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라는 관계는 참 이상하다. 이보다 더 함부로인 사이가 있을까. 마음 내키는 대로 선뜻, 덥석, 그냥, 문득, 기꺼이, 어떤 제멋대로인 단어를 가져다 붙여도 연인 사이에서는 그럴듯한 이유가 된다. 평생을 알고 지낸 가족에게도, 그보다 아주 조금 부족하지만 모자람이 없을 정도의 친구들에게도 못하는 말을 고작 며칠, 몇 개월, 몇 년 된 연인에게는 선뜻 털어놓는다. 복잡한 가정사,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 겉치레에 숨겨진 속살들까지도 전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발가벗는 것을 자처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다가도 별 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죽일 듯 싸우고, 또 너무나도 별 것인 일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넘어가곤 한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거짓말을 해보지만 어느새 그 앞에 서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그런 반복이 지치고 지겨워지면 이 생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사이로 끝이 난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심지어는 나 자신보다도 더 사랑했던 이와 말이다. 이별을 맺음 하는 말은 일종의 유언이다. 서로 멀쩡히 살아있음에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얼굴을 마주하며 건네는 마지막 한마디, 그 모습조차도 너무나 제각각이다. 내가 들었던 최악의 한마디는 ‘친구로 지내자’는 말이었다. 이별을 통보하는 주제에 친구로 지내자니, 지금 돌이켜보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터무늬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친구로라도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약속했다. 무덤덤한 이별이 멋진 거라고 여기며 순순히 받아들였다. 물론 그런 것치곤 꼬박 그 해 전부를 고생해야 했다.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느냐며 화도 냈고, 한 번만 다시 생각해볼 수는 없느냐며 매달려도 봤고, 다른 사람을 만나려 발버둥도 쳐봤다. 그렇게 서너 달을 애쓰다 보니 자연스레 그와의 기억들이 어딘가로 흘러갔다. 사람은 퍽 단순한 동물인 것이, 추억으로 남지 못한 기억들은 상자에서 자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점차 밀려나 흘러넘쳐 가물해지는 어리론가 사라지고야 만다. 마치 평생을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사람과의 잊지 못할 추억들이 결국 잊어야 할 기억으로 변모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 또한 피해 갈 수 없는 수순이라고 생각해본다.
한 지인과 술을 마시며 물은 적이 있다. 친구로 남자는 말을 그렇게나 쉽게 건네다니, 도대체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어. 그녀는 대답했다. 친구로 지내자는 말은 덜 사랑한 쪽이 건넬 수 있는 이기적인 말이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마음과는 달리 아주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는 상태였다. 헤어지기 직전 나는 첫 책을 내는 것을 계기로 퇴사를 한 상태였고, 그이는 더 나은 환경으로 이직을 생각하는 상황이었다. 석 달 뒤 퇴사를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오래간만에 만나 커피 한 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석 달이라는 시간만에 만나 확인한 건 아닌 척 부정해보지만 그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고, 그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주며 우리는 친구로 지낼 수 없을 거라는 확신만이 강하게 들었다. 연락을 안 한지 일 년쯤 지났을까, 지인의 SNS에서 우연히 그이의 모습을 보게 됐다. 그래도 한때는 미칠 듯이 사랑했고 죽을 만큼 아파했던 사람이었기에 나도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모를 마음으로 잘 지내냐는 메시지를 보냈다. 의외로 그이는 반가워하며 그간의 생활들을 말해주었다. 시간이 흘러서인지, 아님 그에 대한 나의 시선이 이제는 달라진 것인지, 그이의 근황에 대한 대단한 관심이나 감흥은 없었다. 그 때문에 용기가 났는지 한 번 얼굴이나 보자는 말에 그러자고 대답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알면서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니까. 우리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나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고, 이직에 성공했으며,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인 상태였다. 그이는 이직한 회사를 다시 나와 대학에 합격했다고 말했고, 동시에 새로운 커리어를 찾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커피를 한 잔 하는 동안 내 이야기보다는 그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그이와 다시 같은 공간에 앉아 얼굴을 마주하며 깨달은 건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당신을 보거나 궁금해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달라진 거라곤 사랑뿐인데, 사람 전체가 바뀐 듯이 느껴졌다. 내가 그리워한 것은 그이가 아니라 그 시절 열렬한 사랑에 즐거워하고 괴로워했던 날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후회나 실망 같은 단편적인 감정보다도 오히려 속이 시원해졌다고 말하는 우리는 그만큼 나이가 든 걸까. 이별의 순간 마지막 유언을 건네야만 했던 장례식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흐릿한 시야로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잔상을 그제야 확인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한 말들을 뱉어서는 안 됐다. 이별의 잘못이 누구에게 있고, 어떠한 이유에서 그러한 결심이 들었고, 앞으로 어떤 사이로 남을지 따위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그저 우리가 어떤 관계였고 어떤 사랑을 했는지, 그 자체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나눴다면 어땠을까. 장례의 주인은 우리 중 그 누구도 아녔다. 우리의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