀어붙이는 것들은 금세 그치게 되어있다고 힘주어 주장한 것이 민망할 정도로 소나기는 약해졌다 강해졌다를 반복하다 천둥까지 동반해 쏟아졌다. 몇십 분을 기다려도 그치지 않았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의점에서 우산을 살지, 아니면 가까운 역이나 정류장까지 비를 맞고 갈지 결정해야만 했다. 맞을 만한 비라기에는 너무나도 세찼으나, 이미 집에 우산이 두 개나 있었다. 무려 두 개나. 유독 우산에게 박한 것이 미안했으나, 그래도 혼자에게 세 개는 사치였다. 비를 맞으며 조금 뛰다 점차 속도를 늦춰 걸었다. 온몸이 물에 침범당하는 것을 오롯이 느꼈다. 당장의 찝찝함보다 희끗한 어린 날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예전의 명량함이 떠올랐다. 비를 맞는 것 따위는 걱정의 축에도 끼지 못하던 날들 말이다. 우산이 없는 날 비를 맞으며 그마저 즐거움이라 여겨줄 이들이 또 있을 거라 상상하니 슬쩍 웃음이 나왔다.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었지만, 감히 예상컨데 집 앞 정류장에 내리면 비가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중얼거렸다. 비는 모든 곳에서 한 번에 쏟아지는 것만은 아니니까. 특히나 소나기는 훅 하고 지나쳐갈 때가 많으니까. 우리 동네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살짝은 흐렸고, 또 조금은 맑았다. 농회색의 먹구름은 어디서 태어나 어디로 몰려가는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내가 자리를 비운 새 한바탕 했음은 바닥에 한가득 고인 웅덩이를 보고 알아챌 수 있었다. 나보다 비가 더 빨리 달린 걸까. 기왕이면 다른 방향으로 엇갈려 마주치지 않았으면 비도 맞지 않았을 걸, 하는 억울함이 들진 않았다. 비록 같은 방향으로 가는 길에 옷깃을 스쳐 보기 좋게 젖어들었으나, 나의 속도가 느려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비를 맞지 않아도 됐으니 아무래도 괜찮았다.


문득 오늘의 날씨를 무어라 정의하는 게 좋을까 고민이 들었다. 맑은 날이라고 해야 할까 아님 흐린 날이라고 해야 할까. 비가 왔고, 심지어는 우산이 없어 청승맞게 비를 맞기까지 했으니 울적해야 할까 아님 비를 맞았지만 버스에 내려서는 나름 맑았으니 오히려 좋다고 해야 할까. 전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겠다. 마음의 무력은 누가 얼마를 예측하든 그를 훨씬 상회한다. 마음과 의지만 있으면 안 될 일이 없다. 그러니 날씨 따위는 도저히 핑계나 이유가 못 된다. 사랑하는 이들과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먹고, 함께 비를 맞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고작 그것들로 비에 맞설 용기와 기꺼움을 얻었다. 사람들에게는 각자 일상적인 감정의 디폴드 값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아무 일도 없는 어느 보통날의 기분이 맑음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흐림인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기본값이 흐림에 속하는 사람이다. 좋지 않은 일이라고 말할 것이 딱히 없지만, 그와 별개로 울적한 가사의 서글픈 발라드를 즐겨 들으며 나라는 인간을 관통하는 온갖 걱정과 고민을 떠올리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결코 나쁜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단지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우려하면서도, 그에 잠식되지 않도록 어떡해서든 헤쳐나가려는 의지가 강한 상태를 지속할 뿐이다. 주위로부터 무슨 일 있냐는 우려 섞인 물음을 듣기도 하나, 무어라 딱 떨어지지 않는 저 날씨처럼 맑음과 흐림은 그저 색이 다를 뿐 좋음과 나쁨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둘은 한데 몸을 섞고 있는 자웅동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흐림을 애써 벗어나려는 시도는 하지 않으려 한다. 구태여 밝은 척을 하거나 실없이 웃어 보일 필요 없다. 내가 왜 이럴까 자책할 것도 없다. 우리의 음울함은 뜨거운 여름날의 열기를 식혀주는 거친 장마철 빗줄기처럼 여느 보통날의 날씨와 다르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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