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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용 Nov 18. 2022

쌀과 김치

밥을 짓는 일만큼은 내가 최고였다. 손 남는 사람이 보이는 집안일을 처리한다는 시스템 하에 생활하던 시절부터 관련된 직업이 없다는 게 억울할 정도로 밥 짓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물론 쌀과 물의 비율을 적절히 조합해야 한다는 정도를 따르지는 않았다. 대충 손으로 쌀을 눌렀을 때 물이 손목까지 차오를랑 말랑한 정도가 딱이었다. 아무리 넉넉하게 밥을 지어도 5인 가족의 밥상에 하루, 길어도 이틀만 오르면 바닥을 보였기에 해둔 밥이고 보관된 쌀이고 간에 오래 머무를 일이 없었다. 비단 밥뿐만 아니라 냉장고 속의 음식이 상해서 버려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통기한 따위 의식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이것저것 사다 놓아도 입이 많으니 괜찮았다. 문제는 혼자가 되고 나서 이 습관을 고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녔다. 덩치에 비해 먹는 양이 많은 편이긴 하다지만, 마트에서 파는 대용량의 음식들 정도야 며칠이면 먹을 수 있겠지 자만하고선 실패하고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나마 해 먹는 게 낫지, 시켜먹는 경우가 더 고역이었다. 대부분의 배달음식에 1인분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있다 해도 너무 비싸 귀찮더라도 나가서 먹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 한동안 집안에 밥솥이 없었다. 1kg이 채 안 되는 소용량의 쌀이라도 혼자서는 부담스럽기도 했고, 밥을 짓는 것만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도 없기에 나가서 해결하는 때가 많았다. 그러다 군대를 다녀오고 주변 상가들의 메뉴가 점차 질려가던 차에 밥솥 하나를 마련했다. 혹자는 자취의 로망은 요리라던데, 그런 로맨틱한 목적에서라기보다는 한 끼 정도는 해결할 수 있어야 앞으로 혼자를 잘 길러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유일한 장기라면 국물류겠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는 기본이고 소고기 뭇국까지 끓일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을 연마했다. 가끔 메추리알 장조림이나 간장 어묵볶음을 해먹기도 하지만, 역시 햄과 계란 프라이의 편리함을 이기지는 못했으니 밥과 국이 전부라고 하는 게 맞겠다.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조촐하게 차린 식사가 웬만한 배달음식보다 나았다.


근 일 년간은 탈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그새 이사를 하고 베란다에 뒀던 쌀을 싱크대 밑 선반으로 옮겼다. 몇 번의 계절이 흘러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방바닥에 아주 작고 거뭇한 벌레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혼자 살게 된 이래로 단 한 번도 벌레 걱정은 해본 적이 없는데, 아무리 처리해도 릴레이로 등장하는 녀석들 때문에 근심이 깊어졌다. 인터넷에 ‘여름철 벌레’를 검색했다니 곧바로 쌀벌레가 나왔다. 원룸촌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집에서도 쌀을 온도가 높고 습한 곳에 보관하면 흔하게 쌀벌레가 출몰하는 모양이었다. 쌀에도 벌레가 생기는구나. 악어와 악어새도 아니고, 쌀과 쌀벌레라니. 이기적인 기생 관계에 기가 찼다. 슬쩍 쌀포대를 열어보니 이미 벌레들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득실거렸다. 집에서는 밥을 잘해먹지 않아서 쌀포대 전체가 잠식되도록 눈치채지 못했다. 비싼 돈 주고 산 쌀이니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살려보겠다고 한 바가지 퍼서는 씻어봤으나, 너무 많은 양이기도 하거니와 벌레다 살았던 인식처를 뱃속으로 집어넣자니 영 꺼림칙해 결국 내다 버렸다. 그때부터 쌀통에 쌀을 전부 옮겨 냉장고에 보관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한 번 남은 잔상 덕택에 이유가 뭐고 간에 애초에 문제가 생길 거리를 주제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럴 거면 햇반이 낫지 않겠냐고 할 수 있지만, 햇반과 직접 지어먹는 밥 사이의 간극은 의외로 꽤나 크달까. 밥이 지어지는 소리, 냄새, 기다림까지도 먹는 거라서. 친구와의 약속 시간에 맞춰 한두 시간 일찍 준비를 하듯, 배가 고파지겠다 싶은 시간보다 한두 시간 일찍 밥을 짓는 일은 비슷한 크기의 설렘이다. 혼자 살고 있음에도 이 한 몸 먹이는 일에는 게으름 피우지 않고 있다는 증명의 행위이기도 하다.


냉장고에서 마르지 않는 게 하나 더 있다. 한국인의 소울푸드, 김치다. 어려서부터 전라도 신김치에 길들여진 나는 한 번도 김치를 사 먹어본 적이 없다. 라면을 먹진 않지만 적어도 김치는 있어야 급할 때 라면이라도 먹지 않겠냐며 때마다 김치를 보내주는 엄마 덕이다. 대학교 근처에 살면서는 주변에 자취하는 선후배 동기들이 많았으니 반찬통에 적당히 썰어 나눠주곤 했다. 서울의 슴슴한 김치에 익숙해진 토박이들에겐 확실히 신세계였을 거다. 김치는 아무리 지나치게 받아도 금방 비워졌다. 그래서 엄마와의 안부 인사는 항상 ‘김치는 있냐?’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꼴에 조금의 염치가 생겨 귀찮을 테니 보내지 말라 만류해보지만 소용없다. 얼마 전에도 쌀이니 김치니 반찬이니 아이스박스에 바리바리 쌓아 보냈더라. 집에서 먹어보니 맛있어 보냈겠지. 그 마음이 무언지 알기에 오래된 밥솥을 버리고 새 밥솥을 사 밥을 지어먹었더라며 사진을 찍어 보냈다. 여전히 집에서 밥을 자주 차려먹진 않으나 적어도 받음 반찬들은 의식적으로라도 먹으려 노력한다. 그런데도 기어코 일이 생겼다. 김치를 먹으려 반찬통을 꺼냈는데, 하얀 곰팡이가 벽을 타고 슬어있는 게 아닌가. 아, 김치도 상하는 구나. 하기야 괜히 김치 냉장고가 있을까. 눈에서 마음에서 멀어져 찾지 않는 것들은 익다 못해 삭는다, 삭다 못해 썩는다. 쌀과 김치가 변했다. 늘 그대로 있을 것 같던 것들이. 아까운 김치를 싹 버려야 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않겠다 생각하며 다시 작은 양의 김치를 받는다.     


홀로 남겨진 존재가 초연할 수 있음은 어느 존재에게는 결코 잊힐 일이 없음을 알고 있어서다. 그래서 살아낸다. 이 도시를, 혼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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