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역정 [프롤로그]
마음 고쳐먹는 데는 1초도 안 걸렸다.
동대구역에서 행로를 바꾸는 일은 벼르고 벼르던 여행이다. 완행열차라는 여행기를 쓰다 인생 완행열차에 오른 이야기는 남은 인생여정을 송두리째 바꿨다.
슬픔도 기쁨도 함께 떠나는 벗이 되었다.
'오늘은 뭘 입지?'
나이에 걸맞은 옷은 멀리한다. 옷차림은 그녀의 자존심이고 자부심이다. 나이를 속이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나이를 드러내는 당당함이 섣부르지 않다. 흑백을 즐겨 입지만 후드티와 파스텔톤 머플러로 나이의 포인트를 잡는다. 무심한 듯 걷어올린 셔츠아래 팔찌는 금도 은도 아닌 삼색구슬 팔찌다. 세대차를 못 느끼게 하는 말투처럼 유난히 반짝인다.
가끔 분에 넘치는 말을 듣는다.
"재밌으세요, 준이할모니!"
아주 가끔 할머니 안 같다는 말도 그녀만의 옷차림을 더 부추 긴다.
남은 건 표정이다. 사방거울인 엘리베이터 안에서 세상 걱정 없는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제법 자리 잡고 주름져 있는 눈가주름이 거슬린다. 이쯤이야 아직은 문제없다. 선글라스로 가리고 비니를 쓰면 등 뒤에 바짝 매달린 쌕, 키링조차도 귀엽게 달랑거린다.
의식적으로 신경 쓰는 건 걸음걸이다. 남부의 여왕처럼 허리를 곧추 세우고 상큼 상큼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다. 몇 년 전, 넷플릭스로 남부의 여왕시리즈 며칠 동안 밤낮 가리지 않고 보면서 다시 태어난다면 고생은 뛰어넘고 멋진 보스로 살아보고 싶다는 상상도 한 적 있다. 가장 닮고 싶은 건 그녀의 걸음걸이였다. 걸음에서 묻어나는 카리스마를 잊지 않고, 지금도 혼자 걸을 땐 그렇게 걷는다.
웃을 일이 아니다.
완행열차는 뜬금없이 어딘가에 내려놓고 떠났다.
[프롤로그]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아닌
나철여의 단편소설 <철로역정>이다.