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그리 살자

by 나철여

옷쟁이 시절을 돌아보면서 탭으로 오기 五記를 부린다.


성실과 상실 사이에서 웃다가 울다가

옷상자들이 천장까지 쌓여 겨우 한 사람이 앉을 공간만 남은 비좁은 창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 하나를 상자 위에 올린다.


그녀의 식탁은 팔리지 않은 재고 박스다.

나무젓가락을 쪼개고 라면 면발을 입에 넣으려는데, 문득 창고 벽 사이로 비치는 피팅룸 안쪽 거울이 보인다.


그 거울 옆에 써 붙인 문구 [동화를 믿는 여자에게 절망은 없다]


철여: (라면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며 문구를 물끄러미 본다. 씁쓸한 혼잣말)
"동화는 무슨... 오늘은 호러물이었다, 이년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철여는 옷소매에 묻은 국물 한 방울을 황급히 닦아낸다. 상품엔 절대 묻으면 안 된다는 본능적인 몸짓이다.


철여: (다시 문구를 보며 결연하게)

'그래도 내일은... 백설공주 같은 사모님이 오시려나, 아니면 옷 좋아하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도 좀 오시든가.'


그녀는 남은 라면 국물을 단숨에 들이킨다. 그러고는 다시 립스틱을 꺼내 바르고, 거울 속 자신을 향해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다시 전쟁터 같은 매장으로 나간다.

( 각본ㆍ연출 / 나철여)


꿈이 뭐냐고

너무 많이 들었던 질문,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철여

꿈 그만 꾸고 싶다.

진짜 복권 당첨이 되었다 치고 상상해 봤는데

진짜 평소에 꿈꾸던 일들이 하나같이 사라지더라.

아침에 쓰는 오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