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하스 라르쉬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팀은 제브라피시를 이용한 가상현실 실험을 통해 물고기는 움직임의 패턴만으로 동족이 움직이고 있음을 파악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는데, 본능적으로 동족이 어떤 움직임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만큼 제각기의 생김새를 가지고 곧잘 본성을 숨기는 동물이 또 있을까. 나는 인류를 하나의 종족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비슷한 행동과 성질 패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만 그를 동족이라 부른다.
대학 동기의 고향 친구, 사촌의 사촌만큼이나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과 우연한 술자리를 가진 날, 그녀에게서 나와 같은 기질의 일부를 발견했다. 포항이 고향인 그녀는 나와 같은 기간을 서울의 이방인으로서 살고 있었고, 여행을 좋아하는지라 자발적으로 이방인이 되기를 즐기는 사람이기도 했다. 짧다란 토막의 어투와 행동만으로 그녀가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알아채고 동족임을 직감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감각적인 답변의 소유자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 본디 자신은 낯선 이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하는 인간이라던 그녀는 홀로 남해에 여행을 갔을 때 버스정류장에 계시던 할머님께 대뜸 대화를 신청한 적이 있다고 했다. 본인은 여행자이기에 몸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치더라도, 버스가 도착하려면 족히 두어 시간은 남은 이른 아침에 할머님께서 의자에 앉아계시더란다. 그래서 ‘할머님, 왜 벌써부터 나와 계세요?’ 물었더니, 할머님은 ‘일찍 나오는 게 뭐 대수야?’하며 여유를 부리셨다고. 자신은 뭐가 그리 급해 지하철 시간을 맞추려 애쓰고, 빨리 환승하려면 어느 번호에서 타고 내리는지까지 확인하며 사는지 돌아봤단다. 그녀의 질문은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할머님은 그럼 여기 분이세요?’했더니, ‘아니 난 이방인이지, 저기 옆에서 왔어’하시더란다. 검색해보니 할머님이 말한 저기는 남해 바로 옆동네였는데, 어쨌든 태어나고 자란 곳이 남해는 아니니 얼마큼 가까운지를 떠나 자신을 이방인이라 표현하시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자신의 여러 여행담을 늘어놓던 그녀는 자신이 이방인이 되었을 때를 두려워하지 않는듯 보였다. 나는 낯선 곳에 당당히 맞서는 그녀가 신기했다. 그래서 여느 나이 든 관계가 그렇듯 언제 시간 되면 또 보자는 허공에 흩어지는 가벼운 구두의 기약으로 우리의 만남이 끝맺음하지 않았으면 바랐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그녀에게서 먼저 메시지가 왔다. ‘수용아, 너 강북에 산다고 했지? 나 일 때문에 미아사거리에 왔는데 괜찮으면 볼까?’ 주저 없이 그러자고 대답하고는 항상 혼자 가던 단골 카페의 위치를 찍어 보냈다. 자주 가는 장소이지만 누군가와 함께인 적은 없었던 곳에서의 약속은 나를 들뜨게 만들었고, 결국 차 한 잔이 술 한 잔까지 이어졌다. 동족인 줄만 알았던 그녀는 의외로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달랐는데, 그로 인해 나는 이미 예전에 답을 내린 질문을 다시 되묻게 됐다. ‘작년에 헤어진 연인이 친한 사이로 남고 싶다고 했었거든. 말이 되는 건가?’했더니, ‘친한 사이로 남고 싶다는 건 덜 사랑했던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말인 것 같아.’란다. 그녀의 답변은 역시나 감각적이었다. 그럴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말이다, 나쁜 사람이 분명하다, 이런 단편적인 대답이 아니라는 것이 위로가 됐다. 덕분에 단 두 번의 만남으로 동족이라 여겼던 인간의 움직이는 패턴을 놓치고야 말았다. 도대체 그녀가 어디로 손을 뻗고 발을 옮기고 생각을 굴릴지 예측할 방도가 없었다. 얼마 전에는 인스타그램에 술자리 사진을 올렸더니, 그녀에게서 ‘나는?’이라는 장난스러운 메시지가 왔다. ‘그러게, 누나랑 술 마시고 싶네’라고 답장을 보냈다. 내게 있어 당신과 술을 마시고 싶다는 말은 굉장한 애정의 표현이자 나이를 먹을수록 성사되는 확률이 줄어들고 있는 비운의 표현이기도 했는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마시면 되지, 내일 어때?’라고 대답했다. 오히려 물은 쪽이 당황해서는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어 한바탕 웃어댔다. 이틀 후 주말, 이번에는 내가 그녀의 공간으로 넘어가 유명하다는 곱창 집에서 술자리를 시작했다.
여름의 호흡이 뒤통수로 느껴질 만큼 바짝 붙은 봄의 끝자락, 5월이 끝나간다는 말에 그녀가 질문을 건넸다. ‘넌 어떤 계절이 좋아?’, 나는 가을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곧바로 당신은 어떤 계절이 좋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환절기가 좋아. 계절에서 계절로 넘어가는 감각들이 느껴지잖아. 특히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의 차고 무거운 밤공기가 최고지.’ 당신도 이제 곧 나이의 십의 자리가 바뀌는 환절기에 자리하고 있어서였을까. 그녀의 감각적인 답변은 사람을 매료하는 힘이 있었다. 사적인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 늦은 새벽까지 우리의 질문과 답변은 계속됐다. 서로를 알아가고 친분을 쌓는 것을 뛰어넘어 한 인간의 답변을 듣기 위해 이토록 탐구에 열중한 적이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의 의문마저 들었다. 그날 나의 마지막 질문은 나조차도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 것이었다. ‘누나는 어떻게 서울을 이겨내고 있어?’ 아주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을 이기려고 한 적이 없었어. 그냥 내가 이방인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도 했고, 조금 변태적이지만 나는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즐기기도 해. 외국에 오래 혼자 여행을 갔을 때 주변에 동양인 여자애라고는 나밖에 없어서 종종 인종차별을 겪기도 했었는데, 정작 난 아무렇지도 않더라고. 다르게 생각하면 이방인이란 건 어떤 것이라도 될 수 있다는 말이잖아.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나는 나니까.’ 나는 기어코 싸우려고 했나 보다. 거대한 도시와의 승산 없는 전투에서 이기고 버티며 이방인으로의 이질감을 무디게 만들기 위해 분투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겠냐며 자위하고 지치고를 반복하다, 당신의 답변에 이 도시의 버거움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손님이라고, 다시 말해 오롯이 자신이 주인인 공간에 앉아있는 이방인에게 미역국을 끓여 대접하는 당신을 보며 앞으로도 더러 서울에 대해 묻게 될 것 같았다. 당신에게 물들어 언젠가 이방인에서 여행자가 되리라는 희끗한 희망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