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권, 근무 중 이상무
1. 드리프트 1분 전, 실패 금지
아침 맞이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딱 1분.
나는 지금 교문 앞에서 비보호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초당 20번씩 핸들을 두드린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들을 노려보며. 차가운 공기를 달고 차량 보닛들이 연달아 반짝였다.
"헉" 교문 안쪽 담당이신 교장선생님이 벌써 나오고 계셨다.
드디어 차량 흐름이 끊긴 틈을 타 드리프트를 해서 교문에 들어섰다.
발주차 후, 거의 점프 앤 앞 구르기의 속도로 교문 밖 내 위치에 섰다.
입김이 하얗게 따라왔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교장 선생님이 흠칫, 놀래셨다.
분명히 아무도 없었는데... 순간 이동을 한 사람처럼 태연히 인사를 드렸다.
"휴우" 오늘도 무사히 아침 맞이, 시작이다.
2. 20분의 업무, 100번의 인사
나는 우리 학교 안전 자치부 소속이다. 아침에 20분씩, 교문에서 차량 안내 및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 업무 중 하나다. 처음에 걱정했던 것보다 은근히 재밌고 시간도 빨리 간다.
8시 20분에 칼같이 나오시는 교장선생님과, 실버 인력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교문 밖 내 자리에 선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내 수업을 듣는 3학년 아이들이 지나가면 "안녕 안녕!" 세레모니처럼 손을 흔들기도 한다.
좀 친한 여학생들과는 괜히 서로 인사 없이 웃음을 참으며 눈빛만 주고받는다.
"엇, 효주야!" 다급하게 주머니를 뒤지는 척하다,
뿅, 손가락 하트를 꺼내 보여준다.
볼 때마다 속으면서 매번 같이 빵 터진다.
3. 뜻밖의 폴더
가장 민망한 순간은 우리 학교 학생들인지 알고 다른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넬 때다.
몇몇 학교가 몰려있고, 교복이 거기서 거기인지라 가끔 엉뚱한 인사를 한다. 남의 학교 학생들, 어서 오고.
'갑자기요?' '여기를요?' 서로 동공이 흔들리는 가운데,
멀리 뒤를 응시하며 아닌 척, "어서 와..." 아련하게 말을 흐린다.
학생들은 아니지만 분주히 지나가며 인사를 해주시는 행인들이 꽤 많아서 놀랐다.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웃으며 인사를 건네주신다.
어엿한 내향인으로서 깜짝 놀라서 나도 폴더 인사로 화답해드리곤 한다.
4. 손 모아 장갑은 못 참지
가장 기다려지는 행인은 단연코 그 시간에 등원하는 작은 어린이들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아빠와 등원하는 아기가 있는데, 본인이 귀엽다는 걸 아는 눈치다.
멀리서부터 날 보며 장갑 낀 손으로 반짝반짝, 인사를 해준다.
마치 자석처럼 시선을 따라가며 한껏 광대가 솟아올라 양손을 흔든다. "안녀어엉."
아기가 놀랄 수 있으므로 너무 활짝 웃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거의 매번 실패한다.
"선생니임!" 매일 덥석 날 안아주고 가는 학생도 있다. 바로 전 학기까지 가르쳤던 초등학교 4학년 아이다.
매번 머리를 예쁘게 묶고 오는 윤지는 아침 지도 첫날 날 보고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이민(?) 간 거 아니었어요?"
"... 그렇게 됐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거의 다른 국가 급으로 다른 세상이긴 하다.
오늘은 내게 핫팩을 하나 주고 갔다. 같이 쥐고 있었는지 살짝 녹은 초콜릿도 함께.
겨울바람은 그렇게, 따뜻한 온기 속에 조금 찬기를 잃는다.
5. 겨울의 태양권, 발사!
의외의 복병은 겨울에도 타는 듯한 햇살이다. 우리 학교 교문은 강력한 태양의 가호를 받아
오전 8시쯤이면 엄청난 직광에 노출된다.
크리링 백 명의 태양권 공격을 받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함께 다른 곳 아침 맞이를 하는 옆 자리 부장님과 나는 출근 즉시 날씨부터 점검한다.
흐린 날, 우리는 말없이 박수를 친다. 비가 오면 "선생님, 오늘 날씨 좋네요."
서로 덕담을 주고받거나, 유독 해가 쨍쨍한 날이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양산을 챙겨 주기도 했다.
'선생님 마음 다 압니다. 고생하세요.'
갑자기 교장 선생님께서 이쪽으로 걸어오신다. '지각 걸린 건가...'
깜짝 놀라서 자라목과 공수 자세로 바라보았다.
교장 선생님은 1분만 늦어도 웃으시며 "오늘 좀 늦으셨네요." 짚고 넘어가는 성격이었다.
"선생님, 이거..." 마스크와 핫팩을 주셨다.
"아침마다 고생이 많지요?" 돌아서는 뒷모습이 눈 부시다.
아... 저것은 후광인가. 아니구나, 태양권이구나. 다급히 핫팩으로 해를 가렸다.
오늘따라 양손이 두둑하니, 태양만큼 따뜻해져 왔다.
6. 아침을 건네는 사람들
낯선 학교, 낯선 얼굴들. 나는 매일 이 새로운 교문 앞에 선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매일 조금씩,
아침을 건네는 일로 이곳에 나를 스며들게 했다.
이제는 익숙한 눈인사. 작은 손바닥을 흔드는 아기,
지나가며 "선생님!" 하고 안겨오는 전 학교 제자 윤지.
새 아침을 맞이할 용기를, 이 작은 손짓들과 인사 속에서 얻는다.
이 자리에 서지 않았다면 몰랐을 아침 인사의 온기가, 하루의 시작을 천천히 덥힌다.
눈이 멀듯 강렬한 태양권도 점점 기세가 수그러들고 있다. 가을을 지나 겨울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길목에 서서 오늘도 인사를 건넨다.
매일 반복되는 아침이지만, 그 안에 담긴 얼굴들은 매번 다르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서툴더라도 이 인사가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은 따뜻하게 만들길 바란다.
웃으며 건네주는 핫팩과 미소가 내 마음에 훈김을 불어넣었듯,
따스한 바람 속에 다들, 이 아침을 잘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다음 아침 맞이 시간에는 꼭 늦지 않고
제 시간, 제 자리에 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