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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용 Nov 18. 2022

잠시 길을 잃다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눈이 밝은 사람들. 저는 길치인 데다 운전에는 관심이 없는지라 가봤던 길이라도 곧잘 헤매는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내비게이션 없이도 길을 잘 찾아 운전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여요. 얼마나 많은 경험과 데이터가 쌓이면 저럴 수 있을까 싶어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능력일 거예요. 대신 조수석에 앉아 졸지 말자고 다짐해요. 참 쓸데없는 주제들로 대화를 이어가려 애쓰는 편이죠. 단 한 가지만 빼고, 조수석에서는 길이나 운전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거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하긴, 제가 뭘 알겠어요.


얼마 전에는 신기한 광경을 봤어요. 한 지역에 몇십 년을 살고 있는 사람이 길을 헷갈려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내비게이션을 켜더라고요.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초행길이라고 하더군요. 저를 터미널에 데려다주던 길이었거든요. 어디로 떠나본 적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많이 가보지 않은 길이니 당연한 걸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길 똑똑이도 내비게이션에 의지할 때가 있다는 거예요. 얼마가 지나면 내비게이션보다 더 좋은 길이 있다며 자신이 알아낸 지름길로 운전을 하겠죠. 그렇게 쌓이고 쌓여야만 가능한 일이겠죠.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그랬죠. 나는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어느 누구를 만나 어떤 사랑을 해야 하고 무엇을 살아가야 하는지. 누구나 매초, 매달, 매년이 처음인 일이잖아요. 심지어 내비게이션에도 뜨지 않는 험한 산길이나 바닷길에 뒤지지 않는 미지의 장소로 가는 거잖아요. 딱 정해진 길만 해도 시간이 흐르고 뜸해지면 어설퍼지곤 하는데,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알겠어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어요, 우리의 안달은. 혹여나 조수석에 앉아 어디로 가고 어떻게 운전하라는 참견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길에 내려주고 혼자서라도 실컷 헤매기로 해요. 아님 저 같은 사람을 태우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나 나누며 여기저기 들러보는 것도 좋고요.


언젠가 우리만의 지름길이 생길 거예요.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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