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넘게 키우던 반려식물이 생을 달리 했다. 꽤나 크기가 있는, 그러나 한아름 안을 수 있을 정도의 몬스테라였다. 얇은 겉옷이 필요할 정도의 찬 가을 바람이 체감될 때쯤 매일을 함께하던 이와 녀석을 데려왔고, 머지않아 두툼한 겉옷으로도 그의 체온을 대신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도 애정으로 끝까지 키우겠다 다짐했다. 대용품 혹은 어떤 관계가 남기고 간 걸리적거리는 장식품쯤으로 대하고 싶지 않았다. 식물은 보기보다 기르기 쉽지 않았다. 동물처럼 배고프면 짖고 보챈다거나 상태가 좋지 않다고 끙끙 앓는게 아니라 그랬다.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숙이고 얼굴이 노래지면 그제야 손을 써보지만 너무 늦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럼 잎보단 꽃이 낫지 않겠냐고들 하지만, 예전부터 아무래도 꽃보단 잎을 더 사랑했다. 꽃은 손이 덜 가고 아름답게 피고 또 지기를 반복한다. 그에 비해 잎은 화려한 색이랄 것이 따로 없고,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까다롭다. 누군가 식물은 무관심해야 잘 키울 수 있다던데, 그는 무언가를 곁에 두고 염려한 경험이 없으리라. 늘 그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머물러 주는 잎이 좋았다. 햇빛을 받은 초록이 그렇게나 좋았다.
나름 주는 입장에서 정성이라고 부를만한 행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방 안으로 햇빛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확인하고서 베란다 명당에 몬스테라를 옮겨다 놓았다. 인간의 물 하루 권장량은 알지도 못하면서, 그가 하루를 잘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하며 흙은 만지고 물을 주었다. 그렇게 늦여름부터 초겨울까지를 무사히 지나왔다. 쭉 아무 일 없이 그해 겨울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자만했어서일까, 아니면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 익숙해진 탓에 두어 번쯤 놓치고 지나가서일까. 정말 하루아침에 단 하나의 잎도 남지 않고 쓰러져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같이 해를 넘기지 못한 것이,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지난 한때를 추억할 이가 없다는 것이. 네가 잘 살아가는 모습에서 동질감 비슷한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추운 계절 따위 거뜬하게 견뎌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기야 비명 한마디조차 지르지 못하고 허무하게 헤어짐을 받아낸 너보다는 실컷 구르고 아등거린 나 같은 인간이 훨씬 낫다고 해야 할까. 한동안은, 어쩌면 앞으로는 식물을 기르지 못할 것 같았다. 어떤 생명과 함께하는 건 대단한 책임감이, 그 이상의 자격이 요구되는 일이라고 자책했다.
그가 담겨있던 화분을 베란다에 두고 바라보며 겨울의 옷을 천천히 입혔다. 그러다 훌쩍 이월이 되었고, 이병률 작가님께서 화원을 차리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오픈을 했다기에 얼굴도 뵙고 구경도 할 겸 화원에 들리자 했다. 무언가를 데려오겠다는 염치는 한치도 없었는데, 그랬는데 바닥에 놓여있는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 마음을 뺏기는 건 내 나약한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분주하게 화원을 정돈하고 계시던 실장님에게 조심스레 몬스테라와 있었던 일을 고백했다. 마치 병원에 찾아가 소홀했던 지난 날들을 고백하며 약을 처방받길 바라는 환자처럼. 신호를 보내는 아이는 어떠세요. 신호, 식물도 어떤 신호를 확고하게 보낼 수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색이 바래고, 잎이 마르고, 그런 식의 신호가 있다고. 그 말에 움츠려있던 마음이 약간이나마 고개를 들었고, 색이 살아나고, 촉촉해지기도 했다. 하룻밤에 헤어지자는 한마디만을 남기고 내 곁을 떠나던 이와도 아주 미세하게나마 어떠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모자란 헤어짐을 닮아 우리를 지켜보던 몬스테라도 그렇게나 급작스럽게 내 곁을 떠난 걸까. 내가 화원에서 얻은 거라곤 식물을 잘 기를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다시 어떤 아이를 데려와 키우겠다는 용기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건 내가 다시 출발해도 괜찮다는 신호이기도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